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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사사기 8장 1절-17절 하나님의 전쟁이 사적인 보복과 살육으로 변질되다

by 알렉스강 2024. 6. 14.

사사기 8장 1절-17절 새번역

 

1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장군께서는 미디안과 싸우러 나가실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그들이 기드온에게 거세게 항의하니,

2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번에 내가 한 일이 당신들이 한 일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에브라임이 떨어진 포도를 주운 것이 아비에셀이 추수한 것 전부보다 낫지 않습니까?

3 하나님이 미디안의 우두머리 오렙과 스엡을 당신들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당신들이 한 일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기드온이 이 말을 하니, 그들의 노여움이 풀렸다.

4 기드온이 그가 거느리는 군사 삼백 명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 지친 몸이지만 계속 적들을 추격하였다.

5 기드온은 숙곳에 이르렀을 때에 그 곳 사람들에게 사정하였다. "나를 따르는 군인들이 지쳤으니, 그들에게 빵 덩어리를 좀 주십시오. 나는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6 이 말을 들은 숙곳의 지도자들은 "우리를 보고 당신의 군대에게 빵을 주라니, 세바와 살문나가 당신의 손아귀에 들기라도 하였다는 말이오?" 하고 비아냥거렸다.

7 그러자 기드온이 대답하였다. "좋소! 주님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신 뒤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당신들의 살을 찌르고야 말겠소."

8 거기에서 기드온이 브누엘로 올라가, 그 곳 사람들에게도 같은 사정을 해보았지만,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았다.

9 그래서 그는 브누엘 사람들에게도 "내가 안전하게 성한 몸으로 돌아오는 날, 이 망대를 헐어 버리고 말겠소" 하고 말하였다.

10 그 때에 세바와 살문나는 겨우 만 오천 명의 군대를 데리고, 갈골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사막 부족의 군대 가운데서 살아 남은 자들인데, 이미 칼 쓰는 군인 십이만 명이 전사하였다.

11 기드온은, 장막에 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동쪽으로 노바와 욕브하까지 올라가서, 방심하고 있던 적군을 기습하였다.

12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가 또 도망치니, 기드온이 그들을 추격하여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온 군대를 전멸시켰다.

13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길에서 전쟁을 마치고 오다가,

14 숙곳 사람 젊은이 한 명을 포로로 잡아서 캐물으니, 그 젊은이가 일흔일곱 명이나 되는 숙곳의 지도자들과 장로들의 명단을 적어 주었다.

15 기드온은 숙곳에 이르러 그 곳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여기 세바와 살문나가 있다. 너희는 나에게 '우리를 보고 당신의 지친 군대에게 빵을 주라니, 세바와 살문나가 당신의 손아귀에 들기라도 하였다는 말이오?' 하면서 나를 조롱하였다."

16 기드온은 그 성읍의 장로들을 체포한 다음에, 들가시와 찔레를 가져다가, 숙곳 사람들을 응징하였다.

17 그리고 그는 브누엘의 망대도 헐고, 그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

 

숙곳 사람들에게 식량을 요청하는 기드온, 제임스 티소, 1896-1902, 유대인 박물관

 

자기 중심적인 인간의 악함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을 준비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 상당수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드온의 요청을 거절하거나 두려워서 숨어 있었습니다. 먹고살기에 괜찮은 지파들의 경우 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며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남쪽의 유력한 유다 지파나 북쪽을 권장하던 에브라임 지파는 기드온이 일으킨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들과 함께 승리를 거두자, 숨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도나도 나서서 기드온에게 왜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냐고 불평했습니다. 특히 에브라임 지파가 가장 큰 불만을 표했습니다. 그들은 미디안과의 전투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고작 패잔병들을 처리하는데나 자신들을 불렀다고 기드온을 비난했습니다.

