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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사사기 7장 15절-25절 일어나라 미디안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

by 알렉스강 2024. 6. 13.

사사기 7장 15절-25절 새번역

 

15 기드온은 그 꿈 이야기와 해몽하는 말을 듣고, 주님께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진으로 돌아와서 "일어나라! 주님께서 미디안의 진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다!" 하고 외쳤다.

16 그는 삼백 명을 세 부대로 나누고, 각 사람에게 나팔과 빈 항아리를 손에 들려 주었다. 빈 항아리 속에는 횃불을 감추었다.

17 그리고 이렇게 지시하였다. "너희는 나를 보고 있다가, 내가 하는 대로 하여라. 내가 적진의 끝으로 가서 하는 대로 따라 하여라.

18 나와 우리 부대가 함께 나팔을 불면, 너희도 적진의 사방에서 나팔을 불면서 '주님 만세! 기드온 만세!' 하고 외쳐라."

19 기드온과 그가 거느리는 군사 백 명이 적진의 끝에 다다른 것은, 미디안 군대의 보초가 교대를 막 끝낸 한밤중이었다. 그들은 나팔을 불며 손에 든 항아리를 깨뜨렸다.

20 세 부대가 모두 나팔을 불며 단지를 깨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나팔을 들고 불면서 "주님의 칼이다!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외쳤다.

21 그리고 그들이 저마다 제자리에 서서 적진을 포위하니, 적군은 모두 아우성치며 달아났다.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주님께서 모든 적들이 저희들끼리 칼로 치게 하셨다. 적군은 도망하여, 스레라의 벳싯다와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선까지 후퇴하였다.

23 납달리 지파와 아셀 지파와 온 므낫세 지파에서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디안 군대를 추격하였다.

24 기드온은 에브라임 산간지방 전역에 전령들을 보내어서 말하였다. "너희는 내려와서 미디안을 쳐라. 그들을 앞질러서, 벳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기까지의 나루들을 점령하여라." 그러자 에브라임 사람이 모두 모여서 벳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기까지의 나루들을 점령하였다.

25 그들이 미디안의 두 우두머리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계속 미디안을 추격하였다. 그들이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동쪽 지역에 있는 기드온에게 가져 왔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드온, 니콜라 푸생, 캔버스에 유화 1626 바티칸 미술관

 

일어나라 미디안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

기드온은 적군 병사의 입을 통해 이스라엘의 승리를 확신을 하게 됩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두려움까지도 하나님이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이 멈추지 않으며, 하늘을 찌를 듯한 용기가 솟구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를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처음 만나 성령을 경험하고 내 삶에서 살아계심을 느꼈을 때,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제가 아는 분은 너무 기뻐서 교회에서 집까지 한 20km를 뛰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확신을 얻은 기드온은 신속히 진영으로 돌아와 병사들을 독려했습니다. 지체할 것 없이 즉각 순종하여 그날 밤 작전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겨진 300명의 군사들에게 외칩니다. 15절입니다. “기드온은 그 꿈 이야기와 해몽하는 말을 듣고, 주님께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진으로 돌아와서 일어나라! 주님께서 미디안의 진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 하고 외쳤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믿음을 가지니, 기드온은 드디어 병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승리를 선포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원래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처음 부르실 때 주신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사사기 6장 14절입니다.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이 말씀을 기드온이 믿음으로 받을 때까지 시간과 과정이 참 많이 걸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열심이 기드온을 설득하고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성취되기 위해서 아무리 오랫동안 시간이 걸리고 수없이 반복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에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는 데까지가 어려운 것입니다.

 

항아리, 횃불, 나팔

용기 백배한 기드온은 그렇다고 무턱대고 쳐들어가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 적을 교란시키기 위한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잠든 밤 큰 소리를 울려 적들이 큰 군대가 쳐들어온 것으로 착각하게 했습니다. 부대를 셋으로 나누어 각기 항아리 안에 횃불을 감추어 들고 적진으로 접근하게 했습니다. 자정 무렵 보초가 교대하는 시간을 틈타 기드온과 그의 군대는 일제히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불며 소리를 지르면서 적진으로 달려갔습니다.

