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사기

사사기 5장 1절-11절 영도자들은 앞장서서 이끌고 백성은 기꺼이 헌신하니

by 알렉스강 2024. 6. 5.

사사기 5장 1절-11절 새번역

 

1 그 날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

2 이스라엘의 영도자들은 앞장서서 이끌고, 백성은 기꺼이 헌신하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3 너희 왕들아, 들어라. 너희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여라. 나 곧 내가 주님을 노래하련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련다.

4 주님, 주님께서 세일에서 나오실 때에, 주님께서 에돔 땅에서 출동하실 때에, 땅은 흔들리고, 하늘은 물을 쏟아내고, 구름은 비를 쏟았습니다.

5 산들이 주님 앞에서 진동하였고, 저 시내 산마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습니다.

6 아낫의 아들 삼갈 때에도, 야엘 때에도, 큰길에는 발길이 끊어지고, 길손들은 뒷길로 다녔다.

7 나 드보라가 일어나기까지, 이스라엘의 어머니인 내가 일어나기까지, 이스라엘에서는 용사가 끊어졌다.

8 그들이 새 신들을 택하였을 때에, 성문에 전쟁이 들이닥쳤는데, 사만 명 이스라엘 군인 가운데 방패와 창을 가진 사람이 보였던가?

9 나의 마음이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에게 쏠렸다. 그들은 백성 가운데서 자원하여 나선 용사들이다. 너희는 주님을 찬양하여라.

10 흰 나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아, 양탄자를 깔고 사는 사람들아, 길을 걸어가는 행인들아, 사람들에게 전하여라.

11 물 긷는 이들 사이에서 들리는 소리, 활 쏘는 사람들의 요란한 저 소리, 거기서도 주님의 의로운 업적을 들어 말하여라. 이스라엘 용사들의 의로운 업적을 들어 말하여라. 그 때에 주님의 백성이 성읍으로 들어가려고 성문께로 내려갔다.

 

 

드보라의 노래

오늘 본문은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 군대를 물리쳐 승리한 기손강의 전투를 기념하여 여호와의 구원을 찬양한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날에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보라와 바락을 앞세워 적군을 무찌르고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20년 동안 가나안의 혹독한 통치 아래 비참하게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해방과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큰 승리의 날을 기념하여 드보라와 바락이 노래를 지어 부른 것입니다. 드보라와 바락이 함께 노래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드보라의 노래입니다. 노래하다는 동사가 여성 3인칭 단수형이며, 노래에서 내가, 나 등의 인칭대명사가 드보라를 가리킵니다. 선창자는 드보라이고, 바락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화답하는 형식으로 참여하였을 것입니다. 지난 시간 말씀드린 대로, 바락은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해 적장 시스라의 목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영광은 드보라와 야엘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기에, 이 노래에서도 주인공은 바락이 아니라 드보라입니다.

 

영도자들은 앞장서서 이끈다

우선 2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의 영도자들은 앞장서서 이끈다고 했습니다. 영도하다, 앞장서서 이끈 다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파라פָּרַע 는 원래 머리를 풀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머리를 풀 때에는 주로 힘을 과시할 때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성경의 인물로 삼손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삼손은 나실인입니다. 나실인은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했기에, 머리를 푼다는 것은 나실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2절의 본문 표현에서 영도자들이 앞장서서 이끈다는 뜻은, 나실인과 같은 사명을 받은 자들이 그 사명에 헌신하여 충실하게 행하였음을 말해줍니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지도자들이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자,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지도자를 따라서 헌신했다고 말합니다. 가정이나 국가, 그리고 교회가 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임을 맡은 자들이 충실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가나안 왕 야빈에게 억압될 당시에는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지도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자가 나선 겁니다. 지금도 정서적으로 여성이 리더가 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데, 당시 여자가 대중들 앞에 나선다는 것은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구실을 못하니, 결국 여자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본을 보여 그 어느 누구보다 훌륭하게 사사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세일에서 나오실 때에 에돔 땅에서 출동하실 때

드보라는 과거부터 역사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세일에서 나오실 때에, 주님께서 에돔 땅에서 출동하실 때에, 땅은 흔들리고, 하늘은 물을 쏟아내고, 구름은 비를 쏟았습니다.” 여기서 세일과 에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지나온 산지를 가리킵니다. 드보라는 과거 출애굽 여정을 회상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노래합니다. 무엇보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 관계로 이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서로 언약의 책무를 다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책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언약 관계에 충실하면 되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변함없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용맹한 사사를 세우셔서 구원하시고, 그리고 자연에 개입하셔서 원수를 물리치셨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입니다. 4절을 보시면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드보라의 경우 기손강 전투에서 비가 내려 철 병거를 무력화시킨 사건을 염두하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도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했다고 말합니다. 진동하다는 히브리어 단어 노즐루נוֹזְלוּ는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비로 인해 산의 계곡에서 흙탕물이 쏟아내려 오는 장면을 마치 산들이 진동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물은 주로 어둠이나 악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를 치실 때, 또 다른 악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악한 자들은 악한 자들끼리 서로 자중지란 하여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대한 악을 마주칠 때 이 악한 세력을 어떻게 물리칠까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선한 자들이 많지 않고, 그 힘이 미약할 때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몰아내실 때, 더 큰 악인을 불러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들을 먼저 무력하게 만든 다음,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악인들을 완전히 물리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어머니인 내가 일어나기까지

