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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사사기 4장 1절-24절 하나님의 일은 조건부 거래가 아닙니다.

by 알렉스강 2024. 6. 4.

사사기 4장 1절-24절 새번역

1 에훗이 죽은 뒤에,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

2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솔을 다스리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내주셨다. 그의 군지휘관은 이방인의 땅 하로셋에 사는 시스라였다.

3 야빈은 철 병거 구백 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하게 억압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 울부짖었다.

4 그 때에 이스라엘의 사사는 랍비돗의 아내인 예언자 드보라였다.

5 그가 에브라임 산간지방인 라마와 베델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와 재판을 받곤 하였다.

6 하루는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납달리의 게데스에서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분명히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지파에서 만 명을 이끌고 다볼 산으로 가거라.

7 야빈의 군지휘관 시스라와 그의 철 병거와 그의 많은 군대를 기손 강 가로 끌어들여 너의 손에 넘겨 주겠다.'"

8 바락이 드보라에게 대답하였다. "그대가 나와 함께 가면 나도 가겠지만, 그대가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소."

9 그러자 드보라는 "내가 반드시 장군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시스라를 한 여자의 손에 내주실 것이니, 장군께서는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갔다.

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를 게데스로 불러모았다. 바락이 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쳐올라갔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떠났다.

11 그런데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가운데 헤벨이라고 하는 겐 사람이 동족을 떠나, 게데스 부근에 있는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장막을 치고 살았다.

12 시스라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전하여 듣고,

13 그의 전 병력 곧 구백 대의 철 병거와 그가 거느린 온 군대를 이방인의 땅 하로셋에서 기손 강 가로 불러모았다.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말하였다. "자, 가십시오. 오늘이 바로 주님께서 시스라를 장군님의 손에 넘겨 주신 날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그대 앞에 서서 싸우러 나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락은 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다볼 산에서 쳐내려갔다.

15 주님께서 시스라와 그가 거느린 모든 철 병거와 온 군대를 바락 앞에서 칼날에 패하게 하시니,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서 뛰어 도망쳤다.

16 바락은 그 병거들과 군대를 이방인의 땅 하로셋에까지 뒤쫓았다. 시스라의 온 군대는 칼날에 쓰러져,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17 그러나 시스라는 뛰어서,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으로 도망쳤다.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가문과는 서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18 야엘이 나아가 시스라를 맞으며 "들어오십시오. 높으신 어른!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시스라가 그의 장막으로 들어오자, 야엘이 그를 이불로 덮어 주었다.

19 "내가 목이 마르니, 물 좀 마시게 하여 주시오" 하고 시스라가 간절히 청하자, 야엘이 우유가 든 가죽부대를 열어 마시게 하고는 다시 그를 덮어 주었다.

20 시스라가 그에게 "장막 어귀에 서 있다가, 만약 누가 와서 여기에 낯선 사람이 있느냐고 묻거든, 없다고 대답하여 주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21 시스라는 지쳐서 깊이 잠이 들었다. 헤벨의 아내 야엘은 장막 말뚝을 가져와서, 망치를 손에 들고 가만히 그에게 다가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았다. 그 말뚝이 관자놀이를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죽었다.

22 바로 그 때에 바락이 시스라를 뒤쫓고 있었다.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으며, 그에게 말하였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장군께서 찾고 계신 사람을 내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바락이 그의 장막으로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쓰러져 있고, 그의 관자놀이에는 말뚝이 박혀 있었다.

23 이렇게 하나님이 그 날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가나안 왕 야빈을 굴복시키셨다.

24 이스라엘 자손은 점점 더 강력하게 가나안 왕 야빈을 억압하였고,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멸망시켰다.

 

야엘, 드보라, 바락. 1630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넘기다

사사 에훗이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반복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악을 행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의 역사는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부터 계속되는 이스라엘 안에 내재된 마치 유전적인 질병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여전히 또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마치 인자한 부모가 그 자녀가 자라 성숙한 인격으로 책임 있는 행동을 할 때까지, 변함없이 돌보며 기다려주십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앞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리사다임과 모압의 에글론의 압제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독자적으로 나라를 이루어서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는 충분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족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지역을 방어는 할 수는 있지만, 공세적으로 나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제할만한 힘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니, 결국 역으로 그들에게 압제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가나안 족속이라 해서 마냥 약하진 않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에게는 아주 용맹한 군대장관 시스라와 함께, 철 병거 구백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단검과 막대기가 전부입니다. 이걸 가지고 철 병거를 깨는 것은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패턴이 반복될 수록, 고통의 크기와 시간은 더해진다

