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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사사기 18장 1절-12절 아직 자리 잡고 살 땅을 찾고 있었다

by 알렉스강 2024. 7. 3.

사사기 18장 1절-12절 새번역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스라엘의 지파들 가운데서 아직 그들이 유산으로 받을 땅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이 자리잡고 살 땅을 찾고 있었다.

2 그래서 단 지파 자손은 소라와 에스다올에 살고 있는 지파의 온 가문에서 용감한 사람 다섯 명을 뽑아서 땅 정찰 임무를 맡기고, 땅을 탐지하고 살피도록 보냈다. 그들은 에브라임 산간지방으로 들어섰다가,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하룻밤을 묵었다.

3 미가의 집에 머무는 동안 그들은 그 젊은 레위 사람의 억양과 말씨를 알아 듣고,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누가 당신을 이리로 데려왔습니까? 당신은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습니까?"

4 그러자 그는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미가가 나에게 조건을 제시하고 나를 고용하여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5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성공할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십시오."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평안히 가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이 가는 그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고 일러주었다.

7 그래서 그 다섯 사람은 길을 떠나 라이스로 갔다. 그들은 그 곳 사람들이, 한가하고 평화롭게 사는 시돈 사람들처럼, 안전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땅에는 어느 누구도 권력을 쥐고 그들을 해치는 자가 없었다. 그들은 시돈 사람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느 누구와도 접촉이 없었다.

8 다섯 사람이 소라와 에스다올로 돌아와 그들의 백성에게 이르렀다. 그들이 그 다섯 사람에게 정찰한 내용을 물으니,

9 그들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서 가서, 그들을 치도록 합시다. 우리가 본 그 땅은 정말 좋은 땅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닙니다. 망설이지 말고 빨리 쳐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10 우리가 거기에 가기만 하면, 넓은 땅에서 평안하게 살고 있는 백성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는 곳입니다."

11 단 지파 가족들 가운데서, 육백 명이 무기를 들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길을 떠났다.

12 그들은 유다 땅에 있는 기럇여아림에까지 가서 진을 쳤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마하네단이라 불리고 있는데, 그 곳은 바로 기럇여아림 서쪽에 있다.

 

 

단 지파가 거주할 땅을 찾아 나서다
18장은 단 지파가 거주할 땅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 19장을 보면 단 지파가 분배받은 땅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북쪽 땅과 유다 남쪽 사이에 있는 비옥한 땅이 단 지파에게 배분된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모리 족속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단 지파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아모리 족속과의 충돌이 불가피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단 지파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때까지 기업을 분배받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이는 땅을 분배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사기 서론에서 이야기했듯이 이스라엘 지파들은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려 했지만, 많은 경우 성공하지 못하고 그들과 섞여 살았습니다. 사사기 1장과 2장에서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라는 문장이 9번이나 반복됩니다. 단 지파의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사사기 1장 34절에 따르면, 아모리 사람들은 단 지파를 산간지방으로 몰아넣고, 낮은 지역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단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쫓겨난 것입니다. 땅을 분배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땅을 차지하지 못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단 지파는 자신들이 분배받은 땅의 극히 일부인 산지에 머물며 북쪽의 아모리 족속과 남쪽의 블레셋 족속 사이에 끼어서 살았습니다. 삼손이 사사로 있을 때 잠시 숨을 돌렸으나, 삼손이 죽고 나서 다시 블레셋에게 계속해서 괴롭힘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블레셋은 해양 문화권에 철기 문화까지 가진 문명이 뛰어난 민족입니다. 블레셋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 지파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단 지파는 민수기 26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64,400명의 장정을 가진 큰 지파였습니다. 유다 다음으로 싸울 수 있는 장정의 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도전하려는 용기 없이 아모리 족속과 블레셋 족속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적과의 싸움에서 치러야 할 고난과 희생이 두려웠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정복하고 개척하는데 안일했습니다. 결국 떠돌아다니는 것을 택했고, 그저 손쉽게 차지할 땅을 찾으려 사방으로 기웃거리며 다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지 몇 백년이 흘렀는데도, 단 지파는 그 시간까지 유랑하며 산 겁니다.

 

다섯 명의 정탐꾼을 보내다

결국 단 지파는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물려주신 땅을 버리고 다른 땅으로 이주하기 위해 정탐꾼을 보내게 됩니다. 5명의 정탐꾼은 새로운 땅을 찾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사사기에서는 이들을 용맹스러운 다섯 사람이라고 표현하지만, 그리 적절하거나 적합한 표현은 아닌 듯합니다. 이들은 아모리와 블레셋과 싸우는 대신 피할 곳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탐꾼들은 에브라임 산지를 지나가다가 미가의 집에 유숙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익숙한 레위인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워합니다. 단 지파는 유다 지파에 가까이 살았기에, 유다 지파 출신인 레위인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유다 지파에 속한 레위인에게 왜 그곳에 있는지 묻습니다. 왜 에브라임 지파에 와서 한 개인의 집에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3절입니다. “누가 당신을 이리로 데려왔습니까? 당신은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습니까?” 이것은 사실 매우 직설적이면서 노골적인 질문입니다. 제사장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인간적인 이유를 물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연봉 얼마에, 누가 스카우트해서, 어떤 일을 하는지 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레위인의 대답도 충격적입니다. 4절입니다. “그러자 그는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미가가 나에게 조건을 제시하고 나를 고용하여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자신은 연봉을 얼마를 받으며 한 개인의 제사장 역할을 한다고 매우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제사장을 감당하는데 하나님이 이 집에 부르셨다는 그 어떤 소명 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고용되어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유랑자들

