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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20장 12절 제 5계명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by 알렉스강 2024. 9. 5.

출애굽기 20장 12절 새번역

 

12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

 

 

나의 존재의 근원은 하나님과 부모이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한 사람을 만드는 데는 세 가지 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생명을 주신 부모님이 없었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의 경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당시, 애굽의 바로는 히브리 민족이 수가 많은 것을 보고 위협을 느껴 태어난 아들은 모두 다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히브리 부모들의 마음은 찢어졌지만,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 역시 나일강에 던져질 운명이었지만, 모세의 부모인 아므람과 요게벳은 위험을 무릅쓰고 3개월 동안 숨겨 키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더는 숨어 키울 수 없게 되자 결국 강에 버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물에 던지지 않고, 갈대상자를 만들어 그 속에 모세를 넣고 나일 강변 갈대숲에 두었습니다. 결국, 바로의 딸이 그 상자를 발견하고 양자로 삼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키울 유모로 누이 미리암의 기재로 요게벳이 선택됩니다. 이로 인해 모세는 3살까지 어머니의 품에서 히브리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인물이 된 가장 큰 배경에는 부모의 헌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하지만, 다음으로는 부모의 사랑과  돌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공경은 무겁게 여기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십계명 중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 중 첫 번째라 할 수 있는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할 때, 공경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베드כָּבַד입니다. 이 단어는 무겁다는 뜻인 카바드דבכ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부모님의 말씀과 가르침, 그리고 징계를 진지하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말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카바드에서 나온 또 다른 단어가 영광이라는 뜻을 가진 카보드כָּבוֹד입니다. 즉 부모를 대할 때 하나님께 대하듯 하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경이 무거운 것이라면, 반면에 '저주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레칼렐לְקַלֵל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가볍다는 뜻인 칼랄"קל에서 왔습니다. 부모의 말을 무겁게 여기는 것은 공경하는 마음이고, 반대로 부모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태도는 저주받을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을 무시하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부모님을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를 가볍게 여기며, 결국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7장 16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업신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가 저주받는 것에 대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아멘"으로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함은 윤리적인 효도가 아닌 하나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다

잠언 30장 17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조롱하며 어머니를 멸시하여,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새끼 독수리에게 먹힐 것이다.” 무서운 말씀이죠. 아버지를 조롱하거나 어머니에게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자의 눈이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에게 먹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에게 이처럼 무서운 저주와 형벌을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윤리적 가르침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의 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통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모든 권위에 대해서 공경하고 신실하라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부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위에 세워진 모든 권위자에게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부모와 세상의 권위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질서 속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부당한 질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선적으로는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그 권위를 새롭게 바꾸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권위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는 방법을 배우고 훈련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섯 번째 계명은 단순히 효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서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이러한 관점은 신약에서도 이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 20절에서 “자녀 된 이 여러분, 모든 일에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단순히 착한 일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말씀인 23절을 보시면,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권위에 순종할 것을 사도 바울은 서신서 전체에서 몇 번이고 반복합니다. 로마서 13장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모를 포함한 모든 권위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단순한 윤리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라 가르친 것입니다.

 

원래 사도 바울은 자신의 권위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서 스스로 늘 변론하고 주장해야 했습니다. 자기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타인의 권위에 대해서 무시하는 경향을 가집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방인 선교에 대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끝까지 겸손하게 찾아가서 이해를 구하고 동의를 얻었습니다. 바울이 비굴해서 그랬겠습니까? 아니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좋아서 그랬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가 하나님께 영광되는 것임을 알았기에, 자신을 처서 복종시킴으로 이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부모의 말을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결을 같이 한다

예수님의 비유를 보시면 부모에 대한 공경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연결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 나오는 두 아들의 비유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서 일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첫째 아들은 예라고 대답했지만 실제로 가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거절했지만 나중에 후회하고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제자들에게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말씀에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일맥상통하며 그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이삭의 경우를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만의 순종이 아닙니다. 이삭의 순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향하여 갈 때, 제물로 쓸 나무를 이삭에게 지우고 나아갑니다. 이 정도면 이삭이 사춘기를 지나서 성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나무와 불은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느냐고 묻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 답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장작 더미에 눕히고 칼을 든 아버지를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충격적인 상황입니다. 아버지 왜 그러시냐고 따지며 힘으로 거부하고 자리를 피해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 명령을 따라 제단 위에 누웠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어머니의 유형

그런데 부모의 말을 있는 그대로 순종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부모도 인간인지라 부모의 말이나 행동이 다 옳은 것이 아닐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다 잘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부모의 월권에서 문제가 될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습니다. 어머니들이 자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잘못된 애정 표현 방식이 문제입니다. 독일의 심리학자인 루이 쉬첸회퍼는 "당신은 어떤 어머니입니까?"라는 저서에서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어머니의 유형을 4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권력형, 자기도취형, 희생형, 애정결핍형 어머니입니다. 이런 유형의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본 것입니다.

