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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사사기 16장 1절-22절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오

by 알렉스강 2024. 6. 29.

사사기 16장 1절-22절 새번역

 

1 삼손이 가사에 가서, 창녀를 하나 만나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2 삼손이 거기에 왔다는 말을 들은 가사 사람들은, 그 곳을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숨어 그를 기다렸다. 동이 틀 때를 기다렸다가 그를 죽이려고 생각한 그들은 밤새 가만히 있었다.

3 그러나 삼손은 밤늦도록 누워 있다가, 밤중에 일어나서 성 문짝을 양쪽 기둥과 빗장째 뽑았다. 그는 그것을 어깨에 메고 헤브론 맞은편 산꼭대기에 올라가, 거기에다 버렸다.

4 그 뒤에 삼손은 소렉 골짜기에 사는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들릴라였다.

5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이 그 여자를 찾아와서 말하였다. "당신은 그를 꾀어 그의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잡아 묶어서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알아내시오. 그러면 우리가 각각 당신에게 은 천백 세겔씩 주겠소."

6 그래서 들릴라가 삼손에게 물었다. "당신의 그 엄청난 힘은 어디서 나오지요? 어떻게 하면 당신을 묶어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말해 주세요."

7 삼손이 그에게 말해 주었다. "마르지 않은 푸른 칡 일곱 매끼로 나를 묶으면, 내가 힘이 빠져서 여느 사람처럼 되지."

8 그리하여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이 마르지 않은 푸른 칡 일곱 매끼를 그 여자에게 가져다 주었고, 그 여자는 그것으로 삼손을 묶었다.

9 미리 옆 방에 사람들을 숨겨 놓고 있다가, 그에게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삼손은 그 밧줄을 불에 탄 삼 오라기를 끊듯이 끊어 버렸다. 그의 힘의 비밀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자

10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였다. "이것 봐요. 당신은 나를 놀렸어요. 거짓말까지 했어요. 무엇으로 당신을 묶어야 꼼짝 못 하는지 말해 주세요."

11 삼손이 그에게 말하였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밧줄로 나를 꽁꽁 묶으면, 내가 힘이 빠져서 여느 사람처럼 되지."

12 들릴라는 새 밧줄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그를 묶었다. 미리 옆 방에 사람들을 숨겨 놓고 있다가, 그에게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삼손은 자기 팔을 묶은 새 밧줄을 실오라기 끊듯이 끊어 버렸다.

13 그러자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여전히 나를 놀리고 있어요. 여태까지 당신은 나에게 거짓말만 했어요! 무엇으로 당신을 묶어야 꼼짝 못 하는지 말해 주세요." 삼손이 그에게 말하였다. "내 머리칼 일곱 가닥을 베틀 날실에 섞어서 짜면 되지."

14 그 여자는 그것을 말뚝에 꽉 잡아 매고, 그에게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삼손이 잠에서 깨어나 말뚝과 베틀과 천을 뽑아 올렸다.

15 들릴라가 그에게 또 말하였다. "당신은 마음을 내게 털어놓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 이렇게 세 번씩이나 당신은 나를 놀렸고, 그 엄청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직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어요."

16 들릴라가 같은 말로 날마다 끈질기게 졸라대니까, 삼손은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 되었다.

17 하는 수 없이 삼손은 그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 놓으면서 말하였다. "나의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 본 적이 없는데, 이것은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오. 내 머리털을 깎으면, 나는 힘을 잃고 약해져서, 여느 사람처럼 될 것이오."

18 들릴라는 삼손이 자기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은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에게 전하였다. "한 번만 더 올라오십시오. 삼손이 나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이 약속한 돈을 가지고 그 여자에게 올라왔다.

19 들릴라는 삼손을 자기 무릎에서 잠들게 한 뒤에, 사람을 불러 일곱 가닥으로 땋은 그의 머리털을 깎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를 괴롭혀 보았으나, 그의 엄청난 힘은 이미 그에게서 사라졌다.

