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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사사기 8장 18절-35절 왕이 아니라면서 왕처럼 살다

by 알렉스강 2024. 6. 14.

사사기 8장 18절-35절 새번역

 

18 그런 다음에 그는 세바와 살문나에게 물었다.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더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들은 당신처럼 하나 하나가 왕자와 같았습니다."

19 기드온이 말하였다. "그들은 나의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들이다.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너희가 그들을 살려 주기만 하였더라도 내가 너희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20 기드온은 맏아들 예델에게, 어서 그들을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 어리고 두려워서 칼을 뽑지 못하였다.

21 그러자 세바와 살문나가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사내 대장부답게 네가 직접 우리를 쳐라."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쳐서 죽이고, 그들이 타던 낙타의 목에서 초승달 모양의 장식을 떼어 가졌다.

22 그 뒤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장군께서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 주셨으니, 장군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대를 이어 아들과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23 그러나 기드온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24 기드온은 말을 계속하였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각 사람이 얻은 전리품 가운데서 귀고리 하나씩을 나에게 주십시오." 미디안 군은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모두 금 귀고리를 달고 있었다.

25 그들은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겉옷을 펴고, 저마다 전리품 가운데서 귀고리 하나씩을 거기에 던졌다.

26 그의 요청으로 들어온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나 되었다. 그 밖에도 초승달 모양의 장식품과 패물들,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주색 옷과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다.

27 기드온은 이것들을 가지고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가 사는 오브라 성읍에 두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이 그 곳에서 그것을 음란하게 섬겨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안에 올가미가 되었다.

28 이와 같이 하여 미디안은 이스라엘 사람에게 복종하게 되었고,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은 전쟁이 없이 평온하였다.

29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살았다.

30 그런데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 친아들이 일흔 명이나 되었다.

31 또 세겜에 있는 첩과의 사이에서 아들이 하나 태어났는데, 그 아들에게는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32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나이가 많을 때까지 잘 살다가, 죽어서 아비에셀 사람의 땅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무덤에 묻혔다.

33 기드온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바알들을 음란하게 섬기고,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았다.

34 이스라엘 자손은 주위의 모든 적으로부터 자기들을 건져 내신 주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

35 또 여룹바알이라고도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게 선을 베풀었지만, 아무도 그 가족에게 은혜를 갚지 않았다.

 

 

참된 성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성공을 위해 달려가지만, 원하는 것을 쉽게 이루지 못합니다. 성공보다는 오히려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종종 학생들에게 왜 공부하느냐고 물으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잘 먹고 잘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성공은 이기적인 성공, 즉 출세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목적도 없이 무기력하게 사는 것보다는 이거라도 있는 게 낫긴 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이기적인 욕망을 성취하는 것을 성공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창세기 39장 2절에 따르면 요셉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하게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성공은 단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잘못된 성공주의는 기독교의 본질을 잃게 합니다.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더라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다면 축복된 삶입니다.

 

신앙의 기준으로 볼 때, 진정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기드온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성공했을지 몰라도, 신앙의 기준으로 보면 결국 실패한 인생입니다. 처음에는 성공한 듯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 믿음으로 승리했지, 이후로는 사사로운 자신의 감정에 따른 보복과 이기적인 욕망에 따른 살육이었습니다. 기드온은 단 한번 크게 승리했으나, 이후로는 영적으로 볼 때 계속해서 실패한 것입니다. 초장 끗발이 개 끗발이란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도 초년에 성공했지만, 인생의 끝맺음을 잘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신앙의 여정은 사실 더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했지만, 마지막에는 다 자기 욕심으로 하나님과 자기 얼굴에 똥칠하는 게 허다합니다.