 

기드온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상황이었습니다. 거대한 적과 싸우자고 할 때는 다들 숨어 있더니, 승리를 거두고 나니 왜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냐고 불평하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 욱하는 성격이었다면, 가만히 안 있었을 것입니다. 이후에 나온 사사 입다의 경우 성격이 워낙 거칠어서, 이와 비슷한 경우로 인해 참지 않고 싸웁니다. 기드온이 참지 않고 에브라임과 맞섰다면, 아마도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내전으로 치달았을지 모릅니다.

 

기드온의 처세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와 싸운 들 자신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장 내부적으로 분열이 되어 싸우기보다 미디안 군대를 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기드온은 지혜롭게 대답하여 이 상황을 넘어갑니다. 2절과 3절 말씀입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번에 내가 한 일이 당신들이 한 일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에브라임이 떨어진 포도를 주운 것이 아비에셀이 추수한 것 전부보다 낫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미디안의 우두머리 오렙과 스엡을 당신들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당신들이 한 일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기드온이 이 말을 하니, 그들의 노여움이 풀렸다.”

 

기드온은 자신을 낮추며 에브라임이 얻은 전과를 치켜세웠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이지요. 에브라임 형님들 생각해 보세요. 이번에 내가 한 일이 형님들이 한 일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에브라임의 떨어진 포도를 줍는 것이 므낫세 장남인 아비에셀이 추수한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미디안의 우두머리 오렙과 스엡을 당신들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이 최고의 전공을 세운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험악해질 상황에 기드온이 기가 막힌 말을 한 것입니다. 잠언 15장 1절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드온의 지혜로운 겸손한 말 한마디가 모두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기드온이 겸손해서 에브라임에게 조아린 것은 아닙니다. 기드온은 매우 꾀가 많은 사람이었기에, 당장 에브라임과 싸웠을 때,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이미 큰 전쟁으로 지친 300명으로 어떻게 이스라엘의 가장 큰 지파를 상대하겠습니까? 그리고 미디안의 패잔병을 쫓아가 쳐서 전리품을 취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강한 상대인 에브라임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린 것입니다. 기드온은 처세에 능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에게 보인 기드온의 겸손이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은 바로 이어지는 사건을 통해서 금방 드러납니다. 바로 요단강 동쪽 편에 있던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과의 있었던 비극적인 일입니다.

 

기드온과 미디안 중 어디에 줄을 대야 하는가?

기드온은 계속해서 300명의 용사들과 함께 적군을 추격했습니다. 전날 밤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불었고, 밤새도록 쉬지 못하고 전쟁을 이어가며 굶주리고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민족의 원수인 미디안 군대를 남김없이 쓰러뜨리겠다는 마음으로 추격했습니다. 기드온이 300명과 함께 도망가는 적을 추격하던 중 숙곳이라는 곳에 이릅니다. 그의 사람들이 배고파 지쳐있었기 때문에 기드온은 숙곳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숙곳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우리를 보고 당신의 군대에게 빵을 주라니, 세바와 살문나가 당신의 손아귀에 들기라도 하였다는 말이오 하고 비아냥거렸다.” 

 

숙곳의 지도자들이 비아냥거렸다고 하지만, 사실 이들은 미디안의 보복이 두려워 기드온을 도울 수 없다는 뜻을 전한 것입니다. 물론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지만, 미디안의 왕들이 아직 살아 있기에, 기드온을 도와줬다가는 이후에 미디안의 보복을 받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숙곳은 요단강 동편 갓 지파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요단강 동편의 세 지파 중에서도 가장 약한 지파입니다. 요단강 동편은 땅은 풍요로웠지만, 국경 인접 지역이라 늘 외적의 침입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니 물론 동포를 돕는 것이 옳은 것이긴 하나 이들이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이해가 됩니다. 기드온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중립적인 선택을 했다곤 하나 자신을 반대한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했습니다.