 

첫째, 권력형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어머니입니다. 자녀의 사생활까지 통제하며, 심지어 폭력을 사용해 자신의 뜻을 강요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소극적이고 자기표현이 부족해지며, 어머니에 대한 내적 증오가 세상에 대한 냉소나 폭력으로 나타납니다. 둘째, 자기도취형 어머니는 자녀를 통해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려는 유형입니다. 자녀를 자신의 성취 도구로 여기며 일방적으로 강요합니다. 자녀는 자신의 꿈과 개성을 키우지 못하고 늘 결핍감을 느끼게 됩니다. 셋째, 희생형 어머니는 자신의 희생을 강조하며 자녀에게 죄책감을 심어줍니다. 주로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가정에 자라난 경우로, "나는 너 때문에 희생했다"는 메시지를 주며 자녀를 정신적으로 얽매이게 합니다. 과도한 책임감과 죄책감 속에서 자라게 되어 우울증과 자아 혐오를 경험하게 됩니다. 넷째, 애정결핍형 어머니는 차갑고 냉정하며 사랑을 표현할 줄 모릅니다. 칭찬에 인색하고 감정을 억제하며 자녀에게 무관심하거나 편애합니다. 자녀는 감정 표현이 서툴고, 때로는 냉혹한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부모도 잘해야 하고 자식도 잘해야 한다

성경에서도 자녀들만 잘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도 잘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가르칩니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에 따라 자녀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훈에 따라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공경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자식에게만 공경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부모로서 자녀의 공경을 받기 위해서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유한 부모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녀를 내 소유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모라는 책임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오해하지 말 것은 그렇다고 자녀 된 분들에게 면제부를 드리는 게 아닙니다. 놀랍게도 효자 효녀는 무서운 부모 밑에서 나올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근엄하게 자녀들을 대하며 적시에 매로 교훈한 경우는 나중에 커서도 부모에게 조심하는 태도를 끝까지 가집니다. 부모가 엉망인대도, 훌륭한 자녀가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모가 훌륭한대도, 엉망인 자녀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도 중요하지만 결국 자기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부모의 인격이나 삶이 어떨지라도, 부모라면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합니다. 나는 못하더라도 너는 잘 살아야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것 같지만,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단 부모에게 자녀를 엄히 교육하라는 권면 합니다. 잠언 13장 24절 말씀에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훈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라고 교훈한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여 누리는 복의 참된 의미

마지막으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는 약속이 따릅니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십계명에는 이 약속에 복이 하나 더 추가됩니다. 신명기 5장 16절입니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주 너희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다.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 살면서 복을 누린다.” 오래 살뿐만이 아니라 복까지도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복을 받고 싶다면, 먼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비결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을 단지 세상의 복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편 73편에서 아삽이 말한 것과 같이 악인이 형통할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부모를 학대하고도 오래 사는 사람들도 있고, 때로는 부모를 잘 섬겼지만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네 생명이 길리라는 말은 영적인 측면의 시간이 연장된다는 말로 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즉 육신의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게 되어 우리의 영적인 생명이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세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으로 이어져 보다 가치 있고 풍성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이 진정으로 성공하고 복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외경인 집회서 3장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누리는 삶의 참된 복을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긴 말씀이지만, 마지막으로 함께 읽어보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얘들아, 아버지의 훈계를 들어라. 그대로 실천하면 구원을 받으리라.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하고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상전처럼 섬긴다.

말과 행동으로 네 아버지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그의 축복을 받으리라.

아버지의 축복은 자녀들의 집안을 튼튼하게 해 주고 어머니의 저주는 집안을 뿌리째 뽑는다.

아버지를 욕되게 하여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지 마라. 아버지의 치욕이 네게 영광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의 영광은 제 아버지의 명예에서 나오고 어머니가 불명예스러우면 그 자녀들은 비난거리가 된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네가 재난을 당할 때 네가 기억되리니 네 죄가 따뜻한 날 서리처럼 녹아내리리라.

아버지를 버리는 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와 같고 자기 어머니를 화나게 하는 자는 주님께 저주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