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장 8절-11절 새번역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9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11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유대인에게 안식일이 가지는 의미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신앙과 정체성을 지켜준 중요한 날입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를 잃고, 전 세계로 흩어졌지만, 안식일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정체성을 유지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하더라도 유대인들은 안식일만큼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예배드리며 경건하게 그날을 지켰습니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임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11절 말씀에 하나님이 “안식일에 복을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다 여기며 구별하여 지켰습니다. 그 방식은 무엇보다 부정한 행동을 철저하게 삼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안식일에 대한 본질적인 정신은 기리지 못한 채, 오직 하지 말라는 문자적인 금지 규정만 남은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엄격한 규정을 만들었는데, 중요한 내용만 간추려도 지켜야 할 것이 39가지나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35장 3절에서는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라”라고 명령합니다.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규정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에도 매우 보수적인 유대인들의 경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거나 집안의 전등을 켜지 않습니다. 대신 자동으로 엘리베이터가 모든 층에 서도록 하거나 자동 장치를 구비하던지 아니면 가정부에게 불을 켜도록 합니다. 자동차 운전도 금지됩니다. 대신 이방인인 운전기사가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심지어 전쟁 중에 안식일에는 휴전을 하거나 전투를 멈춥니다.
안식일은 거룩한 일을 하는 날이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마냥 쉬기만 하는 날일까요?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 안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부분으로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논쟁을 많이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믿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굶주린 사람이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은 것을 추수와 타작으로 간주하고 비난하였으며, 예수님이 병자를 치유하신 것조차 의료 행위로 간주하여 안식일을 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질적인 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얽매는 날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날이며,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병자를 치유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실현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니 안식일일 수록 영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안식일은 거룩한 일을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럼 성경에서 알려주는 안식일의 기원과 목적을 생각해 봅시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주어지며 안식일이 법으로 정해졌지만, 안식일의 개념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출애굽기 16장에서는 하나님이 만나를 6일 동안 내리시고, 7일째는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6일째 되는 날 두 배의 만나를 거두었고, 안식일에는 들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뜻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근본적인 기원은 창세기 2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는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법칙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은 피곤하셔서 쉬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안식과 쉼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왜 6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어야 할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제7일에 쉬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셨으니, 우리도 안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에 그 형상을 따라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7일째에 쉬는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닮으려는 것은 죄가 되지만, 안식을 통해 하나님을 닮는 것은 축복입니다. 안식일은 원래 하루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안식월, 안식년, 희년, 그리고 영원한 안식인 천국으로 이어집니다. 한 인간의 삶과 인생의 패턴을 말해줍니다. 안식일을 통해서 인간은 쉼이 필요한 존재이며,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 리듬에 맞추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안식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으로, 이 법칙을 어기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서 살도록 지어졌는데 육지로 나오면 죽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낮과 밤을 구별하여,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평일에는 일하고 안식일에는 쉬는 것이 하나님 섭리를 따르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대로 사는 것이 바로 '안식하는 삶'인 것입니다.
