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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사사기 9장 1절-15절 나의 아버지가 왕이니 나도 왕이다

by 알렉스강 2024. 6. 15.

사사기 9장 1절-15절 새번역

 

1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있는 외가의 친척을 찾아가서 그들과 외조부의 온 가족에게 말하였다.

2 "세겜 성읍의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 주십시오. 여룹바알의 아들 일흔 명이 모두 다스리는 것 하고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 하고 어느 것이 더 좋은지 물어 보아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여러분들과 한 혈육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시오."

3 그의 외가 친척이 그의 부탁대로 세겜 성읍의 모든 사람에게 그가 한 말을 모두 전하니,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 기울어져서 모두 "그는 우리의 혈육이다" 하고 말하게 되었다.

4 그들이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일흔 냥을 꺼내어 아비멜렉에게 주니,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건달과 불량배를 고용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였다.

5 그리고 그는 오브라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자기 형제들 곧 여룹바알의 아들 일흔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다. 그러나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만은 숨어 있었으므로, 살아 남았다.

6 세겜 성읍의 모든 사람들과 밀로의 온 집안이 세겜에 있는 돌기둥 곁의 상수리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다.

7 사람들이 이 소식을 요담에게 전하니, 그가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가 서서, 큰소리로 그들에게 외쳤다. "세겜 성읍 사람들은 내 말을 들으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여러분의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8 하루는 나무들이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왕을 세우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들은 올리브 나무에게 가서 말하였습니다. '네가 우리의 왕이 되어라.'

9 그러나 올리브 나무는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10 그래서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11 그러나 무화과나무도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달고 맛있는 과일맺기를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12 그래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13 그러나 포도나무도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14 그래서 모든 나무들은 가시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15 그러자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정말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너희의 왕으로 삼으려느냐? 그렇다면, 와서 나의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 버릴 것이다.'

 


왕이라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필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끼친 악한 영향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왕이라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킨 것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왕이 아니라고 했지만, 왕처럼 행세하였습니다. 기드온이 누리는 세상의 권력과 부를 본 그의 아들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나도 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된 것입니다. 결국 기드온이 뿌린 권력에 대한 욕망의 씨앗이 재앙으로 돌아오게 된 사건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드온 비극적인 가족사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고, 지파 간의 느슨한 동맹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각 지파의 독립성이 강했으며, 이들을 묶어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통치자였으며, 법궤가 있는 장막이 실로에 있어 절기마다 모여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점차 가나안 문화와 종교에 영향을 받아 여호와 신앙이 약화되었습니다. 여호와 신앙이 약화되자 자연스럽게 지파 간의 연합 역시 느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기존 강대국인 애굽에 이어 모압, 암몬, 에돔, 블레셋, 시리아 등 가나안 주변의 민족들이 부상하면서 이스라엘은 이전보다 자주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왕정을 채택했기에, 이스라엘의 지파 동맹 체제와 비교되어 그 취약점이 갈수록 드러났습니다. 민족의 위기 때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사가 등장해 이스라엘을 구했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이었습니다. 사사가 죽고 나면 또다시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여러 지파가 흩어져 살았고, 지파 내에서도 가문별로 움직였기에 이스라엘 전체를 아우르는 중앙 조직이 없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왕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강성해지는데, 이스라엘에게는 이러한 조직이 없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기드온 때 처음 나왔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을 물리치자 사람들이 그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미디안을 기적적으로 물리쳤기 때문에 왕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드온은 이를 사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넘보는 것은 건방지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사실 왕이 되고 싶었지만, 이스라엘 지파 간의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스스로 먼저 선을 그은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기드온이 자신의 입으로 나나 내 후손이나 누구도 왕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옳았습니다.

 

사실상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기드온

하지만 기드온은 왕이 아니면서도 왕처럼 행동했습니다. 미디안 전쟁의 전리품으로 금 귀걸이를 요구했는데, 사실 일종의 세금을 거둔 것입니다. 세금은 왕만 거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게 했습니다. 종교적 권력도 가지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미디안 전쟁에서 동족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잔혹한 복수를 했습니다. 이것은 권력에 취한 독재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드온은 많은 아내를 두어 아들이 70명이나 되었습니다. 왕정국가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왕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결정적으로, 기드온은 세겜의 첩에게서 낳은 아들을 아비멜렉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왕이라는 뜻입니다. 대게 자식의 이름은 아버지가 짓기 때문에, 기드온이 은연중에 자신을 왕이라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설령 기드온이 직접 짓지 않았다고 해도, 세간의 인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왕이 아니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40년간 이스라엘의 왕처럼 행동했습니다. 미디안 전쟁 이후 에브라임 지파와의 갈등도 기드온이 왕처럼 행동한 것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기드온은 정치력을 발휘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가 왕이다

