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장 3절 새번역
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십계명의 순서
십계명이라는 이름은 인간이 붙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주신 열 가지 계명입니다. 우리는 이를 "십계명"이라고 번역하지만, 히브리어로는 "에세레트 하데바림עֲשֶׂרֶת הַדְּבָרִים"이라고 하여, "열 가지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에세르"는 기수로서의 숫자 10을, "다바르"는 말씀을 뜻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말에서 "십계명"이라고 번역한 것이며, "열계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십"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에서 기수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십계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유대교, 가톨릭, 우리 개신교가 각각 십계명 순번을 매기는 것이 조금씩 다릅니다. 유대교에서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2절 말씀을 제1 계명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3절부터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6절까지를 2계명으로 봅니다. 3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개신교와 동일한 순서로 이어집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와 달리, 개신교의 1, 2계명을 하나로 묶어 1계명으로 봅니다. 대신 10계명을 둘로 나누어 9계명으로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그리고 10계명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라고 구분합니다. 이 해석은 어거스틴의 분류법을 따른 것입니다. 루터교회도 가톨릭의 구분법을 따릅니다.
이러한 구분이 누가 맞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각 계명을 1계명, 2계명 등으로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전체를 "십계명"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실 때 번호를 붙이지 않고 줄줄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각 계명의 번호를 정하는 것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계명의 번호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말씀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계명인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는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앞에서, 알 파네이עַל פָּנַי
먼저 “내 앞에서”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알 파네이עַל פָּנַי"를 먼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알”은 올라간다는 의미의 "알라"에서 온 말로, “위에”, “넘어”, “대하여”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입니다. “파네이”는 “얼굴”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파님”에서 유래했으며, “내 얼굴 앞에”, 즉 “내 앞에”라는 의미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알 파나야עַל פָּנַי"는 “나 위에”, “나를 대적하는”, "나보다 우선하여", "나를 대신하는"이라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합니다. 이것은 마치 사랑하는 남편을 앞에다 두고 다른 남자를 사귀는 아내의 모습을 말해줍니다. 대놓고 행음하던 호세아의 아내 고멜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사실 이것을 용서할 남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구별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쳐두고 다른 신을 섬긴다면, 하나님께서 이를 용납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제1계명을 단호하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 계명을 주신 이유
무엇보다 첫 번째 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상에 묶여 살지 않도록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구원자로 모신 사람들은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은 문명을 꽃피우거나 국력을 강하게 하여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군사를 계수하고 국력을 강하게 하려 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징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들의 생활과 예배, 역사를 통해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는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되며, 만약 다른 신이 공존한다면 그들의 존재 목적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려를 가지고 첫 번째 계명으로 경고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서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터진 웅덩이를 파는 것과 같으며, 이는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는 추한 삶을 초래합니다. 첫 번째 계명을 어기고 다른 신을 섬기면, 그가 섬기는 신과 함께 망하게 됩니다. 가나안 정복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다한 후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라고 외친 여호수아의 결단을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보니, 정말 여호와만을 섬기는 것이 가장 잘한 일임을 여호수아는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마음
인간은 본능적으로 신에 대한 의식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신’이란 사람보다 능력이 크고 모든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신을 의지하여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종교가 이 본질을 공유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분만으로 충분하기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필요로 하거나 의지하는 것은 첫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추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칙에 따라 살면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진다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법칙을 어기면서까지 어떤 것을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며, 첫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기심을 생각해 봅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시기하거나 형제간의 시기심, 동료 간의 시기심 등은 인간관계에서 자주 나타나는 감정입니다. 시기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시기심을 피할 수 없다거나 아니면 시기심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에 품습니다. 그러나 시기심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이며, 이를 품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욕심, 분노, 분개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감정이나 욕망이 하나님의 법칙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추구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결국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까지도 필요한다 생각하면서 자기 만족과 유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도 결국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는 첫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첫 계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면밀히 살펴야 하며,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거나 추구하는 마음을 경계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욕망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효과적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효력’이란 내게 유익이 되는 효과적인 힘을 말합니다. 삶을 지탱하고, 명예를 높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해 주는 대상을 보고 효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효력의 대상은 경제적, 명예적, 활동적, 권위적 측면에서 우리의 생활을 원활하게 해 줍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유효한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것은 인간 본성상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효력이 건강한가 하는 점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커지면 편법을 찾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돈, 배짱, 심지어 거짓과 사기에 효력을 두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해 독한 말이나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결국 스스로 멸시를 받게 됩니다. 그렇다고 웃고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요즘에는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잘 생각해 보라
어찌 되었든 돈, 권력, 기술, 지식, 직책 등 다양한 것들에 효력을 두는데, 이 효력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에 따라 결정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력을 두는 곳에 마음을 두게 되며, 자연스럽게 그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들이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비교나 시기질투에 따라서 일시적인 만족을 위한 외적인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내면의 가치와는 별개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인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숙고해 보라고 말합니다. 정말 너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일시적인 것들이 아니라 보다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 내 앞에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라틴어로 코람데오Coram Deo라고 하지요.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면,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어디에 나의 사모함과 힘을 두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다시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라는 게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채 나 자신을 세워 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 섭리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세상에는 사람보다 능력 있는 자도, 지혜로운 자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하고 지혜롭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 존재들을 지으셨고, 그들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거나 끊을 수 있으며, 질병을 주거나 치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외의 어떤 것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방편과 지식을 배워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그 지식과 기술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지식과 언어를 창조하셨고, 모든 지혜는 하나님의 권한 아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지혜나 기술이나 힘을 의지하는 것은 결국 어리석고 허무한 일입니다. 만약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면, 그 지혜와 기술을 하나님이 없애버리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의 어떤 것들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우리의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다들 돈에 환장했습니다. 돈이라는 우상 앞에 다 무릎을 꿇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야 말로 구약 십계명의 첫 계명이자, 우리 신앙의 가장 근본 된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행동의 시작, 목적, 방법, 결과를 살펴보라
우리 행동을 살펴보면 그 행동에 대한 시작이 있고, 목적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행동에 대한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 삶의 방식, 특히 모든 행동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선 모든 행동의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시작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모든 행동의 목적은 하나님이십니다. 행동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행동의 방법도 하나님이십니다. 행동하는 방식 또한 하나님의 뜻에 맞춰야 합니다. 결과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열매로 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섬김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누군가를 섬기는 것은 남을 돕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그 이유라면, 우리의 섬김이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섬김의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김의 방법 중 무엇을 사용하든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상관없습니다. 마치 요리를 할 때 다양한 재료와 방법을 사용하지만, 최종 목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지만, 모든 행동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신명기 6장 4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즉 쉐마 이스라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 판에다 새겨놓아 지도록 귀에 닳도록 이야기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42장 8절에서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43장 12절에서는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대로 우리의 구원과 찬송은 오직 하나님 것입니다. 모세와 이사야가 준 말씀들을 반드시 우리 마음 판에다 깊이 새겨 놓는 은혜가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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