20 그 때에 들릴라가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삼손은 잠에서 깨어나 "내가 이번에도 지난 번처럼 뛰쳐 나가서 힘을 떨쳐야지!" 하고 생각하였으나, 주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21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사로잡아, 그의 두 눈을 뽑고, 가사로 끌고 내려갔다. 그들은 삼손을 놋사슬로 묶어, 감옥에서 연자맷돌을 돌리게 하였다.

22 그러나 깎였던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였다.

 

 

이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삼손 이야기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삼손과 들릴라의 비극이지요. 무적 천하장사인 삼손이 힘 하나 쓰지 못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서 두 눈이 뽑힌 채, 소처럼 연자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추락한 사건은 지금 들어도 충격적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인생에 나락에 떨어진 한 인간 실존의 비참함을 일깨웁니다. 자칫 인생의 발걸음을 헛디뎌 바닥에 떨어졌을 때 받게 되는 참혹한 대가가 너무나 비싼 것을 실감케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마다의 인간의 악함과 이기심과 대비되어 나타나는 진리의 가르침들이 빛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지 인생에게 주는 실천적인 삶의 교훈만이 있지는 않습니다. 바로 성경의 큰 맥이라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비밀이 삼손의 마지막 장면에도 자신을 감춘 채 유유히 흘러갑니다.

 

따라서 삼손의 이야기를 볼 때, 두 가지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율법적 관점입니다. 삼손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삼손이 저지른 실수를 우리가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구속사적 관점입니다. 삼손이나, 블레셋 여인,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을 구속사의 모형으로 해석해서 복음의 메시지를 도출하는 것입니다. 한쪽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두 관점 모두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이 전해주는 이중적인 메시지를 잘 살펴서 오늘 말씀이 주는 교훈과 깨달음을 함께 누리길 바랍니다.

 

블레셋 성읍 기생의 집에 삼켜진 삼손

본문 1절을 보시면 삼손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블레셋의 큰 성읍인 가사로 내려갔습니다. 가사는 블레셋의 중심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적진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거예요. 블레셋의 공공의 적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블레셋의 기생의 집으로 들어가 자신의 욕망을 채웁니다. 삼손은 블레셋의 깊숙한 지역까지 스스럼없이 다닐 정도로 자신을 과신했습니다. 그 어떤 신중함도 없이 막무가내로 행동했습니다. 너무나 대책 없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손은 가사에서 한 기생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그 기생집으로 들어가 동침합니다.

 

1절에서 창녀를 하나 만나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여기서 들어가다는 히브리어 보בּוֹ는 어떤 것을 삼켜서 안으로 넣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삼손은 자기 욕망을 채우고자 했으나, 오히려 기생의 집 안으로 삼켜진 것입니다. 그리고 기생이라고 번역이 된 조나זונה라는 단어도 원래 창녀, 간음한 여자라는 뜻 외에도 우상을 섬기는 자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이 처음에는 나의 욕심을 채우는 듯 하나 결국에는 내가 삼켜지는 것입니다. 결국 기생에게 삼켜진 삼손은 화를 당하게 됩니다. 삼손이 블레셋 지역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블레셋 사람들은 밤새 그 집을 에워싸고 성문에 매복했습니다. 그가 새벽에 나오면 잡아 죽이려는 계획이었습니다.

 

