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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장 11절-21절 새번역
11 거기에서 그들은 드빌 주민을 치러 갔다. 드빌은 일찍이 기럇세벨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12 그 때에 갈렙이, 기럇세벨을 쳐서 점령하는 사람은, 그의 딸 악사와 결혼시키겠다고 말하였다.
13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 곳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은 그를 자기의 딸 악사와 결혼시켰다.
14 결혼을 하고 나서, 악사는 자기의 남편 옷니엘에게 아버지에게서 밭을 얻으라고 재촉하였다. 악사가 나귀에서 내리자 갈렙이 딸에게 물었다. "뭐, 더 필요한 것이 있느냐?"
15 악사가 대답하였다.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 메마른 땅을 주셨으니, 샘 몇 개만이라도 주시기 바랍니다." 갈렙은 딸에게 윗샘과 아랫샘을 주었다.
16 모세의 장인은 겐 자손인데,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로부터 아랏 남쪽에 있는 유다 광야로 옮겨와서, 유다 광야 백성 가운데 자리잡고 살았다.
17 유다 지파 사람들이 그들의 동기인 시므온 지파 사람들과 함께, 스밧에 사는 가나안 족속에게 쳐들어가서, 그들을 무찌르고, 그 곳을 전멸시켰다. 그래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고 부른다.
18 또 유다 지파 사람들은, 가사와 그 지역 일대와, 아스글론과 그 지역 일대와, 에그론과 그 지역 일대를 점령하였다.
19 주님께서 유다 지파 사람들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은 산간지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낮은 지대에 살고 있는 거민들은, 철 병거로 방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였다.
20 그들은,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다. 갈렙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냈다. 그러나
21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자손과 함께 살고 있다.
영적 장자 유다 지파
사사기 1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전반부는 유다 지파가 치른 가나안 정복 전쟁 이야기가 나옵니다. 후반부는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나머지 지파들의 가나안 정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다 지파 하나가 나머지 지파들과 비할 만큼 공적을 얻었으니 상대적으로 대단한 역량을 보인 것입니다. 이렇게 탁월함을 나타낸 유다 지파가 어떤 지파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유다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네 번째 아들입니다. 다윗 이후로 이스라엘 왕은 유다 지파에서 나왔고, 예수님도 법적인 혈통으로 본다면 유다지파 자손입니다. 야곱 이후 유다는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함께 실제로 장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아들 르우벤은 야곱의 첩인 빌하를 범하여서 장남의 자격을 박탈당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시므온과 레위는 여동생 다말이 세겜 추장의 아들에게 범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속여 집단 학살을 벌입니다. 이 일로 야곱 가족들은 보복이 두려워 급히 세겜 땅을 떠나게 됩니다. 아마 이때부터 야곱에게 아들로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본처 레아의 소생 중 마지막 넷째 유다만이 유일하게 야곱으로부터 아들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유다가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죽이고자 할 때, 머리를 써서 지나가던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넘겨 애굽으로 가게 한 것이 유다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 가뭄이 들어 곡식을 얻고자 애굽에 내려가게 되지요. 첫 번째 방문 때, 시므온이 계략에 빠져 잡히게 됩니다. 식량이 떨어지고 두 번째 방문하기 위해서는 도둑이나 정탐꾼이 아니라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어버린 이후로 라헬의 소생 베냐민을 놓지 않고자 했습니다. 이때, 유다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여 결국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유다 자손들은 열 두 지파 중 리더의 역할을 한 듯합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아들이라는 후광으로 인해 축복을 받았기에, 그 역량만큼은 유다 지파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지파들에게 가장 큰 인정을 받은 것은 유다 지파임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행진할 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가 법궤를 메고 가면, 바로 뒤에서 유다가 뒤따릅니다. 육적인 장자는 르우벤이지만, 영적인 장자는 유다임을 말해주는 사례입니다.
광야 초기 가네스 바네아에서 곧장 가나안으로 들어가고자 각 지파별로 정탐꾼을 보내게 됩니다. 이들 중 열명은 가나안이 좋은 땅이지만, 그곳 사람들이 거인처럼 너무 크고 강하고 성벽이 높고 튼튼하기에, 메뚜기 같은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열두 명의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들의 의견과 달리 믿음으로 보고를 합니다. 가나안을 이길 수 있다고 지금 올라가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믿음의 증언을 한 정탐꾼인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이고, 갈렙은 유다 지파입니다.
유다 지파의 리더십
사사기 1장 1절을 보시면 각 배분받은 땅을 정복하는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유다 지파부터 먼저 올라가 정복 전쟁을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 유다 지파는 장자로서 리더십을 보입니다. 열 두 지파 중 가장 약한 지파였던 시므온 지파와 협력합니다. 그리고 모세의 장인의 족속으로 광야 이후 이스라엘과 함께 했던 겐 족속과도 협력합니다. 이스라엘 중 가장 약한 이들을 도운 것입니다.