 

여룹바알 전쟁이 개인의 원한을 갚는 전쟁으로 변하다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이 주신 힘을 본격적으로 자신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여룹바알 전쟁, 즉 바알과 맞서 싸우는 전쟁을 개인의 원한을 갚는 전쟁으로 바꾸어버립니다. 18절과 19절 말씀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는 세바와 살문나에게 물었다.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더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들은 당신처럼 하나 하나가 왕자와 같았습니다." 기드온이 말하였다. "그들은 나의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들이다.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너희가 그들을 살려 주기만 하였더라도 내가 너희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기드온이 전쟁으로 지친 300명의 용사를 끝까지 데리고 미디안의 본거지까지 처들어가 보복한 까닭은 바로 세바와 살문나에 의해서 자기의 형제들이 다볼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이유은 알 수 없으나, 지난 7년간 미디안에 의해 압제 당할 때, 기드온의 형제 중 몇몇이 미디안의 손에 죽임을 당한 듯 합니다. 기드온은 마음 속 깊이 묻어둔 원한을 갚고자 한 것입니다. 기드온은 너희들이 내 형제를 죽였기에, 나도 너를 죽인다며,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세상의 방식으로 보복을 감행한 것입니다. 사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는 영적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전쟁이지, 잠시 이스라엘을 정신차리기 위해서 사용한 회초리인 미디안을 보복하는 전쟁은 아닌 것입니다. 기드온은 그것도 사적인 동기로 이들을 몰살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 힘만 믿고 나아가서 잔혹한 피를 본 것입니다.

 

기드온을 변질시킨 헛된 자존심

기드온은 자신의 장남 예델에게 미디안의 왕의 목을 치라고 명령합니다. 바로 전쟁에서 용사가 취할 가장 큰 영광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예델은 어려서 겁이나 죽이지 못합니다. 사실 이것이 원래 기드온의 모습입니다. 장남 예델은 기드온의 거울과도 같습니다. 비겁하고 두려움이 많았던 기드온이 옛날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치 자신이 이전부터 용맹스러웠던 장수인 듯 착각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용기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인데, 기드온이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속일 수 없습니다. 이 모습을 본 세바와 살문나는 조롱을 합니다. 왜 아들을 시키냐, 너도 용기가 없으니 직접 하지 못하고 아들을 시킨다고 조롱을 합니다. 이에 모멸감을 느낀 기드온은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서 자기 손으로 죽여 버립니다. 이것을 보면 기드온의 본성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자존심이 센 사람입니다. 자신을 무시하면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남들의 멸시와 무시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는 것이지요. 미디안의 대군을 격파한 엄청난 공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존감이 낮은 것입니다. 자존심과 낮은 자존감 때문에, 같은 동포인 숙곳과 브누엘 사람을 잔혹하게 죽인 것입니다.

 

꾀가 많고 처세에 능한 기드온

이후 기드온이 돌아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이 될 것을 제안받았습니다.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의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기세가 너무 강했기에, 진심으로 다스려달라고 한 게 아니라 두려워서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드온은 꾀가 많고 처세에 빠른 사람입니다. 자신이 왕이 될 경우 반발하는 세력이 많을 것을 알고서 거절합니다. 따라서 신앙적인 판단에서 했다기 보다는 정치적인 고려에서 나온 것입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전쟁이 결국 자신이 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그 공적에 걸맞은 권력과 지위를 갖고 싶었습니다. 자기가 한 일에 인정받고 걸맞은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했습니다. 기드온은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자신이 속한 므낫세 지파의 기반으로는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릴 정치력과 군사력이 취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도 약한 가문입니다. 왕이 되겠다고 하면 다른 지파들의 반대로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드온은 왕이 될 수 없지만, 왕처럼 살아가기로 선택하고 꾀를 냅니다. 왕이 되는 대신, 백성들에게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탈취한 금 귀걸이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시 유목민들은 금귀걸이를 매매의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미디안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금귀걸이를 수탈했는데, 기드온은 기드온은 총 1700세겔, 약 19kg의 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왕들이 입던 자색 의복도 받아서 입고 다녔습니다. 겉으로는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왕처럼 누릴 것 다 누린 것입니다.

