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9장 46절-57절 새번역
46 세겜 망대에 있던 성읍 지도자들이 모두 이 소식을 듣고, 엘브릿 신전에 있는 지하 동굴로 피하였다.
47 아비멜렉은, 세겜 망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지하 동굴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48 아비멜렉은 군대를 모두 이끌고 살몬 산으로 올라갔다. 아비멜렉은 손에 도끼를 들고서, 나뭇가지들을 찍어 어깨에 메고, 그와 함께 있는 백성에게 지시하였다. "내가 하는 것을 보았으니, 너희도 빨리 그대로 하여라."
49 그래서 저마다 나뭇가지들을 찍어가지고 아비멜렉을 따라가서, 지하 동굴 앞에 나무를 쌓아 놓고, 그 지하 동굴에 있는 사람들 쪽으로 불을 질렀다. 이렇게 해서 세겜 망대에 있던 성읍 사람들도 모두 죽었는데, 죽은 남녀가 천 명쯤 되었다.
50 그 뒤에 아비멜렉은 데베스로 갔다. 그는 데베스에 진을 치고, 그 곳을 점령하였다.
51 그러나 그 성읍 안에는 견고한 망대가 하나 있어서, 남녀 할 것 없이 온 성읍 사람들이 그 곳으로 도망하여, 성문을 걸어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갔다.
52 아비멜렉은 그 망대에 이르러 공격에 나섰고, 망대 문에 바짝 다가가서 불을 지르려고 하였다.
53 그러나 그 때에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에 내리던져, 그의 두개골을 부숴 버렸다.
54 아비멜렉은 자기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젊은 병사를 급히 불러, 그에게 지시하였다. "네 칼을 뽑아 나를 죽여라! 사람들이 나를 두고, 여인이 그를 죽였다는 말을 할까 두렵다." 그 젊은 병사가 아비멜렉을 찌르니, 그가 죽었다.
55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저마다 자기가 사는 곳으로 떠나갔다.
56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자기 형제 일흔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저지른 죄의 값을 이렇게 갚으셨고,
57 또 세겜 사람들의 죄악도 그들에게 모두 갚으셨다.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이렇게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소명을 따르지 않으면 죄에 열중한다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힘을 쏟습니다. 더 나아가 악한 일에 열심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어리석은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꼭 해야 하는 일, 즉 소명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소명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풍습을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고,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에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사람은 소명에 따라 살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에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악한 데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사사기 시대의 문제였습니다. 사사기의 저주받은 패턴도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소명에 집중하지 않자 악을 행하는데 집중한 것입니다.이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고 형벌을 받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면 소명을 잊어버리고, 삶의 기준을 잃기에 아무리 열심히 성심 성의것 하더라도 실패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열심히 살면 살수록 결국에는 빗나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난 것 자체가 악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열심을 다하면 다할 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의 불같은 분노
몇주간 살펴 보았던 기드온의 서자 아비멜렉은 왕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스라엘이 받은 소명과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가나안 사람을 쳐서 쫓아내는게 사명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못할 망정, 오히려 같은 민족 동포 이스라엘 백성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대충 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열중했습니다. 반역한다는 소문을 듣고 세겜을 쳤습니다. 그럼 반역하지 못할 정도만 손 보고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고 군사를 물리면 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망대로 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쫓아가 불태워 죽였습니다. 그 일에 얼마나 열중했는지, 불을 붙일 장작을 손수 패서 마련했습니다.
결국 망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연기로 질식사하거나 불에 타 죽었습니다. 얼마나 잔혹한 일입니까? 요담이 이야기한 우화가 현실화된 것입니다. 가시나무에서 불이 나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른 것처럼, 아비멜렉은 망대에 있던 세겜 사람들을 다 태워 죽였습니다. 아비멜렉의 분노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데베스로 가서 그곳 주민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 성읍에도 망대가 있어서 사람들이 그곳으로 도망쳤습니다. 아비멜렉은 세겜의 경우처럼 불사르려 했습니다. 불 지르는 것에 재미를 붙이더니 또 불을 붙이고자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불과 같은 성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가알이 술김에 한 말이 불쏘시개처럼 불을 붙였습니다. 스불이 바람이 되어서 그 불을 키웠습니다. 가시나무 같은 아비멜렉에게 불을 옮겨 붙이자 겉잡을 수 없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분노가 터지자, 분노 조절이 안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에게는 통제되지 않는 분노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릴 적 서자로서 받았던 서러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세겜의 어린 여종의 아들이었으니, 어머니의 사랑도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서러움이 쌓여 분노가 되어 많은 이들을 학살하게 된 것입니다. 전혀 인자하거나 자비로운 성품이 없었습니다. 인간에 대해 냉혹하고, 자기 권력만을 생각하는 자로 자라란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자기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가 당했습니다. 자기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아비멜렉은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동족이고 뭐고 없었습니다. 나를 거역하는 자들은 용서치 않고 다 죽이겠다는 미친개처럼 행동했습니다.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폭주하던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손에 잡히고 만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망대에서 맷돌 윗짝을 던졌습니다. 많은 군사 중에서 하필 아비멜렉에게 떨어졌습니다. 세상은 우연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름 모를 한 여인이 던진 맷돌은 아비멜렉의 머리로 정확하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한순간에 아비멜렉의 두개골이 깨어져 버립니다. 악한 힘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도저히 물리칠 수 없을 것 같았던 아비멜렉이 그 어떤 세상의 권세 하나 휘두르지 못하는 여인의 손에 나가떨어진 것입니다.