사람이 안식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강제로 안식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섭리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지 않는다면, 하나님 백성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서 안식일을 지켰는가 하면,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설령 안식일에 본인은 쉬었을지라도, 자신들의 종에게는 일을 시켰습니다. 더 많은 수익을 위해서 타인들을 쥐어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70년 동안 끌려간 것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징계임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역대하 36장 21절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예레미야를 시켜서 "땅이 칠십 년 동안 황폐하게 되어, 그동안 누리지 못한 안식을 다 누리게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 구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이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식년을 지키지 않아 하나님이 강제로 70년을 안식하게 하셨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의미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안식일은 주일로 대체되었습니다. 주일을 안식일로 여기며 유대인처럼 철저히 지켜야 할까요? 이런 경향성을 강하게 보이는 안식일과 구약을 중시하는 안식교도 있지요. 과거 고신과 같은 매우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주일에 공부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식당에 가서 밥을 사 먹거나 물건을 사고팔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반면, 일부 신앙인들은 주일을 단순히 휴일로 생각하며 쉬면서 예배드리는 날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 역시 올바르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주일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안식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의 계명을 생각하면서 이 두 가지 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첫째는 바리새인들처럼 주일을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입니다. 주일에 예배만 드리고, 성경만 읽어야 하며, 여행이나 오락,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되려 주일이 기쁨이 아니라 사람들을 속박하게 됩니다. 다른 쪽 극단은 주일에는 내 마음대로 다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유방임적인 태도는 주일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배뿐만 아니라 그날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되, 바리새인들처럼 얽매이지 않으셨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날이라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거룩한 일을 하는 날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안식일에 거룩한 일을 함으로 우리의 목적과 하는 모든 일이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안식은 하나님 백성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안식은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고, 일곱째 날에는 쉬셨습니다. 이 날은 마치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시작하려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잠시 멈추라고 명령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안식일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단순히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임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수고롭게 일을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칠일째에는 안식이라는 거룩한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유도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창조 행위를 육일 째 끝낸 것이 아닙니다. 칠일 째 안식하심으로 창조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창조적 안식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종 목표는 육일 동안에 말씀으로 모든 만물을 지으신 것만이 아니라, 그 만물들이 안식 가운데 쉼과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짓는 이유도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듯, 일하는 목적도 결국에는 안식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이유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인식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5장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 1년 365일 쉬지 않고 일만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쉼을 위해서 출애굽 한 것입니다. 안식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권과 자유권을 되찾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이후에 바벨론 포로로 생활했던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벨론 포로기 시절 유대인은 자기 정체성을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다른 민족과 달리 안식일을 지킴으로서 비록 이 땅에서는 바벨론의 포로일지 모르나, 그들의 진정한 정체성은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부활의 안식을 누려야 한다
안식이 최종적인 목적이라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누릴 안식은 부활의 안식입니다. 부활의 안식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우리가 누리게 된 영적인 평안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구원의 은혜로부터 누림과 동시에 하나님의 보호와 동행하심, 그리고 최종적인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죄와 칭의의 평안, 하나님과의 동행과 보호의 평안, 그리고 부활과 영생의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의 안식일인 주일은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며, 이 날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이후 주일에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손수 고기와 떡을 구워 먹여주시고, 두려움과 무기력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평안으로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주일에 모였습니다. 이 날을 주님의 날이라 불렀고, 주일에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전통은 초대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중요한 행위였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전통과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누릴 최종적 안식인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부활절 예배만이 아니라 매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갈 때마다 우리가 부활했음을 믿고 누려야 할 것입니다.
안식일을 온전히 지킴으로 세상과 화해하고 회복시키자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세상은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인권이 성장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안식이 부족합니다. 학생들은 공부와 아르바이트에 지쳐 있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직장을 취업을 해도 결국 서로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죽이지 못하 안달이 나있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노동을 개역한다, 일자리를 안정시킨다고 하지만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또 다른 낙오자가 생겨납니다. 결국에는 탑을 쌓아가듯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안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안식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에도 필요합니다. 동물도 휴식이 필요하고 자연도 쉼이 필요합니다. 땅도 무한히 개발하면 힘을 잃습니다. 충분히 쉬어야 합니다. 최근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는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은 땅과 자연이 안식을 허락받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럴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할 방향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했으면 좋겠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날입니다. 이 날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만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경쟁에서 벗어나 나와 주변 사람들, 그리고 환경까지 다투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함께 나누고 공존할 수 있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화의 날로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가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날 만큼은 마음속에 논쟁과 분노, 근심이나 걱정을 내려놓길 바랍니다. 누군가와 다투었다면, 주일이 지나기 전 화해하십시오. 그리고 한 주 살아가면서 마음에 상처나 용서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내려놓고 주님의 위로를 구하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모든 슬픔을 내려놓고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매 주일마다 거룩한 안식에 온전히 참여할 때, 세상은 우리와 화해하게 되며 결국 우리와 함께 회복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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