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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15장 14절-18절 그들을 데려다가 주님의 산에 심으실 것입니다

by 알렉스강 2024. 8. 14.

출애굽기 15장 14절-18절 새번역

 

14 이 이야기를 듣고, 여러 민족이 두려워서 떱니다. 블레셋 주민이 겁에 질려 있습니다.
15 에돔의 지도자들이 놀라고, 모압의 권력자들도 무서워서 떨며, 가나안의 모든 주민도 낙담합니다.
16 그들이 모두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주님, 주님의 권능의 팔 때문에, 주님의 백성이 다 지나갈 때까지, 주님께서 속량하신 이 백성이 다 지나갈 때까지, 그들은 돌처럼 잠잠하였습니다.
17 주님께서 그들을 데려다가 주님의 소유인 주님의 산에 심으실 것입니다. 주님, 이 곳이 바로 주님께서 계시려고 만드신 곳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손수 세우신 성소입니다.
18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입니다."
 


좋은 지도자를 통해서 강한 나라를 세우기를 기대한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바다의 노래라 불리는 모세의 노래 후반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4절에서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승리가 주변 민족들에게 끼친 영향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17절에서 18절까지는 앞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이루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노래합니다. 이 내용을 종합해 보면, 결국 이스라엘이 한 민족으로 큰 나라를 이루어서 온 세계 나라 가운데 영향력을 끼치기를 소망하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한 개인도 잘되어야 하겠지만, 자기 민족과 나라가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 이후 광야의 시간을 거처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후, 주변 나라들과 충분히 견줄 수 있는 강한 나라를 세우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가나안을 완전 정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민족의 침입으로 고통받았습니다. 그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왕이 없었기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 염원은 받아 들어졌고, 사울이란 왕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이 아니었고, 처음과 달리 자기 욕심과 생각으로 이스라엘을 이끌다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죽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새롭게 새웠던 왕이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 때에 이르러 가장 강성한 나라를 이루었고, 이후 이스라엘이 어려울 때마다 다윗 왕과 같은 이가 메시아로 나타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주리라는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지도자를 기대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정치지도자 복이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합니다. 기업, 교육,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선진국과 이상의 수준 높은 역량을 보이는데, 유독 정치만 후진국을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지도자가 나타나서 나라를 잘 이끌면 우리도 더 좋은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인데 아쉽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다윗과 같은 이가 나오면 좋겠다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보다 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노래의 주인공인 모세입니다.

 
성경은 특정 인물의 영웅적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모세는 초인적인 사람입니다. 출애굽 과정 속에서 일으킨 기적만 하더라도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지만, 모세가 그 통로가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비단 기적만이 아닙니다. 십계명을 받았고, 율법을 반포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백만에 육박하는 엄청난 사람들의 생활을 책임졌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과연 모세 한 사람이 감당하였는가에 대해서 의심할 정도입니다. 모세 한 명만 있으면 나라 하나 새롭게 새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나라가 큰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비단 나라만 그렇겠습니까? 내가 속한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리더 하나 나와서 잘 이끌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겠지요. 설교도 잘하고 인격적인 좋은 목사님이 오셔서 교회를 새롭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가지실 것입니다.

 

물론 그런 지도자, 그런 목사님이 있으면 좋겠지요. 그리고 성경에서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그 뜻을 이루는 믿음의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은 특정 인물의 영웅적인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지,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어떻게 성취하시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집니다. 오늘 본문인 출애굽기 15장의 모세의 노래를 보십시오. 지난 시간 살펴보았지만, 모세의 찬양의 내용은 모두 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 그리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내용이 이 노래의 핵심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 보시고 벌을 내리시면 좋겠소

출애굽 사건을 생각해보십시오. 출애굽이 왜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궐기해서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놓고 민족해방운동을 한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자 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가 자기 혈기로 한 일이지만 자신의 동포를 생각해서 돕고자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이후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라고 했을 때, 바로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큰 노역을 부과했습니다. 벽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짚을 주지 않고, 스스로 구해서 만들라고 한 것입니다. 부과된 할당량을 채울 수 없었기에, 고통은 더해갔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가 아니라 모세에게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출애굽기 5장 21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보시고 벌을 내리시면 좋겠소. 당신들 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있소. 당신들은 그들의 손에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 셈이오." 이처럼 모세는 처음부터 환영받는 지도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고통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를 판단해 달라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애굽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자신의 몸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육신의 욕구만을 쫓는 종의 버릇을 고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광야에서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불만 불평하는 것이 일상이고 습관이 되었습니다. 

