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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19장 7절-25절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by 알렉스강 2024. 8. 30.

출애굽기 19장 7절-25절 새번역

 

7 모세가 돌아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모으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선포하였다.

8 모든 백성이 다 함께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모세는, 백성이 한 말을 주님께 그대로 말씀드렸다.

9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너에게 나타날 것이니,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이 듣고서, 그들이 영원히 너를 믿게 하려는 것이다." 모세가, 백성이 한 말을 주님께 다시 아뢰었을 때에,

10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그들을 성결하게 하여라. 그들이 옷을 빨아 입고서,

11 셋째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여라. 바로 이 셋째 날에, 나 주가, 온 백성이 보는 가운데서 시내 산에 내려가겠다.

12 그러므로 너는 산 주위로 경계선을 정해 주어 백성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백성에게는 산에 오르지도 말고 가까이 오지도 말라고 경고하여라. 산에 들어서면, 누구든지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한 사람은 아무도 손을 대지 말고, 반드시 돌로 치거나 활을 쏘아서 죽여야 한다. 짐승이든지 사람이든지,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라. 그러나 산양 뿔나팔 소리가 길게 울릴 때에는 백성이 산으로 올라오게 하여라."

14 모세는 산에서 백성에게로 내려갔다. 그는 백성을 성결하게 하고, 백성은 자기들의 옷을 빨아 입었다.

15 그는 백성에게 '셋째 날을 맞을 준비를 하고, 남자들은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16 마침내 셋째 날 아침이 되었다.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나며,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산양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지자, 진에 있는 모든 백성이 두려워서 떨었다.

17 모세는 백성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진으로부터 그들을 데리고 나와서, 산기슭에 세웠다.

18 그 때에 시내 산에는, 주님께서 불 가운데서 그 곳으로 내려오셨으므로 온통 연기가 자욱했는데, 마치 가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연기가 솟아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다.

19 나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을 아뢰니, 하나님이 음성으로 그에게 대답하셨다.

20 주님께서 시내 산 곧 그 산 꼭대기로 내려오셔서, 모세를 그 산 꼭대기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갔다.

2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려가서 백성에게, 나 주를 보려고 경계선을 넘어 들어오다가 많은 사람이 죽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단단히 일러 두어라.

22 나 주에게 가까이 오는 제사장도 자신을 성결하게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 주가 그들도 쳐서 죽일 것이다."

23 모세가 주님께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산에 경계선을 정하여 그것을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경고하시는 명을 내리셨으므로, 이 백성은 시내 산으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2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서 내려가서, 아론을 데리고 올라오너라. 그러나 제사장들과 백성은 나에게 올라오려고 경계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경계선을 넘으면, 나 주가 그들을 쳐서 죽일 것이다."

25 모세가 백성에게 내려가서 그대로 전하였다.

 

 

계약은 쌍방 간의 동의가 있어야 성립한다

계약은 혼자 하거나 일방적일 수 없습니다. 계약은 쌍방 간의 동의가 있어야 성립이 됩니다. 집이나 물건을 구매하거나 팔 때도 계약 당사자들이 서명을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계약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나 혼자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는 상하 질서가 존재합니다. 주종 관계의 계약이긴 하지만,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공정한 계약과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주인이 노예를 사서 부릴 때는 상대의 의사를 묻지 않습니다. 그냥 강압적으로 체결합니다. 만약 오늘날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사기나 강요에 따른 위법 행위로 간주되어 계약이 무효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 일방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셨지만, 우리와 계약을 맺으실 때 반드시 우리의 동의를 구하십니다. 7절과 8절 말씀 입니다. “모세가 돌아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선포하였다. 모든 백성이 다 함께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모세는 백성이 한 말을 주님께 그대로 말씀드렸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재인 역할을 하며, 쌍방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계약이며, 인격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계약일 수록 인격적인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인격적 관계로서 계약의 대표적인 예가 결혼식입니다. 결혼식을 할 때 주례자는 당사자에게 “상대방을 그대의 아내로 맞이합니까?” “그대의 신랑으로 맞이합니까?”라고 묻고, "네"라고 대답합니다. 어떤 분들은 왜 네가 이때 네 라고 대답했을까 후회하기도 합니다. 물론 반대로 정말 잘했다고 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신랑과 신부가 맺는 계약은 영원히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기로 작정하는 일종의 쌍방 노예 계약인 것입니다. 결혼 서약이 중요한 것은 인격과 신분을 연결하는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사거나 누군가 일을 시킬 때 이 정도까지 계약하지는 않습니다. 얼마의 돈을 주고 무언가를 얻거나 일을 시키는 물질적인 관계이지 인격적 관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부관계는 상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상대를 다 얻기로,  인격과 생애를 걸고 맺는 인생이 가장 중요한 계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계약은 이보다 더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서 하나님이 제안하신 조건에 대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라고 동의를 했습니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그냥 일반 백성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가, 순식간에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된 것입니다. 이러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만약 동의하지 않았다면,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곧장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으로 성경은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길게 성경 66권이 쓰일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네"라고 동의했기 때문에,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하시고자 했던, 하나님 구원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요하지 않으신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자발적인 의사를 묻고 동의를 구하셨다는 것입니다. 강요에 의한 계약은 무효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로 살아왔기에, 그들이 스스로 계약을 맺어본 적이 없습니다. 애굽에서 노예가 된 것도 그들의 의지가 아니었고, 계약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출애굽 시키신 후, 시내산에 도착하기까지 두 달 동안 많은 것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지한 그들에게 억지로 계약을 맺게 한 것이 아니라, 이 계약의 의미와 유익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계약 직전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며 이끌어 오셨지만,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목적은 그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아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역할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며,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기 위해 그들을 축복의 안내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역할을 잘 감당하려면 먼저 자신들이 복을 받아야 하며, 그 복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일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중요한 역할을 맡기기 전에 그들의 의사를 물으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믿게 하시고 언약을 맺으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자발적인 응답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9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너에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 임재하시고, 백성들이 들을 수 있도록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하나님 말씀을 듣도록 하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임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형상만 있고 말 못 하는 우상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분임을 드러내기 위해,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말씀으로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대화하시기를 좋아하시며, 자신이 누구신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도리와 구원의 길을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들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모세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백성들이 모세를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이번 일을 통해 앞으로 모세가 하는 모든 말이 진실하고, 하나님이 시킨 말이라는 사실을 백성들이 믿도록 하셨습니다. 이후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곳에 함께 계시며, 모세의 말의 권위를 보장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보려고 애쓰거나 환상을 추구하기보다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과 선포된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붙들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우신 모든 계획을 말씀으로 이루시며, 말씀하신 그대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말씀으로 만물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움직이고, 역사를 새롭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을 거룩하게 생각하고 목숨처럼 여기며 지켜야 한다