드보라는 예전에 좋았던 시간만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직접 겪었던 고난의 시간을 회상합니다. 바로 자신들이 미디안에 의해서 압제당했던 시절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바로 삼갈의 날, 야엘의 날을 기억했습니다. 가나안에게 압제당할 당시 사사들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사기 3장 31절에 잠깐 언급된 삼갈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삼갈은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인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활약은 국지적이고 제한적이었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압제에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로를 버리고 인적 드문 오솔길로 다녔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황폐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큰길로 다니면 가나안 족속에게 약탈당하거나 폭행당할 위험이 컸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로 대신 뒷골목으로 다녔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의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이 그쳤다고 합니다. 이방인의 침략과 약탈에 노출되어서 마을을 떠나 결국 산으로 숨거나 성벽이 있는 몇 안 되는 성읍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서 “나 드보라가 일어나기까지, 이스라엘의 어머니인 내가 일어나기까지, 이스라엘에서는 용사가 끊어졌다”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이끌 영적 지도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드보라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드보라 자신도 이스라엘의 어머니와 같은 보호자였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준비된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한 사람만 바로 서 있으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비록 여성이라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헌신된 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8절을 후반부를 보시면 “성문에 전쟁이 들이닥쳤는데, 사만 명 이스라엘 군인 가운데 방패와 창을 가진 사람이 보였던가?”라고 말합니다. 앞서 드보라의 명령에 따라 바락과 함께 기손강 전투에 참여한 이스라엘 군대는 일만 명입니다. 아마도 사만 명은 납달리와 스블론 지파의 동원 가능한 전체 군사의 숫자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중 사분의 일인 일만 명만을 동원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시스라의 철병거 구백승을 완전히 전멸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 군대는 무기다운 무기를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고작해야 단검과 막대기가 전부였습니다. 이런 연약한 상황에서도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임입니다. 무기도 없는 이스라엘 군대가 싸워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막을 길도 없고, 그 섭리에 따르는 삶이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은혜를 깨닫게 된 다음 마지막으로 주어진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드보라는 큰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온 이스라엘 백성을 초대합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흰 나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아, 양탄자를 깔고 사는 사람들아, 길을 걸어가는 행인들아, 사람들에게 전하여라.” 여기서 흰 나귀를 탄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지도자를 뜻합니다. 양탄자를 깔고 앉아 있는 자들은 부유한 귀족 계층을 가리킵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평범한 일반 사람들을 말합니다. 드보라는 신분과 계층을 초월해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은혜는 모든 자에게 주어집니다. 남녀노소 지위의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누구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하늘 위로 올라선 정오의 태양처럼 모든 피조물에게 공정하게 주어집니다. 그러기에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반 은총도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특별 은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이스라엘 전체는 모두 받은 은혜이지만, 구약 시대의 언약 밖에 있었던 다른 백성들은 결코 누리지 못한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택한 자들에게 허락된 은혜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주님의 의로우신 업적을 들어 말하라

11절을 보시면, 물 긷는 이들 사이에서도 주님의 의로우신 일을 칭송하는 소리가 들린다 했습니다.  예전에는 가나안 사람들의 폭행과 약탈이 두려워 여인들이 우물가에 물을 뜨러 가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후에는 마음 놓고 우물가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보라는 우물가에 나오는 일반적인 여인들조차도 느낄 수 있는 이스라엘 곳곳에 찾아온 하나님 주신 평화를 노래한 것입니다.

 

이 노랫소리는 이스라엘 곳곳으로 흘러넘쳤습니다. 이 노랫소리를 듣고 적군을 피해 고향을 떠났던 백성들이 다시 성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산으로 숨었거나 이방 땅으로 떠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온 것입니다. 이 노랫소리야 말로 복음입니다. 해방과 자유의 노래로 우리에게 여호와의 샬롬이 임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51장 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이 구원의 기쁨은 이스라엘이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이요 영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을 맛보았을 때, 하나님의 의로우신 일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혹시 우리 삶에 주어진 좋은 결과에 대해서 내가 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로움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움을 높여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11절에서도 드보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우신 업적을 들어 말하라고 거듭 반복합니다. 바로 이것이 찬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이 크고 놀랍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전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올리는 최고의 찬양인 것입니다. 바로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