기드온이 이스라엘에서 왕처럼 행동했기에, 기드온의 죽음 이후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권력에 공백이 발생했습니다. 권력이 비어 있으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합니다. 그때 기드온보다 더 처세에 능하고 정치적인 욕망이 강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아비멜렉입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첩의 아들입니다. 시대장소를 막론하고 첩의 자식은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기드온에게는 정실의 아들 70명이 있었으니, 누가 첩의 아들을 아버지를 이을 사람으로 생각했겠습니까? 정식 소생들 사이에서도 서열과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복잡한데, 아비멜렉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비멜렉은 큰 상처를 받고 자랐을 것입니다. 분노와 원한이 쌓인 그는 아버지가 죽자마자 권력욕에 불타올랐습니다. 내 아버지가 왕이었으니 나도 왕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누구보다 강한 권력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위적인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성경 1절과 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있는 외가의 친척을 찾아가서 그들과 외조부의 온 가족에게 말하였다. 세겜 성읍의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보아 주십시오. 여룹바알의 아들 일흔 명이 모두 다스리는 것과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좋은지 물어보아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여러분들과 한 혈육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시오.”

 

아비멜렉의 정치적 수완과 냉혹함

아비멜렉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잡고자 세겜으로 향합니다.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넌 후 가나안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매우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세겜은 이스라엘의 뿌리와도 같은 곳입니다. 아비멜렉은 본인이 세겜 출신이기에 이점을 잘 알고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첩실 자식이었기에 부계의 지역 근거인 오브라에서 기반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모계의 지역 근거인 세겜에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찾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정치인들이 고향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의 지역감정을 이용했습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하는 행동과 같습니다. 지역 유지들을 찾아가 루머를 퍼뜨렸습니다. "오브라의 기드온 아들 70명이 다 왕이 되겠다고 하는데, 이 많은 사람을 왕으로 모시면 얼마나 수탈이 심하겠습니까? 차라리 나 혼자 왕으로 삼는 게 더 이익입니다." 사실 70명 중 왕이 되고자 하는 이는 없었지만, 아비멜렉은 유언비어를 퍼뜨려 여론을 조작했습니다. 여론조작으로 팬덤을 만들고, 지지층을 동원해 대중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돈도 모입니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기 위해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매우 악랄했습니다. 바알브릿이라는 당시 신흥 이단 종교를 이용해 제단에서 은 70세겔을 꺼내 정치 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돈으로 불량배들을 사서 동원했습니다.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로, 원칙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들을 매수해 오브라로 가서 한 날 한 시에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모두 죽였습니다. 아마도 가족 행사에 매복해 일시에 이루어진 학살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정치적 정적들을 일순간에 제거한 것입니다. 오늘날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일들을 모두 저지른 것입니다. 아무리 미워도 어떻게 형제들을 한순간에 다 죽일 수 있습니까? 참으로 권력욕이 얼마나 비정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아비멜렉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아 세겜을 기반으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일종의 반역이자 쿠데타였습니다. 아비멜렉의 왕위 쟁탈 과정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취약한 정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소수의 세력이라도 힘만 모으고 머리만 잘 쓰면 권력을 움켜쥘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책임은 기드온에게 있습니다. 기드온이 왕처럼 행동하며 이스라엘이 모든 권력을 모아 두었기에, 아비멜렉은 정치적 쿠데타로 이스라엘 전체를 쉽게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참으로 아버지 기드온이 가졌던 처세와 수완을 꼭 빼닮았습니다.