 

금 에봇을 만들어 오브라에 세워 두다

기드온은 백성들에게서 얻은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드릴 때나 하나님의 뜻을 여쭙기 위해 입는 의복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대제사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에봇을 제작하거나 입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전쟁의 승리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 덕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미디안 군대와 맞설 군사를 모을 때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였는데, 이는 마치 옷 입히듯이 임한 것입니다. 기드온은 이처럼 하나님의 영이 자신에게 옷 입혔듯이, 여전히 자신에게 영적인 권세가 있음을 보이기 위해,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했습니다.

 

기드온은 이 금으로 만든 에봇을 성막과 법궤가 있던 실로에 두지 않고 자신의 거주지인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이는 종교적 권력까지 오브라로 가져와 이스라엘의 모든 힘을 가지려는 의도였습니다. 군사력과 종교적 권력을 모두 가지면 형식적으로는 왕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처럼 이스라엘을 군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의 의도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 에봇을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왕처럼 행동합니다.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다는 것은 우상으로 섬겼다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신상에 에봇을 입혀 놓고 사람들이 복을 빌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진짜 동기가 세상에서 강해져 복을 받기 위함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드온도 역시 자신의 영적인 능력을 상기시키며 지위와 권력, 부를 계속 누리려 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바알 제단과 아세라 신상을 세워 마을 사람들이 섬기게 한 것과도 같습니다. 이는 종교를 이용한 장사이자 종교 지도자 행세를 한 것입니다. 피는 못 속인다고, 아들이 아버지의 악한 행동을 그대로 따라한 것입니다.

 

신앙의 도구화와 권력화

이는 신앙의 도구화와 권력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운운하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은 시체가 가득한 회칠한 무덤과 같습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대신해 사람이나 보이는 것을 우상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 건물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짓거나, 목사를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성도들뿐만 아니라 교회 리더인 목사와 장로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얻으려고 하면 교회가 망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서 구원을 찾도록 만들면 이는 스스로 에봇을 만들어 입는 행위와 같습니다. 이는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을 실족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소자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자신의 신앙에서는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신앙은 매일 새롭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단한 체험도 그날로 끝나고 다음날에는 새로운 영적인 양식이 필요합니다. 이를 먹지 않으면 악에게 지고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기드온의 악함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습니다. 그는 세겜에 첩을 두었고, 첩이 낳은 아들의 이름은 아비멜렉으로, 내 아버지는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기드온이 사실상 이스라엘의 왕처럼 행동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결국 왕처럼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다가 긴 명수를 다 채우고 대대로 내려오는 묘실에 묻혔습니다.

 

기드온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하나님 보시기에 전보다 더 악하게 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알브릿이라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었는데, 이는 언약의 바알이라는 뜻으로, 언약의 신앙인 야훼 신앙과 기복 신앙인 바알 신앙이 섞인 이단적인 종교였습니다. 사실 기드온이 만든 금에봇도 아세라 신앙과 야훼 신앙이 혼합된 신흥 우상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단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의 문화와 교리를 이용해서 교묘하게 짬뽕처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게 만듭니다. 어쩌면 이단들이 활기를 치는 것은 결국 앞선 신앙인들이 자기 욕심으로 복음을 왜곡하여 잘못된 신앙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후대에 악한 이들이 이용해서 이단화시켜 사람들을 미혹하여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마지막 35절에서 기드온이 이스라엘에게 선을 베풀었지만 아무도 그의 가족에게 은혜를 갚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이는 기드온이 백성들을 올바르게 이끌지 못한 지도자였기 때문일 수 있지만,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않는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배은망덕하게 행하는 것,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배은망덕이 악한 결정적 이유는 남을 위한 노력과 희생을 결과적으로 의미 없는 시간낭비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하나님의 선하심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것이야 말로 인간의 가장 큰 악행 중 하나일 것입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신비한 여러 이적들과 기적에 가까운 승리만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을 더 많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순수한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 뜻을 위해 나아갈 때, 하늘의 해처럼 떠 오른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수했던 믿음이 얼마 되지 않아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사용될 때,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게 변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기드온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소명을 다하여 부르실 때까지 실족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끝까지 붙들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참된 인생의 성공을 맛보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