겐 족속은 모세의 처가 사람들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들어갔을 때, 모세의 장로 이드로가 찾아옵니다. 이드로는 70인의 장로를 세워서 모세가 효과적으로 백성들을 이끌도록 지혜를 줍니다. 그 외에도 광야의 삶에 익숙했던 이드로는 많은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했을 것입니다. 이후로 이드로의 족속인 겐 족속은 이스라엘과 함께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수가 지파들에 비해 매우 적었기 때문에 땅을 배분받더라도 자체적으로 전쟁을 치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가 나선 겁니다.
시므온은 야곱의 둘째 아들로, 가장 문제가 있는 아들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겜 사건에서 보듯이 거짓이 많고 잔혹한 사람입니다. 시므온의 자손들 역시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 요단강 동편 모압 땅에서 있었던 고스비 사건입니다. 싯딤이란 곳에 머물러 있던 중 발람 선지자의 유혹으로 바알브올 숭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참석하게 됩니다. 이것은 바알브올 신전에서 여사제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염병으로 2만 4천 명이 죽게 됩니다. 그 와중에 시므온 지파의 한 지도자인 시므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심지어 미디안 족속 여자 고스비를 진중에 데리고 와서 첩으로 삼아 그 앞을 걸어간 것입니다. 이걸 보고 제사장 비느하스가 격분하여 창으로 두 사람을 찔러 죽인 사건입니다.
지파의 리더들이 책임 없이 행동하기에 당연히 시므온 지파는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야의 시간을 거치면서 그 수가 급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민수기에서 싸울 수 있는 장정을 계산할 때, 이스라엘 전체가 60만 명가량 되는 수에서 2만 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세가 죽기 전에 지파별로 축복을 하는데, 심지어 시므온 지파에 대한 기도가 빠집니다. 결국 시간이 흘러 시므온 지파는 자연스럽게 유다 지파에 흡수가 됩니다.
시므온 지파와 겐족속과 연합한 유다 지파는 처음에는 파죽지세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칠십의 군왕을 상대로 무패를 자랑하는 아도니베섹을 이기고, 헤브론에 살고 있는 거인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헤브론까지 점령하자 유다 지파는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거주할 땅도 이 정도면 아쉽지만 살아가기엔 충분했을 것이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광야와 접경지였던 네게브 사막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좋은 땅도 아니었기에 굳이 희생을 치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웃니엘과 악사
바로 그때 갈렙이 나섭니다. 당시 여호수아는 죽었지만, 광야 초기 정탐꾼으로 활약한 유다 지파인 갈렙은 살아 있었습니다. 갈렙은 헤브론 아래 남쪽 지역인 드빌 기럇세벨을 공략하고자 합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기에 갈렙은 조건을 내겁니다. 전쟁에 나가 무공을 세운 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조건에 응한 사람이 바로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웃니엘입니다. 바로 조카가 나선 것입니다. 웃니엘은 성공적으로 정복 전쟁을 치루고 결국 갈렙의 딸 악사와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웃니엘도 대단하지만, 더 대단한 건 갈렙의 딸 악사입니다. 적극적이고 투지를 지녔던 아버지의 기질을 딸이 닮은 듯 한데, 결혼한 이후 남편 웃니엘을 부추겨서 아버지 갈렙에게 정복한 땅을 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갈렙이 드빌 기럇세벨을 정복하기 위한 조건에 딸을 준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땅을 준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물론 이후에 갈렙이 죽고 나서 유산으로 일부 딸에게 물려줄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사는 기다리지 않고 지금 당장 땅을 받도록 남편을 시켜 자기 친정에다 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상식적이지는 않습니다. 팔레스타인 전통에서는 대게 결혼을 할 때, 남자가 처가에게 무엇인가를 제공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물을 준다던지, 돈이 없다면 노동으로 대신하곤 했습니다. 그 대가로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야곱이 레아와 라헬을 얻기 위해 각각 7년간 도합 14년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일을 했습니다. 아무리 딸과의 결혼을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추가로 땅을 받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는 것이지요.
