본문 바로가기
사사기

사사기 18장 13절-31절 상대가 자기보다 더 강한 것을 알고

by 알렉스강 2024. 7. 3.

사사기 18장 13절-31절 새번역

 

13 그들은 그 곳에서 에브라임 산간지방으로 올라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14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그 다섯 사람이 같이 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여기 여러 채의 집이 있는데, 이 가운데 어느 한 집에 은을 입힌 목상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고 있을 것이오. 목상뿐만 아니라 드라빔과 에봇도 있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소?"

15 그런 다음에 그 다섯 사람은 젊은 레위 사람이 사는 집 곧 미가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16 단 자손 육백 명이 무기를 들고 문 어귀를 지키고 있었다.

17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은을 입힌 목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우상을 챙기는 동안, 제사장은 무기를 지닌 육백 명과 함께 문 어귀에 서 있었다.

18 미가의 집에 들어간 다섯 사람이 은을 입힌 목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올 때에, 제사장이 그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19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조용히 하십시오. 아무 말 말고 우리를 따라 나서십시오. 우리의 어른과 제사장이 되어 주십시오. 이 집에서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야 이스라엘의 한 지파와 한 가문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20 제사장은 그 제안이 마음에 들어, 에봇과 드라빔과 은을 입힌 목상을 받아들고, 그 무리들 가운데로 들어갔다.

21 그들은 발길을 돌려 길을 떠났다.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나가는 소유물을 앞세웠다.

22 그들이 미가의 집에서 떠나 멀리 갔을 때에, 미가와 이웃집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단 지파 자손을 뒤쫓아왔다.

23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단 지파 자손이 돌아서서 미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들 모여서 오시오?"

24 미가가 말하였다. "뭐요? 내가 만든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가면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오?"

25 그러자 단 지파 자손이 그에게 말하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좋을거요. 이 사람들이 성이 나서 당신들을 치고, 당신과 당신의 가족의 생명을 빼앗을까 염려되오."

26 미가는 상대가 자기보다 더 강한 것을 알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고, 단 지파 자손도 가던 길을 갔다.

27 단 지파 자손은, 미가가 만든 신상과 함께 그에게 딸린 제사장을 데리고, 한가하고 평화롭게 사는 라이스 백성에게 가서, 그들을 칼로 쳐서 죽이고, 그들의 성을 불살라 버렸다.

28 그런데도 라이스를 구하여 주는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은, 그 성읍이 베드르홉 부근의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어느 누구와도 접촉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 지파 자손은 허물어진 성을 다시 쌓고, 그 곳에서 살았다.

29 그들은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을 단이라고 불렀다. 그 성의 본래 이름은 라이스이다.

30 단 지파 자손은 자기들이 섬길 신상을 세웠다. 그리고 모세의 손자이며 게르손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이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그 일을 맡았다.

31 그들은,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동안, 내내 미가가 만든 우상을 그대로 두고 섬겼다.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어딜 가도 행복하지 못하다

미가의 이야기는 17장부터 시작되어 오늘 본문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한 개인의 문제로 시작된 사건이 그의 집안 전체, 그리고 한 지파로 확산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잘못해서 시작된 문제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잘못된 행동을 한 것입니다. 단 지파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기업으로 삼으라는 명령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산지로 밀려 올라갔습니다.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헤매면,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차지해야 할 땅을 가지지 못하자 오랜 시간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떠돌이처럼 지냅니다. 결국 그들이 찾은 땅은 이스라엘 북쪽 끝에 위치해서 헬몬산 자락으로 둘러싸인 라이스라는 곳이었습니다. 과연 그곳에서 행복했을까요?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그곳에서도 만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어딜 가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미가의 집에서 은신상과 제사장을 훔쳐가다

단 지파는 우선 육백 명을 보내어 그 땅을 차지하고자 했습니다. 육백 명의 장정들은 정탐꾼의 인도를 따라가다가 미가의 집을 다시 방문하게 됩니다. 다섯 명의 정탐꾼 중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을 전합니다. 14절입니다.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그 다섯 사람이 같이 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여기 여러 채의 집이 있는데, 이 가운데 어느 한 집에 은을 입힌 목상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고 있을 것이오. 목상뿐만 아니라 드라빔과 에봇도 있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소?" 이 말은 '자, 뭐 해야 하는지 알지? 저기 좋은 게 있으니 약탈해야 한다. 보물이 있으니 털고 가자. 우리에게 복을 주는 게 있으니 우리의 소유로 삼자'라는 뜻입니다. 육백 명이 미가의 문 앞에 서 있고, 정탐꾼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몰래 은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가져가려 했습니다.