앞서 메소보다미아에게 압제를 당할 때에는 8년, 다음으로 모압에게 압제를 당할 때 18년, 이번에는 20년간 가나안 왕 야빈에게 고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범죄, 형벌, 탄식, 구원이라는 사사기의 패턴이 반복될수록 이스라엘 백성이 받는 고통의 크기와 시간이 길어짐을 말해줍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3번의 패턴을 반복하자, 하나님께 돌이키는 데 무뎌지고 둔해졌음을 말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웬만한 고통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럴 수록 하나님은 더 강하게 이스라엘을 치십니다. 그렇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그제야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돌이킨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을 돌이키게 하실 때, 몇 번씩 경고를 주십니다. 처음에는 상황이 잘 풀리지 않고 주변의 사람이 떠납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게 되기도 합니다. 가까운 가족들이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안되면 그 사람의 건강을 치시기도 합니다. 마지막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 그때 깨닫고 돌아서게 됩니다. 초신자 때에는 작은 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켰는데, 오히려 믿음의 연수가 쌓일수록 거룩해지기보다 오히려 죄에 주저앉아 돌이키는 시간이 느려지고 무뎌지는 경우가 많지요.

 

여자 사사 드보라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하나님은 한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랍비돗의 아내로 남자가 아닌 여자인 드보라를 사사로 세웠습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여선지자이며,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판사로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사실 사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판결입니다. 지도력과 분별력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성이 정계에 진출하여 정치인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여성의 인권과 사회적인 위상이 낮았던 당시 시대의 드보라는 대단한 역량을 발휘한 것입니다. 그 이름의 뜻인 꿀벌처럼,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주는 탁월한 리더의 본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5절을 보시면, 가나안 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당시, 이미 드보라가 에브라임 산간지방인 라마와 베델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이스라엘 자손이 나아와 재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라마와 베델 사이는 에브라임 지파의 영역으로 이스라엘의 중심부입니다. 이곳은 드보라에 의해서 평화롭게 다스려지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가나안 왕 야빈은 하로셋 학고임을 근거지로 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이곳은 팔레스타인에서 북쪽 지역,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에 가까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은 이스라엘 전체를 억압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본거지인 이스라엘의 북쪽지역을 중심으로 주로 납달리와 스블론 지파를 억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외의 지파들은 비교적 평온했던 것이지요.

 

사람이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다쳐도 온몸이 쑤시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당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으니, 같은 민족이지만 형제가 받는 고통을 외면한 것입니다. 그것도 20년이란 시간 동안 각자가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이웃 지파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몸의 한 부분이 문제가 있다면 몸 전체가 정상적일 수 있겠습니까? 몸의 한 부분이 썩어 들어가면, 결국 생명이 위협을 받아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지 못했지만,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러자 드보라가 어미의 심정으로 나섭니다. 남자들이 나서지 않으니 여자가 나선 것입니다.

 

납달리 지파 출신 군대장관 바락

이때 하나님은 드보라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받은 드보라는 납달리 지파 게데스에 살아가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서 주님의 구원을 전해줍니다. 6절 후반부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분명히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지파에서 만 명을 이끌고 다볼 산으로 가거라.” 여기서 중요한 명령은 가라 입니다. 바락이 행할 일은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지파의 장정 만명을 데리고 다볼 산으로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군대장관으로 당시 납달리 지파의 수장이었던 바락에게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군사들을 데리고 다볼 산으로 가서 산속에 숨어 있든지, 아니면 산 위로 올라가 소리를 지르든지, 어찌 되었든지 가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이 떨어졌을 때, 바락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된 것입니다. 20년 넘게 자신의 지파를 괴롭힌 가나안 족속을 물리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두려움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습니다.

 

바락은 가나안 왕 야빈에게는 철병거 구백승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철병거 하나 깨부수는 데에도 장정 백 명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무려 구백대나 감당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소총수로 탱크 부대를 맞서는 것입니다. 바락은 두려워서 바로 즉각적으로 네라고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바락은 꾀를 냅니다. 드보라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같이 가면 갈 것인데, 같이 가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엄마 앞에서 때를 쓰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오래전 아이스크림 광고가 있었습니다. 아역 배우 출신인 이상아 씨가 육군 조교로 분장하여 나와서 훈련병들을 교육하며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건넵니다. 플라스틱 수저가 아랫부분 뚜껑에 달려 있는데, 어느 한 훈련병이 아이스크림을 받고 어떻게 먹을지 몰라하는 모습을 보며 명대사를 날립니다. “줘도 못 먹나" 바로 바락의 모습인 것이지요. 주저하는 바락을 보고 드보라가 속으로 줘도 못 먹나. 그냥 가면 승리가 너에게 그냥 주어지는데, 그걸 받아먹지 못하냐 하며 속으로 한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드보라에게 당신이 함께 가면 갈 것이라고 조건을 단 것은, 바락은 자신이 책임지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패배하게 되면, 모든 책임을 자기 혼자 진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리스크를 줄이고자 절반의 책임을 지고자 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선택은 리스크를 줄이기에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자산 투자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분산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올인원입니다. 모든 것을 걸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걸지 않는 것입니다.