이제 본격적인 언약 체결식이 진행됩니다. 10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그들을 성결하게 하여라. 그들이 옷을 빨아 입고서, 셋째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여라. 바로 이 셋째 날에, 나 주가, 온 백성이 보는 가운데서 시내 산에 내려가겠다. 그러므로 너는 산 주위로 경계선을 정해 주어 백성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백성에게는 산에 오르지도 말고 가까이 오지도 말라고 경고하여라. 산에 들어서면, 누구든지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언약은 언약 그 자체로서 신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체결하기 앞서 준비시키십니다. 약속을 거룩하게 생각하고 그 약속을 목숨처럼 여기며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비시킨 것은 세 가지입니다. 

 

약속은 기다려야 한다

먼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흘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날 바로 그들과 만나지 않으시고, 사흘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약속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동안 시내산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사흘은 하나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기간이었습니다. 산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사흘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그들은 이 기간 동안 조바심이 생기고,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자신들에게 어떻게 하실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두려움이 밀려왔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죄인이고, 하나님은 거룩하신데, 그분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의 죄가 드러나 벌을 받고 저주를 받지 않겠는가?' 하며, 사흘 동안 철저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주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 괴로워할 때, 때로는 그 상태로 두십니다. 바쁘게 살던 사람이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합니다. 손발을 놓고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과거를 반성하며, 나약하고 죄 많은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절망과 한탄 속에서 결국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됩니다. 자신의 논리와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첫 번째 자세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자세가 먼저 필요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없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자비하신 하나님이 나를 돕기 위해 나타나시기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사모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먹을 것, 입을 것, 집, 직장, 가족이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죄와 불안에서 구원하지 못합니다. 세상이 희망을 주지 못하며 돈과 권력이 영생을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바로 세우고, 구원과 소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약속은 신분이 바뀌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옷을 빨게 하셨습니다. 왜 옷을 빨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 아닌, 매우 특별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명절이 오면 빨래를 하고 새 옷을 입곤 했습니다. 기쁘고 특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옷을 바꾸어 입는 것은 신분이 바뀌었음을 말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자유민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도 너무 감사한 일인데, 이제 천지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계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세상에 대한 제사장 나라가 되었습니다. 신분이 무려 두 계단 상승한 것입니다. 따라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새 옷처럼 자신의 존재가 새로운 신분으로 격상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옷을 빠는 것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은 마음 자세를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옷을 빨았다는 것은 죄를 회개하는 상징이었습니다. 요엘서에서는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라고 말씀합니다. 속된 생각이나 우울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악하고 추한 생각은 버리고, 우울하고 근심된 마음도 떨쳐내며, 믿음과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러 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옷을 빨아 입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까지도 성결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22절에서는 “나 주에게 가까이 오는 제사장도 자신을 성결하게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 주가 그들도 쳐서 죽일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들도 거룩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하나님께 경배하다가 죽었고,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제사장으로서 거룩하게 행하지 않아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준비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기를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진심으로 바라며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마땅히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버리고 마음을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맺어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경계선을 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삼일째 되는 날, 우레와 번개,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나타나고 나팔 소리가 크게 울리자, 백성들은 크게 떨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과 함께 시내산 기슭에 섰는데,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했고, 하나님은 불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서 백성들이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주의시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벌벌 떨고 있으니 경계를 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려 세 번이나 경계선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체자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 때, 주체자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결코 주체적인 삶이 아닙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무엇인가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반드시 세상에 의지합니다. 그러니 내가 주체자라고 하지만, 정말 자세히 살펴보면 돈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나보다 강한 뭔가에 복속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되,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있는 넘지 못할 선을 넘으려는 만용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죄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파라바시스παράβασις"는 선을 넘는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유도 바로 선악과라는 신과 인간의 경계선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경계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경계가 바로 죽음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경계 때문입니다. 누가 죽음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이기시고 건너가신 분은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생명의 구주 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시내산 언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제안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라고 동의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말씀하신 것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자세입니다. 지금 당장 모든 말씀을 우리가 다 지키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럼 한 가지라도 생각하셔서 하나님 말씀대로 실천해 보십시오. 오늘 하나님과의 약속 하나를 정해 놓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았을 때, 나타나는 삶의 변화를 기록해 보시길 바랍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 반드시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말라기 3장 10절 말씀이지요.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이것은 비단 십일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체결한 자들에게 허락되는 어길 수 없는 불변의 법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