 

감정적이고 사적인 지도자였던 기드온

만약 기드온이 관대한 지도자였다면, 이들의 반응을 십분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공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매우 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이 말을 듣자 격노하면서 강경하고 잔인하게 반응합니다. 7절입니다. “그러자 기드온이 대답하였다. "좋소! 주님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나의 손에 넘겨주신 뒤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당신들의 살을 찌르고야 말겠소." 기드온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숙곳에서 가까운 브누엘로 가서 같은 요청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반응 역시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더 강하게 격노합니다. 9절입니다. “그래서 그는 브누엘 사람들에게도 내가 안전하게 성한 몸으로 돌아오는 날, 이 망대를 헐어 버리고 말겠소 하고 말하였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같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물론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기드온을 도왔어야 했지만, 이들의 거절에 대한 기드온의 반응은 너무도 냉혹합니다. 기드온이 에브라임에게 했던 것처럼 겸손하게 설득했다면 상황이 달라질지 모를 일입니다. 나를 도왔다는 것을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야밤에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에게 숙곳과 브누엘은 에브라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세력입니다. 기드온이 상대할 수 있는 약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무시해? 그래 내 힘을 한번 보여주마!"라는 태도로 대응했습니다. 기드온은 자존심 강한 자기 과시형이었습니다.

 

기드온은 보복을 다짐하고 어떻게든 미디안의 패잔병을 쫓아갑니다. 이미 이들은 살육에 눈먼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급습하여 적군 만 이천 명을 섬멸하고 끝내 미디안의 왕 세바와 살문나를 붙잡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자신을 무시했던 숙곳과 브누엘로 향합니다. 기드온은 자신의 힘을 그곳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과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가던 길에 한 소년을 붙잡아서 일흔일곱 명의 숙곳 지도자와 장로 명단을 추립니다. 오늘 날로 말하자면,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입니다. 세상 어딜 가도 이렇게 블랙리스트가 있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드러내 놓고 할지, 드러내지 않고 할지만 차이가 있을 뿐 결국 힘의 논리에 따라 한쪽은 밀려나 제거되는 것입니다. 

 

권력은 인간을 즉시 타락하게 한다

육이오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북한이 순식간에 남한 대부분을 차지할 때, 당시 공직에 있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지지 서명하거나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수복이 되자 우익 세력이 그 사람들을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잔혹하게 집단 살해 했습니다. 이것은 좌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같은 경우에는 수복되었다가 또다시 넘어가게 되었을 때, 좌익 인사들이 가만 두지 않고 재보복을 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편 가르기를 해서 서로 쉽게 죽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렇다면 지도자는 이런 것을 먼저 헤아려서 편 가르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서로 이해하고 용납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오히려 더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 오늘날 현실정치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권력은 인간이 힘이 생기는 즉시 타락하게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상 권력으로는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를 숙곳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자신의 힘을 한껏 과시한 후, 블랙리스트에 있던 장로와 지도자들을 몰살시킵니다. 자신이 말한 대로 그대로 지킵니다. 인간은 이처럼 악한 약속은 이렇게도 철저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브누엘로 올라가서 망대를 헐어버리고 사람들을 다 죽여버립니다. 결국 거룩한 성전은 사사로운 자존심과 욕망으로 추악해진 살육이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로 부름 받았으나, 결국에는 동족을 죽이는 사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할 자로 부름 받았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공적인 전쟁이 사적인 전쟁으로 변하다

하나님을 위한 공적인 전쟁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사적인 전쟁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시작했다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끝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쉽게 주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이 좋다고 해서 마지막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미디안을 칠 때, 하나님 만세!, 기드온 만세! 라며, 하나님의 이름 옆에다 자신의 이름을 살며시 붙일 때, 이미 기드온의 타락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큰 승리를 거두면 거둘수록 기드온의 교만은 끝없이 올라만 간 것입니다. 결국 내가 한 일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힘을 드러내기 바쁜 것입니다.

 

이후로 기드온이 하나님과 대화하거나 임무를 받거나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는 이야기는 일절 없습니다. 이제 기드온은 본인이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렇게 힘들게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승리를 얻자마자 믿음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자신의 의로움만 남은 것입니다. 한 발짝만 내딛으면 죽을 수 있는 절벽에 서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만, 바로 그 상황을 벗어나자마자 하나님은 오간데 없는 것이지요. 이것은 기드온 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모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자 슬픈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부르시는 끝날까지 실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