 

바락의 제안에 대해서 드보라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며, 내가 같이 갈 것인데 대신 너는 영광을 얻지 못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군대장관으로 군사를 이끌어 시스라의 철병거 구백대를 물리치긴 하겠으나, 적장 시스라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겠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의 손에 넘기겠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가장 큰 무훈은 무엇보다 적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전쟁은 기세의 싸움입니다. 특히 고대 전쟁은 단 하루 전면전으로 승부가 나기에 적장을 물리치면,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져 다 흩어져 도망치게 되어 있습니다. 적장을 사로잡거나 목을 취하는 자가 바로 모든 영광을 얻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바락은 오히려 이 말에 안심을 놓으며 드보라의 지시대로 움직입니다. 사실 지휘관은 드보라이고, 바락은 바지사장처럼 대신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바락은 납달리 게데스에서 군사 일만 명을 모아 다볼 산으로 향했습니다. 시스라가 그 소식을 듣고 유인되어 철 병거 구백 대를 모아 기손 강가에 나아오게 됩니다. 기손 강가에서 전투가 시작된 것입니다. 기손 강은 팔레스타인의 건조한 지형에서 볼 수 있는 간헐하천입니다. 와디라고 하지요.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기에 길로 사용되다가, 우기에 큰 비가 내리면 홍수가 되어 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시면 하나님을 뒤따라 가면 된다

15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스라의 철병거와 군대를 패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앞장서서 바락이 가기 전에 이미 시스라와 군대를 혼란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 보면, 사사기 5장에 나오는 드보라의 노래를 통해서 구체적인 정황을 알 수 있습니다. 5장 21절 말씀입니다. “기손 강물이 그들을 휩쓸어 갔고, 옛 강 기손의 물결이 그들을 휩쓸어 갔다" 시스라는 건기라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하고 기손 강물이 흐르는 와디로 철병거를 이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폭우가 내려서 병거가 물에 잠기거나 땅이 진흙탕이 되어 꼼짝도 못 하게 된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면, 바락 스스로가 판단하여 군대에게 진격하라 명령을 내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4절을 보시면, 이런 상황에서도 바락은 가만히 있고 드보라가 명령을 내립니다. “자, 가십시오. 오늘이 바로 주님께서 시스라를 장군님의 손에 넘겨주신 날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그대 앞에 서서 싸우러 나가실 것입니다.” 드보라가 일어나서 가라라고 명령하니깐 그제야 움직인 것입니다.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상황도 분별하지 못하는 바보와 같은 어리석은 모습인 것이지요. 여전히 겁이 나서 어떻게 할지 몰라하자 드보라가 재촉해서 싸우러 나간 것입니다. 

 

바락과 달리 드보라가 전혀 겁먹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전투의 결과가 어떨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전쟁은 어찌 되었든지 반드시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시면, 하나님을 뒤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바락이 드보라의 명령대로 나가자 시스라의 철병거와 군대는 순식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시스라는 다행히 재빨리 병거에서 내려서 목숨을 건져 도망을 쳤습니다. 자신의 족속이 거하는 땅 하로셋까지 도망을 쳤습니다. 바락도 그제야 용기를 내어서 시스라를 취하고자 쫓아갔습니다. 시스라를 죽이고 영광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

그런데 시스라가 도망쳐 도착한 곳이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이었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 가문이 가깝게 지냈기에, 시스라는 야엘의 집에서 잠시 쉬면서 몸을 숨기고자 하였습니다. 전쟁통으로 만신창의가 된 시스라를 보고 야엘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이불을 덮어 주면서 안심시켰습니다. 시스라가 마실 물을 청하자, 따뜻한 우유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긴장이 풀리자 졸려서 야엘에게 망을 봐달라 청하고 깊은 잠에 빠지고 맙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계획된 것입니다. 시스라가 깊은 잠에 빠진 것을 알자, 장막을 고정시키는 말뚝을 가져다가 눈 사이 미간 관자놀이에 박아 버립니다. 시스라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맙니다. 겐 사람들은 모세 장인 이드로의 족속으로 광야에서 유숙하는데 능한 사람입니다. 여자나 남자나 할 것 없이 장막을 치고 걷고 하는 일에 익숙하였습니다. 여자라고 해서 힘을 쓰는 말뚝 박는 일에 예외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관자놀이라는 단어가 재미있습니다. 관자놀이가 영어로 하면, temple입니다. 바로 예배당이 temple이지요. 사람의 눈 사이 미간에 영혼이 깃든다 생각했는지, 그곳을 예배당과 같은 단어로 지칭한 것입니다.