그 순간에도 아비멜렉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자 자신의 무기를 든 자에게 자신을 찔러 죽이라고 했습니다. 아비멜렉이 가진 교만과 허영심은 죽는 순간에도 여전했습니다. 자결을 통해 끝까지 폼나게 죽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끝까지 자존심을 지킵니다. 자존심은 대부분의 경우 자기 교만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자존심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 힘과 의지로 해보겠다는 교만한 마음입니다. 교만이 멸망의 선봉이라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악의 선봉장처럼 교만하게 행하다 하늘에서 떨어진 맷돌에 한방에 나가떨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세상은 우연이라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 말합니다. 56절과 5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자기 형제 일흔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저지른 죄의 값을 이렇게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죄악도 그들에게 모두 갚으셨다.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이렇게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죄 값을 갚으신 것입니다. 바로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요담의 저주가 맷돌이 되어 그 머리에 내리쳐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입니다. 악인 3명과 무명의 선인 1명이 만든 드라마와도 같습니다. 가알, 스불, 아비멜렉, 데베스의 멧돌 던진 여인, 네 명이 주연과 조연으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악을 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은 똥과 같아서 일단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함부로 칼을 휘둘러서 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처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이 약한 자를 괴롭힐 때, 방패 역할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우리가 칼이 되어서 악한 자들을 내리쳐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자신이 그 못지않은 악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악한 자와 함께 하지 못한다
따라서 악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세상에서 악한 사람이 강해 보이기에 친하게 지내면 이익이 될 것 같지만, 이는 착각입니다. 시편 1편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반대로 5절에서는 “죄인은 의인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결이 완전히 다르기에 함께 어울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악한 자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악한 자들과의 회합을 피해야 합니다. 악한 자와의 의리, 친분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악인들과 함께 있으면 결국 악한 일을 하게 됩니다. 죄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나쁜 것을 잘 배웁니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악한 자와 어울리는 것은 결국 욕심 때문입니다. 세상은 악한 사람이 이익을 취하고 선한 자들은 손해를 본다고 합니다. 손해를 보기 싫고, 악한 자들의 도움으로 이익을 취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호기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은 호기심입니다. 이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큽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보응하신다
악인들이 이 땅에서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지만, 그들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강도짓이나 하는 좀도둑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설령 겉으로 그렇게 보여도 속은 썩어 문드러졌습니다. 행복한 삶이 아닙니다. 악을 행하면 늘 두려움이 있습니다. 악한 일을 해놓고 아비멜렉처럼 하늘에서 돌이 떨어져 죽을지 모른다는 염려와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하나님이 보응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악한 자는 결국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겜 사람들도 악한 일을 하는데 마음을 합하고, 악한 일을 멈추지 않자 결국 잔혹하게 죽임 당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던 극악 무도한 아비멜렉은 아비멜렉은 위로 떨어진 돌쩌귀에 머리가 깨어지고 자기 칼에 망해서 죽었습니다. 이게 우연처럼 찾아오는 것 같아도, 우리가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이 하시는 방식이 있습니다.
세상 권세의 허무함과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 자의 어리석음
아비멜렉의 죽음 앞에서 세상 권세의 허무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세상 헛된 영광을 꿈꾸던 야심 찬 권력자의 생명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아비멜렉의 세상 권세에 대한 헛된 욕심은 아버지인 기드온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왕이 되고 싶지만, 왕이 아니라고 말해 놓고서는 왕처럼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기드온은 그 욕심을 키워서 주변에 뿌렸습니다. 다들 기드온처럼 권력을 잡아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기드온의 아들 중 다수는 자신들도 아버지처럼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며 꿈을 끼웠을 것입니다.
그중에 아들이지만, 아들이라 인정받지 못한 아비멜렉이 있었습니다. 수완이 좋고 처세에 밝은 것을 보면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권력욕도 가장 컸던 아비멜렉은 모든 인간적이고 악한 방법을 동원하여 악랄하게 권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결국 다툼과 분열의 씨앗이 되어서 심판과 파멸로 자라게 된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멜렉이 왕이 되고자 한 것은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인생에서도 왕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이처럼 스스로 자기 인생의 왕이 되고자 할 때, 그 인생은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비멜렉의 죄악은 단순히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인 문제를 나타냅니다. 사실 아비멜렉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의 숨겨진 마음의 본심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악의 씨앗이 자라나 발한 것이 아비멜렉인 것이지요. 따라서 아비멜렉은 가라지가 맺은 첫 열매로서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줄 패역한 모습이 어떠한지를 나타내 보인 것일 뿐입니다. 아비멜렉을 통해 얻은 반면교사의 교훈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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