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애굽기

출애굽기 15장 22절-27절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다

by 알렉스강 2024. 8. 15.

출애굽기 15장 22절-27절 새번역

 

22 모세는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인도하여 내어,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사흘 동안 걸어서 광야로 들어갔으나, 물을 찾지 못하였다.

23 마침내 그들이 마라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다.

24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신단 말입니까?" 하고 불평하였다.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그에게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셨다. 그가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그 물이 단물로 변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하여 주시고, 그들을 시험하신 곳이 바로 이 곳이다.

2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샘이 열두 곳이나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었다. 그들은 그 곳 물가에 진을 쳤다.

 

 

승리의 기쁨은 얼마가지 못한다

지난 시간에 모세와 미리암, 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놀라운 사건을 목격했습니다. 모세가 막대기를 들어 홍해에 대자, 홍해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땅처럼 건너갔습니다. 반면에 바로의 군대는 모두 수장되었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경험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모세가 먼저 찬양했고, 이어서 미리암이 이어 부르자 여인들이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화답했습니다. 15장 21절에서 미리암은 단순하지만 분명한 고백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던져 넣으셨다.”

 

특히 모세는 여호와를 용사라고 찬양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오른손으로 바로와 애굽의 군대를 물리치신 것을 찬송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400년 동안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무기나 군사훈련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면초가에 몰려 앞으로는 홍해가 가로막고 좌우로는 돌산이 그리고 뒤에서는 바로의 특별 병거 육백 대와 다른 많은 병거들이 추격해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막은 다음,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안전하게 홍해를 건너가자마자, 순식간에 물을 터트려서 애굽 모든 군사들을 홍해에 수장시키셨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목도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강한 용사로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기쁨은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22절을 보시면 “모세는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인도하여 내어,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사흘 동안 걸어서 광야로 들어갔으나, 물을 찾지 못하였다”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수르는 ‘벽’이라는 뜻인데, 그 광야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인생의 벽을 만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맞닥뜨린 문제는 물 부족이었습니다. 광야에는 수도시설이 없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아마도 애굽을 출발할 때 한두 달 정도의 양식은 준비해 와서 먹을 것은 괜찮았을 텐데, 물이 없자 백성들은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흘 길을 걸어서 마침내 겨우 물을 발견했지만, 너무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물이 왜 썼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쓰다고 하여 그곳을 ‘마라’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소금기나 다른 성분이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무 가지를 물에 넣으라"라고 하시자, 그 쓴 물이 단 물로 변해 백성들이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이유

인생에서 벽을 만난 듯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마치 사막에서 물이 떨어지는 인생에서 돈이 떨어지는 순간과도 같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라고 불평했습니다. 단순히 모세를 향한 불만이 아니라, 사실상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었습니다. 불과 삼일 전, 홍해 사건을 목도하고 여호와의 구원을 찬양했지만, 물이 없자 곧바로 원망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식간에 극에서 극으로 변하는 장면입니다. 물론, 광야에서 삼일 동안 물 없이 지낸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단 하루만 물이 없어도 견디기 힘든데, 그들은 광야에서 삼일을 견뎌야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을까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며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왜 물이 없는 곳으로 이끌었을까요? 25절을 보시면, "그들을 시험하신 곳이 바로 이곳이다"라고 말하며,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는 목적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7절을 보면, 마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엘림이라는 오아시스가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열두 개의 물샘과 칠십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었으며,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을 치고 기거하게 됩니다. 이미 하나님은 살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만 불평하지 않고 말씀을 따라 끝까지 나아갔으면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스스로 허겁지겁 마라에서 구한 물이 쓰다는 이유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물에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간대 없고 오직 육신의 목마름을 해소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치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는 잊어버리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유무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드러나게 됩니다. 편안할 때는 누구나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환난이 닥치면 그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드러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의 말씀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생존이 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물과 양식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참된 삶의 길임을 가르칩니다. 모세, 엘리야, 예수님은 모두 사십 일을 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살아갔습니다. 이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시험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실 물과 양식이 있어야 살아간다"는 세속적인 생각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 참된 생명의 길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치료하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