 

야엘이 장막을 세우기 위해 말뚝을 박는 행위는 바로 예배와도 같습니다. 예배의 장소에 하나님의 장막을 세웠습니다. 대적의 문을 취하는 자리입니다. 이곳에다 예배를 통해 악한 원수의 대장을 물리친 것입니다. 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야엘이 원래 거하던 곳은 납달리 지파가 있던 게데스였습니다. 납달리 사람 바락이 군사를 이끌고 가나안 왕 야빈을 친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도 도울 일이 없을까 하며 자신이 살던 지역을 떠나 여자 홀로 단신의 몸으로 가나안 땅 하로셋에 장막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맹수가 은거하여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었던 것처럼, 원수 적장을 사로잡고자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자 일격필살로 한방에 보내버렸습니다.

 

원래 겐족속은 유다 지파의 도움을 받아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땅인 팔레스타인 남쪽 지역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야엘의 남편인 헤벨은 몇몇 가족과 함께 자기 족속을 떠나 북쪽 지역인 납달리 게데스에 지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면,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찾거나 하나님을 떠납니다. 남편과 그 집안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 왕 야빈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으나, 야엘은 먼 이방 땅에서 하나님을 더욱 찾았습니다. 심지어 남편과 집안사람들을 거스르는 일이었지만, 하나님 백성을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사모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그에 따른 영광이 주어진다

야엘은 이방 여인이지만, 여호와의 전쟁에서 하나님 편, 이스라엘의 편에 서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여 여호와의 구원 전쟁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이방인이기에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지혜에 따르면 중립을 지키는 게 어쩌면 가장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엘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비록 약한 여자의 몸이나 하나님의 전쟁에 작은 것 하나 보태고자 적극적으로 나선 것입니다.

 

이게 바락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군대장관으로 세워진 대장부가 이방여인 하나보다 못한 것입니다. 야엘은 더 나아가 드보라처럼 바락에게도 명령을 내립니다. 22절입니다. “바로 그때에 바락이 시스라를 뒤쫓고 있었다.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으며, 그에게 말하였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장군께서 찾고 계신 사람을 내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바락이 그의 장막으로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쓰러져 있고, 그의 관자놀이에는 말뚝이 박혀 있었다.” 얼른 와서 내가 한 일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의 시체를 치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공손하게 표현된 듯하나, 바락은 군대장관임에도 야엘에게 이리저리 명령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투에서 승리의 주역은 드보라에게 돌아갔고, 적장 시스라를 죽인 공로는 야엘에게 돌아갔습니다. 당시 시대에 여인들이 전쟁에서 무공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인이 어떻게 전투에 참여하겠습니까?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무엇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인지를 잘 알고 이를 행한 것뿐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들렸을 때, 세상적인 기준으로 재지 않았습니다. 바로 순종했습니다. 더 나아가 내게 주어진 일이 아님에도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적극적으로 감당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고 그에 따른 영광을 얻었습니다.

 

바락은 군대장관으로 자기가 할 일을 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고자 수동적으로 시키는 것만 했을 뿐입니다. 결국 바락은 하나님의 일을 조건부로 거래하면서 나눠 먹기를 했습니다. 드보라를 자신과 하나님과 사이에 끼어 넣었습니다. 드보라를 보증으로 삼은 것입니다. 사람을 보증으로 삼았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한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존재인 사람을 보증으로 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지만, 결국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믿는 어리석은 바보 짓을 바락이 한 것입니다. 바락에게 승리의 영광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의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하나님의 일을 세상의 일 하듯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게 내게 좋을까 나쁠까, 이익이 될까 손해가 될까 끊임없이 재어봅니다. 하나도 손해 안 보려고 하니깐 결국 주저하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사람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어리석게 세상의 힘과 돈을 움켜쥐고 놓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붙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드보라와 야엘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바락을 통해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바락의 비겁함과 부끄러움을 닮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세워서 자기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 그것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일이 실패하거나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의외의 사람을 준비해두십니다. 비록 여인이라도 아무리 약한 자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그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 편에 전적으로 서고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승리와 영광을 누리는 모두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