 

이것을 본 레위인은 깜짝 놀라며,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섯 명의 정탐꾼은 레위인에게 조용히 하라며 은밀한 제안을 합니다. 아무 말 말고 우리를 따라나서서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 이스라엘의 한 지파와 한 가문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한 것입니다. 이 제안을 레위인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단 지파 사람들에게 도둑질한다고 따지더니, 더 높은 연봉으로 스카우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좋아서 자신이 직접 제사용 용품을 챙겨서 단 지파 사람들을 따라나섭니다. 이 레위인은 미가의 집에 올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직업적인 종교인이었습니다. 사실 자신이 미가에게 고용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이제는 단 지파로 소속을 갈아탄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속된 제사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소명과 삶의 기준의 중요성

소명과 기준이 없으면, 결국 다 흔들리게 됩니다. 삶의 선택의 기로에 있어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의 소명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눈에 보이는 세상의 부와 명예가 기준이 됩니다. 사람들은 일생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 앞에서 소명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때로는 직업을 바꾸거나 직장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더 나은 경력을 쌓기 위해, 좋은 사람들과 일하기 위해, 더 윤택한 삶을 위해 연봉이 높은 곳으로 이직합니다. 욕망을 긍정하는 현대사회에서 레위인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레위인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오히려 바보처럼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돈을 잘 벌고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더 많은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결정하는 선택을 하는 데 유일한 것이 부와 명예라는 세상 기준 밖에 없기에 문제인 것입니다.

 

인생이나 신앙에 있어 기준이 참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에 맞게 사람은 행동하고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일생은 결국 자기 관점이 빚어내는 것입니다. 특히 어릴 때 어떤 관점을 가지는가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가치관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결국 그 관점에 맞게끔 살아가게 됩니다. 단 지파의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 백성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우상을 부수고 없애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 지파가 마땅히 여긴 일은 남의 우상을 빼앗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가 받은 약속에 충실하지 못하고 남의 것이나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자, 자녀들도 결국에는 남의 것 좋은 것 있다면 도둑질하기 바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거짓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자신이 불리한 상황마다 거짓말합니다. 남의 것을 훔쳐 쓰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면, 언제든지 좋은 게 있으면 도둑질 합니다. 반대로 정직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정직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힘으로 힘을 빼앗다

단 지파 사람들이 미가의 집을 약탈한 다음 떠나고 난 후, 미가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쫓아갔습니다. 24절입니다. "미가가 말하였다. 뭐요? 내가 만든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가면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오?" 미가는 자신의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간 이유를 따집니다. 그러자 오히려 단 지파 사람들이 적반하장으로 미가를 나무랍니다. 25절입니다. "그러자 단 지파 자손이 그에게 말하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이오. 이 사람들이 성이 나서 당신들을 치고, 당신과 당신의 가족의 생명을 빼앗을까 염려되오." 감히 니가 우리에게 항의하느냐,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면, 죽이진 않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날강도입니다.

 

단지파가 미가에게 한 행동은 힘으로 힘을 빼앗는 것입니다. 미가가 자기 힘으로 축적해 놓은 것을, 더 큰 힘을 가진 자가 와서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오직 목적은 하나입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복과 형통입니다. 그래서 미가도 이웃사람을 모아서 다시 쫓아갑니다. 힘으로 다시 빼앗아 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가보니 단 지파의 숫자가 의외로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도 가서 할 말을 해야겠다 싶어서, '너희들 왜 내 것을 훔쳐갔니? 나는 어떻게 먹고 살라는 말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단 지파가 경고합니다. '너, 말 한 마디만 더 하면 죽어!' 결국 미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서게 됩니다. 약자 앞에서 한없이 강해지고, 강자 앞에서 한없이 약한 비루한 인간의 군상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정의고 뭐고 없습니다. 오직 강함만이 정의입니다.

