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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사사기 2장 6절-10절 최선의 신앙 전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by 알렉스강 2024. 5. 22.

https://www.youtube.com/watch?v=oycFDwEefvQ&list=PLh4-9uGANmwqFFDrtikFvFalZUeQ0Qldc&index=5

 

 

사사기 2장 6절-10절

6   여호수아가 모인 백성을 흩어 보낸 뒤에,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가 유산으로 받은 땅으로 가서, 그 땅을 차지하였다.
7   온 백성은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을 잘 섬겼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도,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큰 일을 모두 눈으로 직접 본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님을 잘 섬겼다.
8   주님의 종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백열 살에 죽었다.
9   그리하여 그들은, 그가 유산으로 받은 땅의 경계선 안 에브라임 산간지방인 가아스 산 북쪽 딤낫헤레스에 그를 묻었다.
10   그리고 그 세대 사람들도 모두 죽어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이 죽은 뒤에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

Lithograph by J.G. Schreiner, c. 1840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사사기는 서론을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서론 첫 구절인 1장 1절에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서론인 2장 8절에서도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라고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 가나안의 두 번째 세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세대의 시작한 이유는 동일하지만, 여호수아 이후의 세대들이 신앙적으로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을 말해줍니다.

 

첫 번째 서론에서는 그 원인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가나안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을 헐라고 하셨는데 이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의 족속들을 다 쫓아내라 했는데, 그들과 공생을 선택하여 자신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말씀을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해석해서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 따라, 지키기 쉬운 것은 지키고 지키기 어려운 것은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자기 입맛에 맞추어서 취사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 삼은 자들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두 번째 서론에서는 그 원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의 전수에 실패했기에 이후 세대들이 영적으로 몰락했다고 진단합니다. 오늘 본문 6~7절을 보면,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온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 여호와를 온전히 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죽은 후 여호수아와 함께했던 장로들이 생존해 있을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변함없이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다음입니다.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 한 세대들이 죽게 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절 말씀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고 그 세대 사람들도 모두 죽어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이 죽은 뒤에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 여호수아 이후 새로운 세대의 문제는 주님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대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이처럼 앞서 하나님을 주인 삼지 않고 말씀에 불순종한 것도 결국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신 일을 알지 못하기에 생겨난 문제일 것입니다. 바로 여호수아 생전 세대와 사후 세대 사이에 깊은 신앙적 단절로 인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것이 어쩌면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비극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세대간의 단절을 넘어서 윗 세대의 영적인 경험을 고스란히 잘 전달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지식적으로 전달한다면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인 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와 돌봄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삶에서 경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육이 아닌 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나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경험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하나님이 함께하는 특별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이자, 출애굽기의 말씀입니다. 이 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물론 지식적으로는 들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자신들의 조상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그 역사 안에 담겨진 정신과 교훈을 자신도 동의하고 그 역사를 이어가는 주체로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선택받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되고 결국 주변에 영향을 받아 가나안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전수를 위한 모세의 교훈

모세는 이 점을 잘 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 전수를 무엇보다 강조했습니다. 신명기는 가나안 땅 입성을 눈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신명기 6장에서 이것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지키라 명합니다. 그 목적은 그것을 지킬 때에 나 자신과 나의 자손들이 잘 살 것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명확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누리는 복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서도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시냇가의 심은 나무와 같이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했습니다. 말씀에 따른 인생의 풍성한 복을 말해주고 있지요.

 

따라서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신명기 6장 4절에 말씀은 전합니다. 쉐마 이스라엘שְׁמַע יִשְׂרָאֵ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야훼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주님이시니. 이스라엘의 주님이신 야훼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백성들이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애굽의 신들과 가나안 신들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사람과 닮은 신들과 같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다릅니까? 변덕이 심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런 신실하지 못한 인간이나 악한 신과는 다릅니다. 언약에 충실하신 분이십니다.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사람과 달리 전능하시지만, 그렇다고 비인격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께 우리가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어떻게 하면 그 땅에서 나와 내 자손들이 잘 살 수 있겠습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사랑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의 말씀을 듣고, 즐거이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삶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최선의 신앙 전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라는 명령 앞에는 다른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먼저 사랑을 명령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명령임에도, 하나님은 무엇보다 자녀들이 아니라 너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자녀 앞에서는 위선적인 모습이 다 드러납니다.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는 척 하는 거짓된 모습이 다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녀 교육에 대한 최고의 해결책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단절이 아니라 신앙의 전수를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도 보시고, 우리 자녀들도 봅니다. 사람을 바꾸는 힘은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자녀의 마음을 얻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 자신의 진정성을 나타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부모가 하나님을 참 사랑하는구나.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했구나. 이 마음이 진정성 있게 전해질 때, 자녀들은 부모가 가진 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게 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이 세상이 타락해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중적일 수 있는 나 자신입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그냥 빈껍데기와 같은 겉치레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특히 내 말과 내 삶이 다를 때, 그것은 악한 세상보다 더 두려운 것이 됩니다. 자신도 망하게 하고 자손들도 망하게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자녀들이 사랑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는다

우리가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대해서 훈련시킬 때, 무엇보다 내가 말씀으로 하나라도 지켜 행하는 것을 보여줄 때 가능합니다. 단지 말이나 지식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삶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지 아십니까? 교회가 재미없어서요?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기대하는 것은 재미가 아닙니다. 재미있는 것은 세상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교회에 기대하는 것은 세상과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세상과 다른 모습을 보지 못할 때 떠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상은 이 세상과 똑같이 돈을 사랑하고 이기적이고 자신만을 위하니깐 그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겁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삶으로 우리 믿음을 증명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호세아서 6장 3절 말씀에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들까지 주님을 잊지 않고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잊지 않습니다. 그 뜻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잠시가 아니라 매일 매순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일 수록 하나님을 기억하고 나에게 주신 소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그 뜻에 따라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됩니다. 부모가 가진 신앙의 전정성을 알고 언젠가는 돌아서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부모로서 자녀를 참되게 사랑하는 방법이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유산일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