 

사실 아비멜렉에게는 지도자로서의 명분이나 소명이 없었습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나라와 민족을 위기에서 구하려는 절박한 필요와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의 행동은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처럼 권력을 탐하는 자가 지도자가 되면, 그의 모든 정치 행위는 결국 자기 욕망을 위한 것이 됩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부패와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듯이, 지도자가 부패하면 사회 전체가 부패하게 되고,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요담의 나무 우화

다행히 대학살 중 기드온의 아들 중 하나인 요담이 살아남아 한 가지 우화를 만들어 이스라엘 전체에게 비극적인 사건을 전합니다. 그리심 산에 올라가 아비멜렉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우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 나무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왕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처음으로 감람나무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으나, 감람나무는 올리브 열매를 맺어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다음으로 무화과나무에게 부탁했으나, 무화과나무 역시 사람들에게 맛있는 열매를 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포도나무에게 부탁했으나, 포도나무도 포도주를 만들어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이 세 나무들은 각각 사람에게 유익한 나무로써, 높임을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자기 일에 만족하였기에, 왕이 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나무들은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가시나무는 애써 싫은 척하면서도 결국 제안을 수락하며, 모든 나무들에게 자기 그늘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그들을 보호할 그늘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결국 다른 나무들을 가두고 가시로 찌르고, 벗어나려 하면 불을 던져 태워버리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기드온의 경우, 어찌 되었든지 왕이 되어 달라는 제안을 사양했습니다. 삼백 명의 군사로 십삼만 명이 넘는 적군을 물리친 엄청난 업적을 남겼으며, 그 동기와 소명도 확실했습니다. 왕이 될 충분한 명분이 있습니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이 될 자격이 있었지만, 자신들이 맡은 사명을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그것으로 행복했습니다. 다른 것을 바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비멜렉에게는 그 어떤 대의와 명분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지난날 형제들에게 받았던 열등감으로 인한 분노와 욕구불만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서 그 이상의 것을 잡고자 모든 악함과 거짓과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한 것입니다. 가시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수 이상의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늘도 만들지 못하면서 권력을 잡기 위해 거짓말을 했습니다. 가시나무 아래 들어가면 가시에 찔리거나 결국 불타 사라지게 됩니다. 가시나무는 본래 땔감으로 사용될 뿐입니다. 가시나무는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나무까지도 땔감으로 불에 타버리게 만든 것입니다.

 

불완전한 민주주의 정치 체제

오늘 우리 시대의 정치를 봐도 그렇습니다. 자격이 있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려고 나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기 때문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격 없는 사람이 나서서 지도자가 되려 합니다. 소명을 발견하지 못한 불행을 다른 욕구로 채우고자 높은 자리를 탐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 이상한 것 같지만, 놀랍게도 현실은 이런 사람일수록 집요하게 권력 의지를 가지고 그 자리까지 올라섭니다.

 

현대 정치 제도인 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든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민주주의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원래 민주주의는 그 시작이 그리스 도시 국가라는 독특한 상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시민이라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소수들이 지적인 토론과 사유를 통해서 구현하고자 한 이상 사회입니다. 오늘날의 간접 민주주의와는 사실 많이 다릅니다. 오늘날처럼 많은 대중들이 서로의 이해관계로 얽힌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에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을 통한 여론 조작이 심하며, 정치를 시작하는 이유가 자기 욕망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격 있는 자를 지도자로 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인 선거 제도는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차선을 선택해 최악을 피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정치

교회는 세속 정치에 거리를 두는 것이 맞습니다. 세상 권력을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시지만, 굳이 하나님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아닌 세상 나라의 정치에 참여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교회가 세상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정치세력을 구축하여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셨을 것입니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 했습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싸우면 교회는 본질을 상실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정치 활동을 해야 할까요? 조심스러운 문제입니다. 일부는 할 수 있겠지만, 권력의 자리를 피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떠밀릴 경우에는 권력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사회를 안정화시킨 후 빨리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도 정치가 있습니다. 장로 제도가 대표적인 민주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교회의 정치는 인간의 약함을 위해서 만들어진 최소한의 안전 장치와 같습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정치가 있기 마련이고, 만약 교회에서 정치가 있다면, 최소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직분자는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 입니다. 이것을 망각하고 주인 노릇 하려고 하니 교회의 참된 주인인 예수님은 계실 곳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람의 명예욕과 권력욕을 자극하여서 직분을 주는 것으로 장사까지 하려고 한다면, 세상보다 더 악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망하는 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일그러진 권력욕이 가져오는 파국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권력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않았는데 주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리고 필요에 의해서 세상을 보다 더 좋게 하기 위해서 타인을 섬기는 좋은 동기로 권력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지, 인위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 과정에서 사단이 틈탑니다. 작전을 잘 짜서 성공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파탄이 납니다. 목적은 달성할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뿌린 잘못된 욕망의 씨앗이 자라 결국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있을 때, 겸손히 주어진 일에 충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며, 스스로를 높이지 않고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가장 낮은 곳인 베들레헴 마구간 구유에 오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