대적의 문을 취하다

삼손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주변에 블레셋 사람이 자신을 죽이고자 모였다는 것을 알고 한밤중에 일어나 성문짝과 문설주, 문빗장을 뽑아 어깨에 메고 약 64km 떨어진 해발 900m의 헤브론 앞산까지 걸어갔습니다. 실로 엄청난 힘을 보인 것입니다.  블레셋이라 불리는 대적의 땅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성읍의 문은 일반적으로 성읍 전체를 상징합니다. 성읍의 문이 뽑혔다는 건, 성읍이 방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블레셋 성읍의 군사들이 삼손에게 무기력하게 당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삼손이 블레셋의 중심 가사 성읍에서 가장 음란한 기생의 집에 삼켜졌지만, 오히려 기생의 집을 부수고 나아와, 성읍의 문까지도 박살 내어 그것을 가나안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삼손이 무너뜨린 집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이트בַּיִת입니다. 이것은 집 이외에 휘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삼손이 무너뜨린 집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휘장을 찢으심으로 그 장벽을 허무는 사건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문이라는 단어인 소프סַף는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대적의 문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모두 삼손이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대적을 정복하는 사건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성읍 기생의 집에 들어갔다가 결국 성읍 문짝을 뽑아 헤브론으로 옮기는 장면은, 메시아가 세상의 바벨론 성읍을 정복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메시아의 모형인 삼손이 음녀 바벨론과 한 몸이 되어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승리를 이루는 것을 보여줍니다. 삼손이 대적의 문을 뽑아 약속의 땅으로 가져가는 것은, 예수께서 대적을 진멸시키고 약속의 땅을 성취하시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삼손의 죽음은 블레셋과 간음하여 창녀가 된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한 희생이며, 이것은 예수께서 죄인의 자리에 내려오셔서 그들의 죽음을 대신 죽으신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삼손의 마지막은 블레셋의 집, 즉 블레셋의 성전이 무너지는 것으로 끝나며, 이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연결됩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속의 이야기를 미리 보여주는 모형인 것입니다.

 

어두운 밤의 여인 들릴라

가사에서의 위기를 겪고도 삼손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시 블레셋의 소렉 골짜기로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들릴라라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삼손은 들릴라를 딤나의 블레셋 여인 이상으로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들릴라는 블레셋 여자가 아닌 듯합니다. 들릴라는 이스라엘 사람의 이름에 가깝고, 소렉골짜기의 위치가 유다 지파의 관할이라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여겨집니다. 들릴라를 블레셋 이방 여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들릴라는 간음한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버린 당시 이스라엘의 사람들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어찌 되었든 삼손은 자기 욕망에 따라 눈에 보기에 좋은 여인을 사랑한 결과가 자신에게 수치와 화를 불러왔음에도 멈추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약점은 고질적이어서 똑같은 일로 거듭해서 시험을 당합니다. 삼손의 모습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는 연약하고 악한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호시탐탐 삼손을 죽일 기회를 노리던 블레셋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들릴라에게 삼손을 꾀어 그의 큰 힘의 비밀을 알아내면 각각 은 천백 개씩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들릴라는 아무런 고민 없이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것을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생명을 이어내는 복된 모습니다. 그러나 한쪽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자신의 경제적인 이유나 육체적 욕망이 우선이 된다면, 결국에는 관계가 파괴가 됩니다.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지만, 들릴라는 돈을 사랑했습니다. 들릴라는 죄책감 없이 삼손을 조종하며 그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려 했습니다. 삼손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결국 들릴라의 집요한 질문에 굴복하게 됩니다. 들릴라가 한 행동은 일종의 가스라이팅과도 같습니다. 자신과의 관계를 미끼로 계속해서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입니다. 삼손은 들릴라의 요구에 대답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 두려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삼손은 아무 말이나 던져서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습니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해서 설마 이 여자가 자신을 헤아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악한 이들의 집요한 가스라이팅

들릴라는 삼손이 이야기해 준 약점을 블레셋 사람에게 곧장 전달해 주면, 블레셋은 바로 공격의 목표로 삼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새 활줄 일곱으로 결박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새 밧줄로 결박하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머리털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짠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첫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지 않으면 갈수록 죄와 손잡기 수월해집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한 것은 유혹에 대처하는 좋은 본입니다. 죄의 유혹 앞에 장사 없습니다. 유혹의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들릴라는 자신이 잘못했음에도 오히려 큰소리를 칩니다. 사랑을 들먹이며 삼손을 책망합니다. 삼손은 사랑받지 못할 사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대의 악한 의도를 알아차려야 하는데, 마치 그 상황을 즐기는 듯 어리석게 행동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조금씩 조금씩 상대에게 잠식되면서 지배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손의 이름은 태양의 아들, 또는 작은 태양을 뜻합니다. 들릴라의 이름은 어두움과 밤의 여인을 의미합니다. 작은 태양이 어두운 밤에게 잠식되는 모습입니다.