 

칼과 창을 든 게 아닙니다. 대신 항아리와 횃불, 나팔을 든 것입니다. 항아리는 바로 연약한 기드온과 우리 자신을 뜻합니다. 질그릇과 같은 항아리를 깨자 그 안에 있던 하나님의 능력인 횃불이 타올라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항아리가 깨어지기까지, 믿음이 온전히 세워지기까지 하나님은 기드온을 빚어나가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되자, 300명이 13만 명을 이기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먼저 나팔을 불고서 항아리를 부순 뒤 그 안에 들어 있던 횃불을 높이 쳐들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과 함께 “주님의 칼이다! 기드온의 칼이다!”하고 외쳤습니다. 갑작스럽게 터저나온 함성과 항아리가 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미디안 병사들은 또다시 횃불과 나팔 소리에 놀랐습니다. 적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대규모로 쳐들어온 줄 착각하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300명의 병사들이 세 방향에서 이 일을 행했기에 적군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졌습니다. 결국 어두운 밤, 정신없이 도망치던 적군은 같은 편끼리, 그리고 연합한 동맹끼리 서로 싸우며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실제로 이 전투는 기드온이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끝났습니다. 그는 300명의 군사들과 함께 나팔을 불고 횃불을 들고 크게 외쳤을 뿐입니다. 사실 13만 명이나 되는 큰 부대의 진영에서 백 명씩 세 부대로 나누어 외친다고 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었겠습니까? 삼백명의 인원으로는 진영 전체를 둘러싸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보리떡과 같은 부대를 사용하셨습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전쟁을 지휘한 것은 기드온이었지만, 실상은 여호와께서 친히 지휘관이 되시고, 전투에 나선 용사가 되어 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을 하시면 우리도 백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준비하셨지만, 그렇다고 기드온이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도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덤벼드는 것은 만용입니다. 또한 믿음을 빙자하여 자신이 해야 할 부분을 미루는 자세는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기드온의 군대가 한밤중 짧은 시간에 수백 개의 빈 항아리를 준비한 것, 병사들의 손에 칼과 창 대신 빈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을 들게 한 것은 기드온이 이 작전을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작전 수행을 설렁설렁하지 않았습니다. 300명의 용사들 역시 적진을 향해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어가,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쏟아 나팔을 불고 소리를 질렀을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9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작용하는 그분의 활력을 따라 수고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내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다면, 나도 이 역사를 따라 수고하고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면, 그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려야 합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강력으로 끝까지 수고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로마의 감옥에서 목이 잘리는 날까지 수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자에게는 그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대신 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힘으로 하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힘과 지혜로 감당하게 하십니다. 기드온의 경우처럼, 행할 믿음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셨기에, 나도 모든 것을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실 것만 기대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설마 하나님이 하시겠어라며, 반신반의하기 때문에, 나 역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백을 하시면, 우리도 백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의 행동입니다.

 

