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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사사기 17장 1절-13절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by 알렉스강 2024. 7. 2.

사사기 17장 1절-13절 새번역

 

1 에브라임 산간지방에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다.

2 그가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누군가가 은돈 천백 냥을 훔쳐 갔을 때에, 어머니는 그 훔친 사람을 저주하셨습니다. 나도 이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보십시오, 그 은돈이 여기 있습니다. 바로 내가 그것을 가져 갔습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였다. "얘야, 주님께서 너에게 복 주시기를 바란다."

3 그는 은돈 천백 냥을 어머니에게 내놓았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나의 아들이 저주를 받지 않도록, 이 은돈을 주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치겠다. 이 돈은 은을 입힌 목상을 만드는 데 쓰도록 하겠다. 그러니 이 은돈을 너에게 다시 돌려 주마."

4 그러나 미가는 그 돈을 어머니에게 돌려 주었다. 그의 어머니가 은돈 이백 냥을 은장이에게 주어, 조각한 목상에 은을 입힌 우상을 만들게 하였는데, 그것을 미가의 집에 놓아 두었다.

5 미가라는 이 사람은 개인 신당을 가지고 있었다. 에봇과 드라빔 신상도 만들고, 자기 아들 가운데서 하나를 제사장으로 삼았다.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7 유다 지파에 속한 유다 땅 베들레헴에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레위 사람으로서 그 곳에서 잠시 살고 있었다.

8 그 사람이 자기가 살던 유다 땅 베들레헴을 떠나서 있을 곳을 찾다가, 에브라임 산간지방까지 와서,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9 미가가 그에게 물었다. "젊은이는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그가 대답하였다. "나는 유다 땅 베들레헴에 사는 레위 사람인데, 있을 곳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10 미가가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 집에 살면서, 어른이 되어 주시고, 제사장이 되어 주십시오. 일 년에 은돈 열 냥을 드리고, 옷과 먹거리를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그 젊은 레위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11 그 젊은 레위 사람은 미가와 함께 살기로 하고, 미가의 친아들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다.

12 미가가 그 레위 사람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세우니, 그 젊은이는 미가 집안의 제사장이 되어, 그의 집에서 살았다.

13 그래서 미가는, 자기가 이제 레위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으니, 주님께서 틀림없이 자기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한 가정사를 통해서 바라본 사사시대의 사회상

사사기는 총 2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과 2장은 서론 역할을 하고, 3장부터 16장까지는 본문으로 본격적으로 12명의 사사를 언급합니다. 17장부터 21장은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특정한 사사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사사시대의 전반적인 이스라엘의 사회상을 보여줍니다. 묘사된 당시 사사기 시대의 모습은 신명기의 신학적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복을 받지 않는다라는 논리가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특히,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계시지 않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행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장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이스라엘의 어느 한 가정사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담담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명확한 기준이 중요하다

