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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20장 13절 제 6계명, 살인하지 못한다

by 알렉스강 2024. 9. 7.

출애굽기 20장 13절 새번역

 

13 살인하지 못한다.

 

 

에덴동산 이후 최초의 범죄인 살인

살인은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가장 먼저 일어난 범죄입니다. 아담의 아들인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입니다. 가인은 농부였고, 아벨은 목축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곡식을 바치고 아벨은 양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예배만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이 드린 것이 곡식 제사라 받지 않은 게 아닙니다. 결국 가인의 마음의 중심에 대한 문제였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예물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예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자신이 드린 제물을 거절당하게 되자, 가인은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가인은 몹시 분하여서 안색이 변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동생 아벨에 대한 시기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자존심과 경쟁의식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마음을 아시고 경고하십니다. 창세기 4장 6절과 7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스스로를 다스리라는 경고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결국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살해라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단순히 동생을 죽인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가인이 먼저 형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점을 깨닫게 하려는 질문이었습니다. 너는 동생을 지키는 자이지 죽이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하지만 가인은 죄에 무감각해져서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뻔뻔하게 답하며 자신의 죄를 부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 나에게 호소한다"라고 말씀하시며, 가인이 저지른 죄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후로 가인은 자신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아 땅이 자신을 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뒤에야 가인은 자신의 죄벌이 너무 크다고 고백하며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가인을 벌하지 않으시고, 표를 주어 보호하셨습니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을 것"이라고 하며 죽이지 않고 살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시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아낌과 보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인에 대해서도 용서하시는 깊은 사랑과 은혜를 보여줍니다.

 

우선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살펴본 것은, 무엇보다 살인이라는 인간의 가장 끔찍한 범죄의 위중함과 그리고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 살인이 왜 일어났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을 통해서 보면, 분노와 시기가 가장 중요한 살인의 동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분노를 다스리지 않으면 가인과 같은 살인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죄 이후 타락한 인간이 저지르는 죄는 단순한 문제라기보다는 복합적이면서 내적인 동기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죄는 그 시작이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사도 바울도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한 것입니다.

 