마라의 쓴 물 사건에서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물을 달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자신을 "치료하는 여호와", 즉 여호와 라파라고 선언하셨습니다. 26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이 사건 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시험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 율법을 통해 그들을 시험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험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명령에 따라 의를 행하며, 규례를 지키는지 확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의 질병으로부터 치료하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마라의 쓴 물과 단 물은 계속 반복됩니다. 인생에 있어서 플러스 마이너스처럼 아래위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참된 기쁨과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자기 백성에게 어려움을 주시고, 그 어려움 속에서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마치 주인이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말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듯, 하나님도 우리를 그분의 뜻에 따라 이끄십니다. 우리 인생은 죄로 물든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을 따라가야 하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훈련을 받아야 하며, 그 훈련의 최종 목표는 바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큰 구원을 준비해 두셨고, 우리가 그 길로 잘 따라가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눈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만큼 밝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론 병을 주시고, 또 치유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마라의 쓴 물과 단물로 우리의 닫힌 눈을 열어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

룻기 등장하는 나오미는 자신의 이름을 ‘마라’로 부르라고 말했습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은 '희락'과 '기쁨'을 의미하지만, 그녀의 삶은 이와 반대로 마라처럼 쓰고 아픈 상처와 고난으로 가득했습니다.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었을 때, 나오미의 가족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 모압으로 떠났지만, 그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이 모두 죽고 맙니다. 나오미에게는 며느리 룻만 남게 되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기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죽음의 그림자만 뒤덮은 것입니다. 이후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그녀를 보고 사람들이 "나오미가 아니냐?"라고 물었을 때,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괴롭게 하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선 나오미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마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 여인 룻을 통해 나오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친족인 보아스와 결혼하게 되었고, 그들은 아들 오벳을 낳습니다. 이 아들을 나오미가 품에 안게 되면서, ‘마라’였던 나오미가 다시 '나오미'로 회복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참된 살 길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스스로 살길을 찾으려 했지만, 그들이 찾은 물은 쓴 물이었습니다. 오직 모세의 중보 기도를 통해서만 그 물이 단물이 되어 마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종종 스스로 살길을 찾으려 하지만, 우리가 찾은 것들은 쓴 물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지만, 자녀가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재물이나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단 물을 줄 것 같으나, 결국에는 쓴 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할 것이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모스 8장 11절 말씀입니다. “그날이 온다.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사람들이 배고파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다. 사람들이 목말라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할 것이다.” 우리 인생의 기갈은 양식이나 물이 없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과 26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것을 행하나 안 행하나 시험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만 들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주신 줄 모르고 경거망동하여 자기 본능대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있음에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입니다. 당장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만 하지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애굽의 종노릇 하는 인생이라면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출애굽 한 하나님 백성들은 애굽의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스스로 살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리고 물이 새는 웅덩이 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을 스스로 구하려고 했던 모습을 계속해서 반복하던 남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강하게 경고합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입니다.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샘으로 삼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물이 새버리는 웅덩이를 팠다는 것입니다. 마라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서 물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물은 마실 수 없는 쓴 물이었습니다. 마시면 오히려 죽음에 이르게 되는 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당장 먹고사는 문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험을 하십니다. "너희가 과연 나의 말을 믿고 사는가?"를 물으십니다. 어떤 방법으로 시험하실까요? 계속 반복하지만, 마라의 쓴 물입니다. 나 스스로 살 길을 마련하고 안정감을 누리게 하는 썩어빠진 웅덩이의 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지 물으시는 것입니다. 마라의 시험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쓴 물을 마셨듯이, 우리도 지금 스스로 쓴 물을 마시고 있을지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쓴 물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부지런히 자신만의 웅덩이를 만들고 거기에 나오는 쓴 물을 마시고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음을 빨리 버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생에 있어 마라의 쓴 물로 시험하실 때, 불평하지 않고 말씀대로 끝까지 지켜나가 예비해 놓으신 엘림의 열 두 샘물을 종려나무 아래에서 마음 것 마시는 복된 자들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