레위인의 말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단 지파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새로운 땅을 찾아가는 길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 뜻과 인도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살기 위해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미가의 집에 고용된 레위인이나, 단 지파에서 파견된 다섯 명의 정탐꾼이 일종의 동병상련을 느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좋게 보자면 굉장히 인간적인 마음입니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자들의 마음을 알고 서로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 없는 유랑자일 뿐입니다. 이들은 광야의 이리떼와 다를 바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감정적인 위로에 그치는 신앙생활로 만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힘든 인생 세상에서 고난 받고 오갈 데 없이 떠돌이로 살아가다가 만나서 서로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물론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과, 자기 뜻대로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 뜻을 행할 마음은 하나도 없으면서, 결국 자기 뜻대로 행하다가 낙담되어서 하나님 보고 위로해 달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위로받고 돌이켜서 하나님 뜻을 행한다면 모를까, 위로만 해주세요, 위로받고 힘 얻으면 내 뜻대로 할게요, 이렇게 한다면 하나님 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거짓된 예언 기도의 함정

정탐꾼들은 레위인에게 자신들의 길이 형통할지 하나님께 물어봐달라고 요청합니다. 레위인은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라고 대답합니다. 정탐꾼들이 이미 정해 놓은 계획에 대해 하나님께 재가를 구하는 기도였지만, 레위인은 그들에게 듣고 싶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할 여지는 하나도 없게 해놓은 상황에서 이들이 구하는 기도는 오직 자신들의 복과 형통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레위인이 좋은 말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런 심정일 수 있습니다. 어차피 확률은 반반인데, 이왕이면 위로해 주고 좋은 말 해줘야지 한 것입니다.

 

기독교인 중에서 예언 기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이 자기가 듣기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기도를 받으려고 합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없애기 위함입니다. 물론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면, 사람이 없던 용기가 생겨서 잘 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내가 하는 것을 지지해 주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빙자해서 거짓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걸 알고 예언하는 사람들이 좋은 말만 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악한 행동입니다.

 

사실 이런 마음은 무당이나 점 집에 가서 복채 내고 내가 원하는 답 해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언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미리 앞서서 주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주신 말씀도 아닌데,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 뜻이라 말한다면 거짓 예언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거짓 예언들이 이상하게도 맞는 것입니다. 미가의 집 제사장이 ‘평안히 가라! 형통할 것이다.’ 그랬더니,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정탐꾼들이 좋은 땅을 찾아내게 됩니다. 이것은 악한 영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악한 역은 옳커니 하면서 이걸 들어줍니다. 자기의 욕망대로 이 땅의 형통을 누리게 함으로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악한 영의 역사에 사람들은 혹하게 됩니다. 신기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야! 아주 신통하네. 영빨이 있네. 우리가 데리고 가서 아예 우리 지파의 제사장으로 시키면 좋겠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안을 합니다. ‘한 가정의 제사장이 낫니? 한 지파의 제사장이 낫니?’ 오늘날로 바꾸어 말하면 이렇습니다. ‘너, 작은 개척교회 목사 할래? 수천수만 명 되는 대형교회 목사 할래?’ 그러니까 이 레위인이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미가가 좋은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기를 거두어준 사람을 배반하고 더 큰 부와 명성을 쫓아 따라가 버렸습니다. 결국 단 지파 사람은 이후에 미가의 집의 레위인을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아버립니다. 철저하게 자신들의 기복을 위한 제사장으로 삼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하나님의 영도 함께 하지 않는다

정탐꾼들은 라이스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합니다. 그들은 모세 때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것처럼, 그 땅이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헐몬산으로 둘러싸여 다른 민족으로의 침입으로부터 단절된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평화롭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정탐꾼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라고 하면서 독려합니다. 단 지파는 무기로 무장한 600명을 이끌고 마하네단에서 출정식을 합니다. 마하네단은 단의 진영이라는 뜻으로, 삼손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했던 곳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이 자신들에게 임하여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달라는 염원을 담고 출정식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 아닙니다. 단 지파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이 있습니다. 아무리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이더라도 하나님의 약속한 땅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백성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약속 안에서만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단 지파의 문제는 약속한 땅은 내버려둔채 엉뚱한 곳에 가서 힘을 뺀다는 것입니다. 자리 잡지 못하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죽을 각오로 블레셋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싸웠다면, 반드시 그 땅을 차지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기에, 하나님의 영을 주셔서 여호와의 전쟁을 통해서 승리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단 지파에게는 그 보다 더 좋은 땅이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것에 목숨을 걸고 싸워 온전히 얻게 되면 정말 내게 주신 것이 가장 값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에 내 뜻대로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계획과 약속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과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땀과 피가 필요합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어지지만, 그 구원을 지키는 데는 우리의 헌신이 요구됩니다. 영적인 자유는 은혜로 주어지지만,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과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 노력 없이 하나님을 탓하고, 주어진 계획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더 쉽고 근사한 곳을 찾아 나서고, 수고스럽지 않은 일을 찾습니다. 불로소득을 꿈꾸고, 일확천금을 바랍니다. 노력 없이 얻는 공짜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단지파 사람처럼 인간적인 방법을 간구하게 되고, 그리고 결국 악한 영까지 불러 들어서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혀 오간 데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없으면, 내 마음대로 하려 합니다. 놀고먹으려는 마음, 쉬운 방법을 찾으려는 것, 값싼 은혜를 구하는 모든 것이 결국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탓하지 마십시오. 누굴 원망하지 마십시오. 결국 문제는 내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내 안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욕망에 따라서 인생을 쉽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생각하거나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택에 있어 하나님을 생각하고 고려하십시오.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삼으십시오. 인생은 불편할 수 있으나, 반드시 값진 열매를 맺으며 그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