에브라임 지파에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가에게 어머니가 있었는데 돈이 꽤나 많은 자였습니다. 자신이 가진 돈 중에서 은 천백 세겔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사기 16장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잡기 위해 들릴라에게 준 돈이 은 천백 세겔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가의 어머니가 들릴라일 수도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지만, 이를 입증할 다른 증거는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여인이 들릴라일지 아닐지가 아니라, 들릴라나 미가의 어머니가 모두 타락하고 간음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한다는 사실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은 천백 세겔을 잃어버린 후 온갖 욕과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시대 사람들은 저주나 축복의 말이 주술적인 힘을 가진다고 강하게 믿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듣던 아들 미가는 가슴이 뜨끔했는데, 자신이 그 돈을 훔쳐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미가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한 일이라고 자백하고 돌려드렸습니다. 보통 어머니라면 아들을 꾸짖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미가의 어머니는 도리어 아들을 칭찬하며 하나님이 너에게 복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이를 얼버무리며, 혹시나 자신의 저주가 아들에게 임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기준을 분명하게 가지고 일관되게 대하는 것입니다. 기준이 없는 부모의 태도는 자식에게 상처와 악영향을 끼칩니다. 이랬다가 저랬다 하면, 아이들은 혼란스럽습니다. 지난번에는 뭐라고 안 했는데, 이번에는 왜 그러냐고 따집니다. 화가 나는 것이지요. 에베소서 6장 4절에서도 바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꾸짖어야 할 때 꾸짖지 않고, 칭찬해야 할 때 칭찬하지 않는다면, 자식의 인격이 망가집니다. 신앙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좋은 이야기와 위로의 말만 듣고, 편안하고 달디 단 설교만 들으면 성도들의 신앙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미가의 어머니는 당시 이방 신을 섬기는 풍습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저주를 했다면 동일한 신의 이름으로 축복을 하면 그 저주가 상쇄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어머니는 자기 자식이 저주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린다며 은으로 신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은을 돌려주겠다고 하며, 신상을 두 개 만들라고 시켰습니다. 하나는 부어서 만들고, 하나는 새겨서 만들라고 하였고, 이렇게 하면 자신이 내린 저주가 아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미가는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하고 은을 받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은 이백 세겔을 가지고 은장이에게 신상을 두 개 만들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 중 하나가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2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가의 어머니는 은으로 아들을 위해 우상을 만들면서, 이것이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하나님의 기분을 풀게 하여서 아들에게 떨어질 저주가 없어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달래려 했다는 것이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편의적인 생각입니다. 심지어 미가의 어머니는 바치려 했던 은 천백 세겔 중 이백 세겔만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려 했던 처음 마음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훨씬 줄어든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재산 전체를 바친다고 하고는 반절은 숨기고 바쳤다가 하나님께 진노를 받아 죽었던 일과 같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상을 세우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을 내가 편안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만나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격과 인격이 부딪히는 일은 불편한 일입니다. 부부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평생 맞추어가는 일입니다. 내가 편한 것만 하려고 한다면, 부부 관계가 결코 좋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나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편안하게 만난다면 그 관계는 망가져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이성과 생각으로 내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하나님을 만들어 놓으면, 그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만든 우상일 뿐입니다.

 

개인과 집안을 위한 기복 종교로 타락시키다

미가는 어머니가 제작해 준 신상 두 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를 이용해 집 안에 신당을 만들고, 신상을 모셨습니다. 제사를 집례 할 제사장을 세워야 했는데,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아 버립니다. 미가는 에브라임 사람인데, 레위인도 아니면서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은 것입니다. 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만들고, 하나님의 신탁을 받을 때 사용하는 드라빔도 준비했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빌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이 신상을 이용해서 주변 사람들을 불러다 제사를 지내면서 종교 장사를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생명과도 같은 여호와 신앙을 한 개인과 그 집안을 위한 기복 종교로 타락시킨 것입니다.

 

미가는 은신상과 에봇이나 드라빔을 일종의 부적처럼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부적이 되어서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 부적을 가진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집에 십자가와 성경으로 가득 채우고 있어도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참으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입니다. 부모의 돈을 훔치는 아들입니다. 어머니에게 받은 신상으로 축복도 받고 돈벌이를 위한 수단까지 삼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제8계명도 어겼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도 어겼으며,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제2계명도 어겼습니다. 동기나 과정 모두가 옳지 못합니다. 그러니 결과까지도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한 젊은 레위인의 타락

당시 유다 지파에 속한 한 젊은 레위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유다 지파 내에서 제사장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레위인의 생계는 레위인들이 살고 있는 지파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 일이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율법에 따르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가장 강성한 유다지파에서도 행하지 못했다면, 다른 지파는 보나 마냐입니다. 아마도 레위인 다수가 생계에 큰 위협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젊은 레위인이 어디로 가서 정착할까 떠돌아다니다가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미가의 집을 우연히 지나가게 된 것입니다.

