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장 4절-6절 새번역
4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5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우상의 본질적 성격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십계명 중 두 번째 계명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제 2계명은 우상을 만드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무슨 형상이든지 그것을 섬기고 절하기 위해 만든다면, 그때부터 우상이 됩니다. 성경에서 느부갓네살 왕 때의 금으로 만든 동상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당시 유대의 세 청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의 모습을 따라 만든 우상에 절하라는 명령에 반대하다가 불 속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의 보호로 아무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우상은 우리 신앙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사실 우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은 물리적인 형상이 아니며,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의 본질적 성격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든 모든 것들입니다. 그러니 우상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상을 만들 때에는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듭니다. 이것은 우상의 이름을 새기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인간이 임의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원래 아담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 이름을 붙여야 했습니다. 이름을 붙일 때에는 그 피조물에 깃든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름을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을 만들어 이름을 짓는 것은 그 우상에 대한 인간 자신의 신념과 의지가 투영되었음을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아니라 내 뜻과 내 의지를 관철시키겠다는 것이 바로 우상을 만드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것을 조금 변형시켜서 마치 내가 만든 나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길을 선택하며, 그 길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좋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자기를 위한 것이냐, 주님을 위한 것이냐에 따라 그 길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자기를 위해 선택한 길은 결국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자기 스스로가 만든 것이며, 그 길에서의 모든 결정은 자신의 욕망에 기반을 둡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선택은 결국 자신이 만든 것이기에, 자신에게 가장 이롭다고 여겨지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집니다. 결국, 자기를 위해 만든 것은 자신에게 우상이 되며,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자기를 위해 무엇을 만든 것은 결국 우상으로 전락하게 되며,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것이 우상이 되었음을 쉽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우상숭배이다
자기를 위한 선택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 어긋나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과 점차 멀어져 심지어 하나님과 대립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자기가 선택한 길이 결국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서 주님의 계명을 따르길 선택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이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럼 빨리 돌이키면 됩니다. 그런데 우상에 빠지면 놀랍게도 사람이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쉽게 시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우상을 붙들고 놓지를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손에 집어든 사탕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미련하게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땅에 넘어져서 손에 쥔 사탕이 바닥에 떨어져서 깨어질 때까지 잡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0장 14절과 15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리석고 지식이 모자란다. 은장이는 자기들이 만든 신상 때문에 모두 수치를 당한다. 그들이 금속을 부어서 만든 신상들은 속임수요, 그것들 속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허황된 것이요,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아서, 벌을 받을 때에는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어리석다는 게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헛된 우상을 섬기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가장 지혜롭다는 솔로몬을 생각해 보십시오. 솔로몬도 우상 숭배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왕권이 강해지자 많은 이방 여인을 아내를 두었고, 아내들이 데려온 이방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솔로몬의 말년은 비참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눠지게 됩니다. 왕의 우상숭배로 인해, 민족이 나눠진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것인지 자기를 위한 것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우상에 빠지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모든 일에 대해서 주님을 위한 것인지 자기를 위한 것인지를 분명히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대의를 부르짖으며,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거나 세계 평화와 인류를 위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이 주님을 위한 것인지, 자기를 위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선택한다면,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반대로, 주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어긴다면, 그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매우 교묘하게 마음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상은 언제든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공부, 지식, 부모, 자녀, 사업, 남편, 아내 등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우상이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존경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우상화하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공로자나 필요로 여겼던 것이 차츰 절대적인 존재로 변화하고, 결국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 그것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처음부터 명확히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차차 우상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유혹과 시련을 통해 신앙의 진실성을 시험하십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우상 숭배는 나를 책임질 수 없는 세상의 것을 의지하게 만드는 가짜 믿음이다
현대 사회는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가 만연하며,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소비하도록 부추깁니다. 이러한 욕망은 우리를 우상 숭배로 이끌고, 결국에는 공허함과 불안을 가져다줍니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외모, 성공,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과시하게 하여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비교 의식을 심어줍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을 섬기게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 안에 누룩이 떨어져 번저가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 외에 것으로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생사와 화복을 주관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속내를 보면,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이 자신의 행복이나 불행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더 벌어야 하나, 집을 사야 하나, 주식을 해야 하나, 로또를 해야 하나 등등 이러한 생각에 우리가 불안해져서 세상의 것을 의지하려는 가짜 믿음이야 말로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우상 숭배는 거짓된 것을 진짜라고 믿게 만드는 일종의 사기 행각입니다.