 

들릴라는 최후의 수단을 씁니다. 둘 사이의 관계를 끊자고 한 것입니다. 들릴라의 집요한 추궁에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죄는 우리를 근심케 하고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결국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에 항복하고, 나실인의 비밀을 밝힙니다. 머리카락을 자르면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 없게 된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삼손은 원래 나실인의 규례를 세심하게 생각하면서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포도의 소출을 먹기도 하고, 부정한 사체도 거리낌 없이 손을 대었습니다. 삼손이 나실인의 규례 중 마지막 남은 한 가지 그의 머리에 삭도를 되자, 그 능력이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걸 보면 삼손은 분명히 나실인의 정체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여인에 대한 어리석은 욕망에 따른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마지막 남은 하나님과의 끈을 놓아버리자, 나실인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것입니다.

 

나실인 서약과 갱신의 의무

나실인은 원래 평생 서원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보통 몇 주나 몇 달, 길어도 일 년이나 삼 년 정도 나실인으로 규례를 지킵니다. 만약 그 기간 동안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는 경우 칠일 동안 자숙의 시간을 가지게 하고 마지막 날 머리를 깎게 합니다. 머리를 깎는 것은 이전에 지켜왔던 나실인 서약이 무효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팔일째 되는 날에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성전으로 가지고 와서 하나는 속죄 제물로 바치고 하나는 번제로 드립니다. 그리고 새롭게 나실인 서약을 한 다음에 1년 된 숫양으로 속건제를 드립니다.

 

삼손은 나실인 규례를 어겼기 때문에, 민수기 6장에 나오는 나실인 규례를 통해서 새롭게 언약을 갱신해야 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발적으로 나실인 지위를 회복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삼손이 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인생의 채찍으로 나실인 지위를 박탈시킨 것입니다. 스스로 머리를 깍지 않으니 들릴라를 통해서 하나님이 머리를 깎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나실인의 서약이 무효가 되자, 삼손은 대머리의 모욕과 수치를 일정기간 감내해야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묶어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자기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행동하던 삼손은 두 눈이 뽑혔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안목의 정욕을 상징하는 두 눈을 뽑아 버리셨습니다. 나실인 서약을 무효화하는 비둘기 대신 삼손은 두 눈을 하나님께 속죄의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의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민수기 말씀대로 삼손이 나실인으로서의 서약을 다시 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약속대로 삼손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고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절치부심하던 삼손은 이번 한 번만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라며 스스로 나실인의 서약을 한 다음, 숫양 대신 자신의 육신으로 속건제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약속대로 힘을 주시고, 삼손은 블레셋 대적들과 함께 우상의 신전에서 함께 땅으로 묻혀 버리게 됩니다.

 

율법적 교훈과 구속사적 교훈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삼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교훈을 전합니다. 첫째, 율법적인 교훈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할 때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삼손은 자신의 욕망에 끌려 블레셋의 기생과 함께한 결과, 결국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죄를 바로 세우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계획을 통해 우리를 회복시키시려 합니다. 삼손이 자신의 무지와 죄를 인정하고 나실인의 서약을 다시 맺음으로써 하나님의 힘과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둘째, 구속사적인 교훈입니다. 삼손의 타락은 이스라엘의 고칠 수 없는 영적인 질병의 심각함을 보여줍니다. 삼손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는 인간의 의로움이라고는 먼지 한 끗도 없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것입니다. 삼손의 잘못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지어 삼손의 타락과 악함은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더욱 강화시키고 분명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오늘 본문에서 삼손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주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간 들릴라는 회복 불가능한 죄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몰아가 죽게 만든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결국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구원에 대해서 완전히 실패했으며,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왜 필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