 

마침 레위인이 자기 집에 왔기에 미가는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해마다 은 열 세겔과 의복 한 벌,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가정 제사장직을 제안했습니다. 아마도 자기 아들보다는 이 젊은 레위인이 제사장을 수행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미가는 이미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지만, 사실 명분이 부족했습니다. 신분이 확실한 레위인으로 있다면 자신의 집에서 은신상을 모시고 드리는 제사가 사람들이 훨씬 더 신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일정한 거처 없이 생계에 곤란을 느끼며 자신이 일할 곳을 찾던 레위인 청년은 미가의 제안은 더없이 좋았습니다. 기꺼이 수락하고 마가의 집안 제사장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미가는 악덕 고용주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젊은 레위인을 아들처럼 여기며 잘해주었습니다. 레위 청년도 만족해했습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에 좋은 관계가 유지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좋으면 뭐 합니까? 하나님 보시기에는 전혀 좋지 않습니다. 미가는 레위인이 자기 제사장이 되었기에 복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신당에 신상도 세우고 에봇과 드라빔, 거기다 레위인까지 있으니 모든 것을 갖춘 것이었습니다. 미가는 자신과 자기 집에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 확신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미가의 제사를 받아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서로의 이익만 중요할 뿐, 하나님의 뜻이나 영광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신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의 문제점

오늘 본문은 앞서 말한 것처럼 한 가정사의 여러 군상들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머니와 어머니의 돈을 훔친 아들, 아버지가 시킨다고 제사장 자격이 없는데 제사장으로 행세한 아들, 생계가 막막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인간적인 이해관계가 맞아 한 집안의 제사장직을 수행한 레위인 청년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무엇보다 신앙을 자의적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복을 받고 안전하기 위해 인간적인 수단을 쓴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게 생각하는 것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이는 자기 의를 세우고자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 것입니다.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벌레와 같은 우상의 영광으로 바꾼 영적인 범죄행위입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과 도덕의 기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없으면 결국에는 각자 개인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이 주시는 가르침을 따라 우리의 신앙의 기준과 가치관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형식만 남고 내용은 사라질 것입니다. 기준이 되는 신앙관과 삶의 철학이 없으니 외형적인 것만 흉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위선인 형식주의적 신앙도 결국 이로 인해 생겨난 것입니다.

 

미가는 겉보기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틀을 다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외식에 치우친 형식주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형식만 갖추고 하나님의 복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여기십니다. 미가는 결국 이 모든 것으로 종교 장사를 하려 했습니다. 마지막은 결국 돈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미가뿐만 아니라 유다 지파에 속한 레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돈 줄 사람이 있는지 찾아다니다가, 한 개인이 고용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 레위인은 단 지파가 더 높은 연봉과 명예로운 직위를 주겠다고 제안하자 주저 없이 떠나 버렸습니다. 이 레위인은 제사장 신분을 단지 자신의 생계와 입신을 위한 세상의 직업 중 하나로 생각한 세속적 종교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사사기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하고 얼마나 제멋대로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간 데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게 불편해도 그 뜻에 순종하겠다는 태도가 없다면, 결국 자신에게 편안한 대로 하나님을 바꾸어가는 신앙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신앙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아는 레위인도 그러한데, 하나님 말씀을 잘 모르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이들은 어쩌면 하나님을 우상 중 하나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하나님 뜻을 쫓아가는 신앙이 아니라, 내 감성과 내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우상이지 참된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사사기 17장 6절에서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왕은 권력을 가진 왕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기준을 잡아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기준이 바르지 않으면, 우리 인생도 엉망이 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무너져 버립니다. 내가 모든 것을 좌우지 하겠다는 우리 안에 있는 깊은 욕망이 모든 것을 망칩니다. 하나님을 내 손으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불손하고 교만한 태도입니다. 내 자신의 인생, 내가 속한 교회, 심지어 하나님까지 내가 마음대로 좌우지하려는 것은 타락한 증거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불편하게 섬겨야 합니다.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하나님은 내가 만든 거짓된 우상일 뿐입니다. 내 뜻을 이루어주기만 하는 편안하지만 거짓된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 뜻을 따르도록 나의 뜻을 내려놓게 하시는 불편하지만 참된 하나님을 섬기는 모두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