끝까지 남아 괴롭히는 누룩인 나의 의로움

하지만 여기에 또 다른 신앙의 역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모든 것을 다 하셨더라도, 나도 온 힘을 다해 행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 나 자신을 앞세우게 됩니다. 작은 누룩이 스며듭니다. 바로 기드온이 실수한 부분이 있습니다. 18절에서 부하들에게 함께 외치자고 전해준 구호입니다. “주님 만세! 기드온 만세!” 하나님만 내세운 것이 아니라 기드온 자신도 내세운 것입니다. 아마도 기드온이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내세우고 싶은 욕망이 스며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호에다 하나님의 이름만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도 덧붙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당연히 하나님의 사람들은 충성을 다해 온 힘을 쏟아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순간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칭찬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결국 내 의가 불쑥 올라옵니다.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순수하지만, 나중에 변질됩니다. 정치인들도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 자신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처음에 돈을 벌 때도 나만 위해서 벌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돈이 들어오면, 더 벌고 싶고, 결국 그것을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다가 돈에 망합니다. 하나님의 일이라 하면서도, 어디까지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끝까지 깨어있지 않으면 분별하지 못하고 그릇 행하여 넘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기드온의 작은 실수이지만, 이후의 기드온의 모습을 보여주는 불길한 전조와 같습니다. 이후의 사건을 보면,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사사가 되어 많은 부와 권력을 누리게 되자 급속도로 타락합니다. 특히 기드온에게 큰 축복의 상징이었던 많은 자식이 결국 재앙이 되어서, 아버지의 권력을 노리던 서자인 아비멜렉에 의해 한날한시에 모두 죽임을 당합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하는 저주받은 패턴처럼, 또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떠나게 하여 징벌을 받게 하는 가라지 씨앗과도 같아 보입니다. 기드온이 이 부분까지 완벽하게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행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이지요. 

 

선을 행할 때 연합하라

기드온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미디안을 끝까지 추격했습니다. 23절과 24절 말씀입니다. “납달리 지파와 아셀 지파와 온 므낫세 지파에서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디안 군대를 추격하였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산간지방 전역에 전령들을 보내어서 말하였다. 너희는 내려와서 미디안을 쳐라. 그들을 앞질러서, 벳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기까지의 나루들을 점령하여라. 그러자 에브라임 사람이 모두 모여서 벳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기까지의 나루들을 점령하였다.”

 

기드온은 300명 외에도 앞서 남겨둔 군사 만 명까지 동원하여 미디안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사자를 보내어 미디안을 추격하여 섬멸하라고 독려했습니다. 형제 지파인 에브라임 지파에게는 전령을 보내어서 미디안의 주력 부대를 섬멸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미디안 부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요단강 나루터를 먼저 점령하게 하여 적군을 몰살시킵니다. 그중 미디안의 두 방백인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죽이는 큰 전공을 세웁니다.

 

처음에 미디안 연합군을 기습공격으로 칠 때엔 정예의 300명이 필요했지만, 도망치는 미디안 연합군의 잔당들을 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들이 함께 연합하였습니다. 때로는 소수의 무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모두가 함께 연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미디안 연합군과 싸우면서 때로는 300명만으로, 때로는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가 함께 연합하여 전쟁을 수행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포도주 틀에서 시작된 역사가 포도주 틀에서 끝나다

미디안이 악을 행할 때, 악한 자를 연합했다면, 이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는 선을 행하고자 연합한 것입니다. 바로 이 선두에 기드온이 앞장서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리더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기드온을 높이 세우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 미디안의 두 지휘관 오렙과 스엡이 죽은 장소를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적장이 죽은 장소를 기록한 경우는 성경에서 드문 일입니다. 왜냐하면 기드온의 이야기가 바로 이 두 장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타작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부른 곳도 포도주 틀이었습니다. 또한, 기드온이 제물을 바친 곳은 바위였습니다.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포도주 틀과 바위는 이제 승리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곳에서 그 역사가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감동적인 승리입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미디안의 두 지휘관인 오렙과 스엡을 포도주 틀에서 죽인 것은 기드온에게 주는 숨겨진 메시지가 있습니다. 바로 얼마 되지 않던 지난날 소심하고 유약했던 자신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다가 자칫 미디안 사람에게 발각되어 죽임 당할 인생이었을 기드온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로 높이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기드온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임을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겸손히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정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끝까지 충성되게 살아라는 하나님의 권면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권면을 기드온이 따라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기드온은 이후로 명성을 얻어 세상의 부와 권력은 맛보았을지 몰라도, 이후의 삶은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오브라에서 자신이 쌓은 제단인 여호와 샬롬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드온의 승리만 보지 말고, 기드온에게 들어간 작은 누룩이 끼치는 치명적인 악의 영향을 반면교사로 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