 
출애굽은 하나님이 맺은 언약으로 일어난 일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될 것을 모르셨을까요? 다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악한 종의 버릇 하나 고치지 못하고 불만 불평 원망만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셨을까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애굽에 그냥 두지 않으시고, 왜 열 가지 재앙을 내리면서 까지, 해와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홍해를 갈라서 건너게 하면서까지 이들을 이끌어 내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단 하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햇불 언약이라 불리는 창세기 15장 13절과 14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똑똑히 알고 있거라. 너의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종이 되어서,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의 자손을 종살이하게 한 그 나라를 내가 반드시 벌할 것이며, 그다음에 너의 자손이 재물을 많이 가지고 나올 것이다.”

 

출애굽은 다른 이유 할 것 없이 결국 정해 놓으신 때가 찼기 때문에 출애굽을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맺은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용사가 되어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방해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셔서 제거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권세를 가졌다던 애굽의 바로도 방해가 될 수 없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퍼부어서라도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셨습니다. 홍해가 가로 막으면 바다를 갈라 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용사가 되셔서 자기 약속을 이루어 나가시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를 용사라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모세 자신이 용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엄밀히 말하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백성의 왕이 되셔서 친히 이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 

그래서 모세는 고백하기를 출애굽기 15장 3절에서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 이름이라고 분명히 선언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역할은 오직 증인의 역할이었습니다. 홍해가 가로 막고 있고, 바로의 군대가 뒤에서 쫓아올 때, 모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모세가 이런 말이 그냥 쉽게 자연스럽게 나왔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준비시킨 것입니다. 

 

모세 본인 스스로가 왕이 되거나 용사가 되어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까지 하나님은 모세를 훈련시키고 준비시킨 것입니다. 그 시간이 무려 8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나일 강에 빠져 죽어야 할 인생을 건져주시고, 바로의 딸의 양자로 삼으셔서 제국의 학문을 모두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건 준비일 뿐입니다. 진짜 훈련은 모세가 40세 때 시작되었습니다. 자기 혈기로 애굽의 관원을 쳐 죽이고,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말렸으나 배척당했습니다. 그 후,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양치기로 보내고, 80세에 하나님께 부름 받았습니다. 40세의 모세가 아닌 80세의 모세를 사용하신 이유는, 모세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증거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처럼 건너가고, 추격하던 애굽 군대는 바닷물에 수장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을 누가 이루어냈습니까? 모세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이라도 있었습니까? 원망하면서 살려달라고 어리석게 비명만 질렀습니다. 이 일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고자 행한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도자가 없어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약속만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십니다. 사람이 인도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구원이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고 주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이걸 미디안 광야 40년의 훈련 가운데 모세가 먼저 깨달았고, 이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사건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증언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민족이 모두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봅시다. 이스라엘이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진 기적을 통해 구원받고 애굽이 몰살했다는 소식이 주변 나라들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14절부터 16절까지 말씀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여러 민족이 두려워서 떱니다. 블레셋 주민이 겁에 질려 있습니다. 에돔의 지도자들이 놀라고, 모압의 권력자들도 무서워서 떨며, 가나안의 모든 주민도 낙담합니다. 그들이 모두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주님, 주님의 권능의 팔 때문에, 주님의 백성이 다 지나갈 때까지, 주님께서 속량 하신 이 백성이 다 지나갈 때까지, 그들은 돌처럼 잠잠하였습니다.” 이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두렵다입니다. 처음에는 200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배가 있거나 다리를 만든 것도 아닌 상황에서 물이 갈라졌다는 것이니,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이들이 바로의 군대가 추격했음에도 하나도 죽지 않고 홍해를 건넜다는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놀란 것은 이스라엘 백성 존재가 두려움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뒤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경험했고,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온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걸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영광받으심이라는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일을 바라보고 그 체험의 증인으로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 생각한다면 정말 큰 오해입니다. 생각은 마치 구원을 받았으니 가나안 땅까지는 우리 힘으로 가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나서 가장 심각한 질병은 내 의를 주장하는 자존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자존심을 세우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자랑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만 보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구원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홍해 사건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광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어려움이 있고 힘든 일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불만 불평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온 것도 내 공로가 아니고, 나의 나된 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앞으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17절과 18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데려다가 주님의 소유인 주님의 산에 심으실 것입니다. 주님, 이곳이 바로 주님께서 계시려고 만드신 곳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손수 세우신 성소입니다.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처소, 바로 주님의 소유인 주님의 산에 완전히 심으실 때까지입니다. 바로 광야의 시간을 지나 영원한 가나안 땅에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만 보시는 것입니다. 아무 염려하지 않고 마땅히 구할 바를 구하면 됩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주시는 은혜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인생으로 빚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모세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가 방해가 되면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가나안 입성 전에 모세는 모압 평지에 머물고, 이스라엘 백성만 가나안으로 입성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2장 22절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 돈, 권력 이런 것들 의지하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용사가 되셔서 싸우시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를 분명히 경험하여 우리를 구속하시고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모세의 노래처럼 함께 고백하는 모두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