죄는 마음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다윗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한 후 충복인 이방인 장수 우리아를 살인교사로 죽게 만듭니다. 다윗이 처음부터 우리아를 죽이고자 했겠습니까? 자기 죄를 덮기 위해서 몇 차례 시도를 하다가 결국 뜻대로 되지 않자 요압을 시켜 당시 치르고 있었던 전쟁 맨 앞에 서게 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살인만이 아니라 여러 계명을 어긴 복합적인 죄였습니다. 다윗은 먼저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제 10계명을 어겼고, 이어서 간음하지 말라는 제 7계명, 그리고 결국 살인하지 말라는 제 6계명까지 범한 것입니다. 죄는 이렇게 하나의 죄가 다른 죄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는 북이스라엘 아합 왕의 일화입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몸져눕게 됩니다. 나봇의 포도원은 대대로 내려오는 유업이라 넘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지고 싶은 욕심으로 떼를 쓰는 것이지요. 이걸 아내인 이세벨이 한심하게 보고 꾀를 내어 남편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거짓 증언으로 나봇을 음해하고 깡패를 동원해서 폭력으로 살해하여 결국 포도원을 빼앗습니다. 이 사건도 자세히 살펴보면 살인이라는 하나의 범죄만 저지른 게 아닙니다. 아합의 욕심과 이세벨의 거짓말이 결국 나봇을 살해한 것이고, 그리고 포도원을 도둑질한 것입니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제 10계명,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제 9계명, 살인을 하지 말라는 제 6계명, 그리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제 8계명을 동시에 어긴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다윗도 그렇고 아합도 그렇고, 결국 마음에 깃든 욕심이라는 죄의 씨앗이 자라나 여러 가지 악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앞서 가인에게 말씀하신 바 “죄가 너를 지배하려고 하니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루터가 이야기한 대로 새가 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것은 막지 못하나 내 머리 위에 앉아서 새 집을 짓는 것은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내 마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적 결단과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외적인 문제가 아닌 결국 내적인 마음의 문제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를 아시고 산상수훈에서 살인에 대해서 교훈하실 때, 단순히 생명을 앗아가는 육체적인 살인 행위뿐만이 아니라 형제를 향한 분노, 모욕, 미움 등도 살인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전에 형제와 화목할 것을 강조하시며, 이러한 마음가짐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보다 우선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결국 내 이웃과 형제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결국 우리는 외적으로는 살인은 아니더라도 죄의 본질적 특징으로는 살인과 다를 바 없는 미워하고 분노하고 욕하는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보다 본질적인 메시지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않는 것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기꺼이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서 하나님과 원수로 살던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죽음의 형벌을 받으신 예수님의 헌신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우리는 결코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생명도 소중하게 생각하신다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하나님은 그 어떤 생명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그리고 우리 역시 생명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인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약한 생명일수록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면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선대 하시는 분이십니다. 약한 생명일수록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한 것도 이스라엘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가장 약한 민족이기에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육신의 기준으로 지혜가 있어서, 권력이 있어서, 가문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어리석은 우리를 선택 하셨고, 잘 나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는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구약을 보시면 도피성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도피성은 우발적으로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른 경우 그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함입니다.  물론 고의적 살인의 경우는 사법 시스템에 따라 공적인 절차에 따라 사형으로 처벌하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업 무르는 고멜 제도가 있지요. 사실 고멜 제도 안에 가족에 대한 보복 살해도 하도록 허락되어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 형제를 죽이면, 내가 찾아가서 대신해서 죽이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말이 안 되지만, 당시 사법 시스템에서는 허용되는 일입니다. 이런 만약 누군가를 의도치 않게 죽였다면, 보복 살해를 피하기 위해서 도피성으로 피하도록 한 것입니다. 따라서 도피성 제도는 보복 살인을 최소화하려는 사회적 제도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피성 제도를 통해 생명 존중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앞서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아끼는 마음으로 가인의 생명을 취하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생명을 지키는 것에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은 고의적 살인과 우발적 살인을 구분하여 처벌했다고 해서, 어떤 경우이든지 생명을 해한 일에 대해서 면책받고자 하지는 마십시오. 만약 내가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은 일이 있다면, 정말 평생토록 속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맞습니다. 영화 밀양에서 태권도장 관장이 주인공의 아이를 살해한 후 감옥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서 주인공 앞에 먼저 떳떳하게 주님이 나를 용서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를 두 번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일로 전도연 씨가 연기한 여자 주인공은 시험에 빠져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는 말씀을 엄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의성이 없는 살인이 아니라도, 미필적 고의로 인해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은 피해자가 죽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방치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서, 주변에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알고도 불을 지르면서 방화한 사례가 해당됩니다. 이것도 고의성이 있는 살인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최근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고 논란이 되었지요. 생명에 위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 양심의 문제만이 아니라 실정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과실치사의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음주나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입니다. 물론 고의성이 없다고 해도, 이런 행위는 사람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음주 운전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과속도 해서는 안됩니다. 철저하게 법규를 준수해야 합니다. 정말 뜻하지 않게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경우가 아닌 이상 생명이 희생되는 경우를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 존중 의식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생명 존중 의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먹는 것으로 장난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돈을 좀 더 벌겠다고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간접 살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명 존중의 가치를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는 성경에 명시된 지침이 없는 다양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문제에 일일이 답을 주기보다는 바른 판단을 위한 근본적인 태도를 가르칩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 존중 의식입니다. 개인의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보다 한 생명이 그 무엇보다 귀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환경에 대한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들어 기후 변화로 인한 문제로 인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데, 사실 환경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바다 오염, 유전자 변형 식품, 환경 호르몬, 대기 오염 등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 자신과 후손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들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앞장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낙태 문제나 배아 복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태아는 한 인격으로서 생명의 권리를 가집니다. 낙태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절대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뜻하지 않게 아이가 생겼을 때, 정말 신중하게 기도하시며 결정하길 바랍니다. 배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난치병 치료와 같은 공익을 위해 연구에 사용된다고 하지만 배아도 하나의 생명으로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 어느 순간에도 생명은 단절되지 않습니다. 성인을 죽이는 것이 살인인 것처럼, 배아를 죽이는 것도 살인입니다.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결국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생명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깊이 성찰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자살의 문제, 안락사의 문제 등 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토론을 하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결정하기 앞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태아든, 장애인이든, 병자든, 노숙자이든, 정상적이라 불리는 일반적인 사람 모두 다, 결국 자기에게 허락된 생명이 내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 어떤 생명일지라도 무시하거나 배제시키지 말고 서로 존중하고 함께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무엇보다 내 몸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건강을 해치는 폭식, 음주, 흡연, 과로 등을 피해야 합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듭니다. 적절한 휴식과 운동을 통해 잘 관리하여, 우리 육신이 영적인 생활을 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