 

내가 만든 신과 나를 만든 신

미가의 말에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미가는 단 지파 사람들에게 너희가 내가 만든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갔다고 합니다. 미가는 '내가 만든 신'이라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미가는 자기가 만든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신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신과, 인간을 만든 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미가는 자기가 만든 신을 섬긴 것입니다. 그럼 그 신이 능력이 있을까요? 자기가 만든 신은 강한 자를 만나면 결국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맙니다. 미가가 만들어 세운 제사장도 더 좋은 것을 제시하는 단 지파를 따라갑니다. 결국 자기 보다 더 강한 것에 무너져 버리는 것이 인간이 만든 신의 한계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반드시 나보다 강한 것을 만납니다. 그것과 나 자신을 비교하다가 불행해집니다. 나보다 강한 것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보다 더 강한 것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려면, 결국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게 바로 나를 만드신 하나님입니다. 미가는 상대가 자기보다 더 강한 것을 알고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갑니다. 더 강한 것을 만나자 꼬꾸라진 것입니다. 이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자기가 만든 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한 상대를 만나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강한 자를 쫓아갑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만든 신은 결국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약한 자에게는 강한 자로서 군림하나, 강한 자 앞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이 지배하는 힘의 원리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철저히 하나님을 이용하다

단 지파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미가의 은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겉으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라이스로 올라가 전투를 치르고 성을 빼앗아야 하기에, 영빨이 좋고 신통한 제사장을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내면을 보면, 두려움과 불안 때문입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면서, 두렵고 불안하니깐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것도 남이 섬기는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만들어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중심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정직하게 행하거나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철저히 하나님을 이용한 것입니다.

 

이런 악한 단 지파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바라보시고 침묵하십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단 지파 자손은 평화롭게 지내던 라이스 백성에게 가서 결국 그들을 칼로 쳐서 죽이고 성을 빼앗습니다. 살육과 약탈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을 단이라고 바꾸어 버립니다. 30절을 보면, 단 지파가 데리고 간 미가의 레위인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모세의 손자로 소개되는 요나단이라는 사람입니다. 이름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결국 단 지파의 대제사장으로서 지내면서 후손까지도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입니다.

 

약속을 따라 자리잡지 못한 자들의 최후

이처럼 잠시잠깐은 악한 세력이 승승장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길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이 사건 이후로 단 지파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활동 기록이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단 지파는 미가가 만든 우상을 빼앗아 지파 전체의 제단을 쌓았기에, 우상 숭배를 제도적으로 채택하게 된 범죄 집단이 되어버립니다. 가장 빨리 타락하였을 것이고 회복 불능한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도 사라지게 되고, 이스라엘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세력이 점점 약해지다가, 이방 민족에게 점령당해 완전히 사라졌을 것입니다. 아니면 옮겨간 그 땅에서도 만족하지 못하여 또 다시 다른 땅을 찾아 떠나갔다가 이름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을 보면, 인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십사만사천명이 나옵니다. 열두 지파에서 각각 만 이천 명씩 나오는데, 지파 이름 중 단 지파가 빠져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의 명단에서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땅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어디 더 좋은 것이 없을까 헤메다가 결국 제대로 된 것 하나도 잡지 못하고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원의 하이에냐처럼 남이 잡은 사냥감이나 빼앗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기 이익을 구했던 자들의 최후입니다. 미가와 단 지파의 이야기는 한 개인에서 시작된 영적인 일탈이 한 집안으로 번지고, 그리고 한 지파까지 이어져서 결국 그 지파가 하나님 나라 백성에서 제외된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오직 소명에 충실하길 바랍니다. 주신 약속을 이루는데 마음을 다하십시오. 지금 당장은 미약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오직 믿음으로 주신 사명과 약속에 충실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모두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