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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장 1절-5절 새번역
1 주님의 천사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었고, 또 너희 조상에게 맹세한 이 땅으로 너희를 들어오게 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와 맺은 언약을 영원히 깨뜨리지 않을 것이니,
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단을 헐어야 한다' 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였느냐?
3 내가 다시 말하여 둔다.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겠다. 그들은 결국 너희를 찌르는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들은 너희에게, 우상을 숭배할 수밖에 없도록 옭아매는 올무가 될 것이다."
4 주님의 천사가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말을 하였을 때에, 백성들은 큰소리로 울었다.
5 그래서 그들이 그 장소의 이름을 보김이라 부르고, 거기에서 주님께 제사를 드렸다.
주님의 사자가 나타나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 정복을 수행했지만, 완전히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지역을 차지한 이후에는 공존 공생 관계로 지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시대와 달리 사사 시대에 들어와서는 대부분의 지파들이 가나안 족속과의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여리고성 함락과 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인한 큰 승리는커녕 작은 전투에서 조차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여호수아 시대에 비해서 힘이 약해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 강성해졌지 약해진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겉으론 말하지 않았지만, 내심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 놀랍게도 주님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영적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전할 자가 이스라엘 중에 아무도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메신저를 보내어서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열린 사사시대가 영적 암흑기임을 알려주는 전조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 길갈
주님의 사자가 나타난 장소가 길갈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길갈은 모세로부터 리더십을 승계한 여호수아가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맨 처음 발을 디딘 곳입니다. 요단강은 그리 큰 강은 아니지만, 당시 우기였기에 강의 수위가 꽤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상류에서 강둑이 터지면서 다른 한쪽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이스라엘이 건너려는 지점으로 물이 오지 않아 마른 땅이 드러나는 홍해와 같은 기적을 경험합니다. 이로 인해 여호수아는 길갈에다 강에서 가져온 열두 개의 돌로 표지석을 삼았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정복을 완성하는 끝까지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이 함께 할 것임을 고백하는 믿음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전투일 경우, 성경은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없으면 패배하고 하나님이 있으면 승리합니다. 매우 단순하지만 분명한 진리인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 바로 길갈의 열 두 개의 돌입니다.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단을 헐어야 한다
주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말은 충격적입니다. 주님의 사자는 하나님이 행하신 것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바 그대로 말을 전했을 뿐입니다. 언약 관계인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각자 그 언약에 대해서 어떻게 이행했는지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먼저 주님의 사자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앞으로도 언약을 지킬 것임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했어야 할 일들에게 대해서 묻습니다. 정복한 가나안 땅의 사람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이 섬기는 신들의 제단을 허물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묻습니다. 신명기 7장 1절부터 5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입성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과 어떤 언약도 세우지 말고 혼인관계도 맺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을 섬겨서는 안 되고 그 제단을 허물고 석상과 목상을 부수고 찍어 버려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요셉 가문에 벧엘을 정복할 때, 정보를 제공한 사람과 그 가족을 살려주기로 약속한 경우가 있습니다. 벧엘을 정복하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결국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린 행동인 것입니다.
여호수아 시절에도 불가피하게 가나안의 한 족속인 기브온 족속에게 속아서 언약을 맺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백성들이 나서서 리더들을 원망하였습니다. 신중하게 살피지 못하고 어리석게 꾐에 넘어가게 된 것을 백성들이 책망한 것입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사시대에는 달랐습니다. 백성들이 먼저 이 문제에 대해서 긴장이 없고 무시했습니다. 살만한대 굳이 가나안 족속과 갈등을 일으켜서 싸울 필요가 있겠는가 하며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리더도 없고, 백성들은 점점 영적으로 나태해지고 교만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언약을 맺은 백성의 삶은 언약의 말씀인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이 육체적이고 쾌락적인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절대적인 언약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과 언약을 맺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마치 결혼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 방식이 옳고 틀렸다는 문제가 아니라, 언약 백성은 하나님과의 약속에 신실해야 하기 때문에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게 언약 백성의 존재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너희가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
이방 종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도와주는 보조적인 수단으로써 신을 생각합니다. 이것을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 잘 살게 해 준다거나 순간적인 쾌락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신입니다. 그러나 야훼 신앙은 내가 복 받는다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약 관계가 우선합니다. 이 언약 관계에서 각자 행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하실 바가 있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이것을 소명이라고 하지요. 언약 종교인 야훼 신앙은 바로 이 소명을 수행해서 성취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너희가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사자를 통해 언약을 수행하지 않은 이스라엘에게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서 핑계를 되었을 것입니다. 철병거가 있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가나안 족속이 강했습니다. 이웃 지파들이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필요해서 농사부터 지었습니다. 핑계는 수도 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흘러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음에도, 오히려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을 치르지 않게 됩니다. 처음보다 강성해졌음에도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서로 적응하자 공존과 공생의 관계로 돌입한 것입니다. 공존 공생 말이 좋지 이스라엘은 약한 가나안 족속의 경우는 종으로 삼아서 착취했습니다. 소명보다 자기 유익을 앞세운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불순종한 것입니다. 불순종은 창세 때부터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계속 내려오는 고질적인 죄의 본성입니다. 레위기 26장 14절부터 15절에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며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불순종은 율법을 어기는 것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불순종은 내가 필요해서 약속할 때와 시간이 지난 다음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게 유리하고 편안한 대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싫어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은 결국 언약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불순종은 달리 해석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불순종의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사울에게 아말렉과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아말렉 사람 전부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육축까지 진멸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라는 명목으로 살지고 기름진 가축들을 남겨둡니다. 물론 자기와 백성들의 사욕을 채우려는 목적도 숨어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불순종을 꾸짖으면서 그 이유를 완고함 때문이라 말합니다.