마음의 불안과 탐욕이 우상숭배이다
따라서 우상 숭배는 단순히 물질적인 형상을 숭배하는 것을 넘어,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욕망과 불안을 반영하는 심리적인 현상입니다. 잠언 4장 23절 말씀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단순히 형상이나 물건을 신성시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심리적 기저에 인간의 깊은 내적 욕구와 두려움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지요.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마음이 어떠할 때, 우상을 찾게 되는 것일까요? 첫 번째, 공허함을 채우고자 할 때, 우상을 찾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랑, 소속감, 그리고 삶의 의미를 추구합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물질, 인간관계, 성공 등의 외부적인 것들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것들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불안감 해소하고자 우상을 찾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대상을 찾게 만듭니다. 돈, 권력, 명예와 같은 것들은 이러한 안정감을 제공해 줄 것이라 믿게 되며, 사람들은 그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자기애를 충족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욕구는 때로는 자기 자신을 신격화하거나,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을 과도하게 숭배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을 우상의 위치에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 공부도 하고, 장사도 하고, 사업도 해야 합니다. 먹고살아야 합니다. 누군가 만나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요, 무한하고 그 크신 하나님이 쫀쫀하게 이런 거 가지고 뭐라고 하시겠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택하지 않은 백성의 경우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는 이 부분에 있어서 매우 분명합니다. 5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죗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인 우리 사이는 연인 사이입니다. 이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애인에게 섭섭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자꾸 2순위 3순위로 밀리게 되면 관계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목적과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축복이 되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의지하고 추구한다면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우상으로 삼으면, 하나님은 그 우상을 멸하시며, 우리의 삶에서 축복을 거두실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는 우상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축복도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남편을 만난다면 그 남편은 하나님의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술, 재능, 힘, 지위, 이런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것들을 하나님보다 우선시하고 의지할 때, 그것들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형상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형상화하면 더 잘 이해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뿐입니다. 신명기 4장 12절은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얼굴이 아닌 뒷모습만 보았을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함과 무한함 때문에 형상화될 수 없는 존재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그나마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고백하고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이사야서 55장 9절부터 11절까지 말씀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땅을 적셔서 싹이 돋아 열매를 맺게 하고,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유대인들이 말씀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전이 무너진 후에도 유대인들의 신앙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에 대한 깊은 경외심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 알 수 있는 충분한 것을 제공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상으로 크신 분이십니다. 말씀조차도 인간이 이성이나 교리로 하나님을 제한하려는 시도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욥을 생각해 보십시오. 욥의 투쟁은 인간이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기 42장 3절 말씀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무지한대도 제 멋대로 지껄이며 다 아는 듯 행하는 교만한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감추시는 하나님, 압스콘디두스 데우스 Absconditus Deus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달리 스스로를 감추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45장 15절은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합니다.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고통받을 때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을 두고 감추시는 하나님, 즉 압스콘디두스 데우스 Absconditus Deus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완전히 파악하고 이성으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하나님을 제한하려는 교만한 행동이자, 이것이 바로 우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고정된 틀에 가두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개혁의 태도를 요구합니다. 진리는 늘 앞서가고 있는데, 인간은 종종 낡은 진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방편이라고 하지요.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야 합니다. 강을 건너게 하신 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리석게도 뗏목을 하나님인 양 우상처럼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을 점검하면서, 혹시 내 머릿속으로 하나님이라 생각하며 붙들고 있는 내가 만든 우상이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잘못된 신앙의 습관이나 거짓된 가짜 믿음, 그리고 사이비 자기 복음 등이 하나님을 제한하는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현대 교회에서 목사가 교주처럼 군림하고, 교리로 하나님을 통제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다름없습니다. 목사만이 아닙니다. 성도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교회인데, 교회를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하려는 것도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교회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 모두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개혁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겸손히 그분의 뜻을 따르되,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틀 안에 가두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115편 4절부터 8절을 읽으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방 나라의 우상은 금과 은으로 된 것이며,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으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목구멍이 있어도 소리를 내지 못한다.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은 모두 우상과 같이 되고 만다.” 우상은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모든 우상을 다 버리고 생명 되신 주님만을 섬기는 모두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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