놀라운 것은 악사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악사는 남편에게 시킨 것에 더 나아가 자신도 아버지에게 더 요구를 합니다. 갈렙이 지나가는 말로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물으니, 악사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갈렙에게 꿇어 엎드려서 요구를 합니다. 그게 딸의 행동이기보다는 종이나 빈객이 주인에게 구걸하듯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절히 간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갈렙은 갑자기 딸이 종처럼 행동하니 왜 그런지 놀라 물었습니다. 악사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땅이 너무 메마른 곳이기에 샘 몇 개만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지리적으로 유다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남부에 위치합니다. 갈렙은 그 유다 남부인 헤브론에 거주하였고, 특히 웃니엘이 얻은 땅은 헤브론보다 더 아래인 남쪽이었습니다. 이 남부 지역이 네게브라 해서 사막입니다. 이곳은 땅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샘물입니다. 물이 없는 땅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샘물은 바로 사막의 오아시스인 것입니다. 갈렙은 악사의 요구대로 윗샘과 아랫샘 두 오아시스를 주었습니다. 사실 딸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아들보다 더 챙겨갔을 수 있습니다. 시집을 간 딸이 친정집에서 기둥 몇 개 뽑아서 챙겨간 것입니다.
결국 웃니엘은 기대한 것 이상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소명, 가나안을 정복하라는 명령에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걸고 충성하면 풍성한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심지어 사막과 같은 땅에서도 샘물을 주셔서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십니다. 물은 사막에서 생명입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생명도 풍성하게 주십니다. 그리고 이 축복을 요구한 것이 웃니엘이 아니라 아내인 악사입니다. 결혼을 잘해서 복 받았다 생각하지만, 웃니엘 자신은 오직 소명에 충실했기에, 나머지 것들은 하나님이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쫓아내지 못한 철기를 가진 골짜기 거민들
오늘 본문은 유다 지파의 미담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유다 지파가 웃니엘처럼 모두 다 소명에 충실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1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주님께서 유다 지파 사람들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은 산간지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낮은 지대에 살고 있는 거민들은, 철 병거로 방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였다.” 유다 지파는 산지 거민들을 쫓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골짜기 거민들과 싸울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눈앞에 철 병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결국 철 병거 앞에서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이 있던 시기는 대략 B.C. 11세기 경으로 인류 문명이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던 때입니다. 철을 처음으로 만든 히타이트가 소아시아 지방에 거주하였고, 아마도 가나안에 거주하던 일부가 소아시아 지방에서 내려 온 자들로 철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사기 기간 동안 철기를 다루는 기술이 없었습니다. 사사시대가 끝나고 사울이 왕이 된 왕정시대에도 철을 다루기 위해서는 그리스에서 넘어온 블레셋 사람들의 기술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광야에서 마땅한 무기조차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기를 앞세운 족속들과 싸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철기가 없다고해서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법은 없습니다. 훗날 사사 드보라와 바락은 철병거 구백승을 가진 야빈 왕을 상대로 대승을 거둡니다. 사사 기드온 횃불과 뿔나팔로 승리합니다. 패배 원인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창과 칼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싸움은 누가 더 최신식 무기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골리앗은 큰 칼과 창을 가지고 나왔지만, 목동이었던 다윗은 손에 막대기 하나와 물 맷돌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은 전쟁의 승리가 칼과 창과 같은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철병거를 가진 골짜기 거민들과 싸웠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철 병거가 없다는 것을 핑계로 현실과 타협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쫓아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철 병거라는 핑계로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상대가 강한 것과 내 능력이 안 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상대가 강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다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쫓아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앞선 1장 9절에 따르면 유다 자손은 산간지방과 네겝 지방과 낮은 지대로 내려가서, 거기에 사는 가나안 사람과 싸웠다고 말합니다. 이미 유다 자손은 낮은 지대, 즉 골짜기 거민과 싸워서 승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승리할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희생이 두려웠던지 승리에 의심이 들었든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막까지 사명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 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명에 충성하면 생명과 복이 주어진다
이것은 비단 유다 지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사기 1장 8절의 말씀을 보면, 유다지파가 분명히 예루살렘을 치고 점령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21절 말씀에서는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자손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베냐민 지파의 경우는 줘도 못 먹은 것입니다. 유다 지파가 승리해 놓은 곳에 자신들은 올라가서 마지막 잔불 정리하듯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하면 되었는데, 그마저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적당히 거리 두기를 하면서 현실과 타협하고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회피하는 직무유기였습니다. 이때 정복하지 못한 여부스 족속은 훗날 다윗이 왕이 된 이후로 완전히 정복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스라엘에게 눈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됩니다.
사명의 길은 처음에는 누구나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을 끝까지 완수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명에 충실하여 완수한 사람과 그러지 못하여 중간에 포기하고 타협한 사람이 나옵니다. 두 사람의 길의 결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명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웃니엘에게 악사라는 천사와 같은 아내를 붙여주셨듯이, 주님은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이유로 마지막 순간을 견뎌내지 못해서 타협했을 때, 그 결과로 인한 고통은 죽을 때까지 평생 지고 갑니다. 그리고 후손들까지도 그 짐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30장 19절과 20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말입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십시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살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그 땅에서 당신들이 잘 살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 모두에게 주신 소명에 끝까지 충성하여 생명과 복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모두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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