완고함은 히브리어로 자돈זָדוֹן입니다. 자돈은 완고하다는 뜻 외에도 오만하다는 뜻도 있고, 추정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여기서 추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울은 아말렉 사람들이 죄가 있는 거지, 이 가축들이야 무슨 죄가 있어 라며 하나님께서도 이 정도는 눈 감아 주실 거야라고 자기 멋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추정은 완전한 순종이 아니라 선택적 순종을 위한 자기 변명입니다. 적당히 하기 쉽고 내게 유리하고 편안한 것만 순종하고, 내가 손해 보고 힘들고 어려운 것은 핑계를 되며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결과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멀리 내다 보지 못하고 불순종의 길을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당장은 유리할지 모르나 결국 불순종은 나에게 손해를 줍니다. 레위기 26장을 보시면 불순종에 따른 결과가 나옵니다. 무엇보다 땅이 산물을 내지 못하고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여 수고가 헛되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수확을 제대로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불순종했는데, 하나님이 도우시는 손길이 사라지자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들짐승을 보낼 것인데, 자녀의 출산과 가축과 재산의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읍의 모든 경제 활동이 끊기고 폐허가 될 것이라 선언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황폐화입니다. 하나님이 생명과 복을 끊어버리시면, 모든 것이 황무지처럼 쓸모없는 땅이 되어 버립니다. 생명이 말라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자는 불순종한 결과로 인한 책망을 3절에서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내가 다시 말하여 둔다.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겠다. 그들은 결국 너희를 찌르는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들은 너희에게, 우상을 숭배할 수밖에 없도록 옭아매는 올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백성을 몰아내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편으로는 큰 일이라 생각하면서 걱정했을지 몰라도, 한편으로 속마음은 가나안 백성과 공존 공생 하는 것에 대해서 이제 간섭하지 않겠다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거나 좋아라 했을지 모릅니다. 이게 인간의 악한 두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걸 아시고, 가나안 족속들이 결국에는 이스라엘의 옆궁리에 가시가 되고 옭아매는 올무가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불순종의 잘못이 얼마나 큰 업이 되어서 자신들에게 돌아올지 스스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과 복을 주시려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지만, 그렇게 기대하고 원했던 풍요와 안식의 땅에서 제대로 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난 뒤에 느껴지는 양심에 찔림이 있지요. 왠지 모를 그런 꺼림칙한 마음이 있어도 나 몰라하지만, 결국 그것이 계속 쌓이고 묵혀지면 장성하여서 죽음과 사망의 권세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통곡하는 사람들, 보김
일단 이 말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순간 겉으로는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그 땅의 이름을 통곡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보김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소리 높여 울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돌이키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단지 울음으로 그쳤기 때문입니다. 울음은 회개가 아닙니다. 제사를 드린다고 죄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돌이킴입니다. 삶과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의 울음은 신세한탄입니다. 그들의 기대만큼 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미래의 염려와 걱정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현실적인 땅의 축복을 주지 않아서 원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생이 괴로울 때 하나님 앞에 나아와 신세한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와 단지 감정만을 위로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예배가 감정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양심이 찔리니깐 울면서 면죄부를 받고자 합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울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방 종교에서 하는 것처럼 나의 행복이 신앙의 목표가 되고 하나님을 나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선택적 순종이 아니라 전적인 순종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약속을 전부 어긴 것은 아닙니다. 선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지키고 순종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 하나쯤이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하자 결국 가장 소중한 하나님이 주신 소명까지 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순종하는 것에는 대단한 지혜나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멋지게 해석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그것이 나의 소명이라면, 결코 타협하지 않고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불순종한 사울에게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좀 힘들고 불편하고 당장 내게 유익이 있지 않더라도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과의 약속도 그러한데, 하나님과의 약속은 더 중요합니다. 당장의 이익보다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켜내어 평생토록 생명과 복을 누리는 모두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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