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2장 1절-17절 새번역
1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과 집안간으로서,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이다.
2 어느 날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밭에 나가 볼까 합니다. 혹시 나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다니면서 떨어진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대답하였다. "그래, 나가 보아라."
3 그리하여 룻은 밭으로 나가서,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웠다. 그가 간 곳은 우연히도, 엘리멜렉과 집안간인 보아스의 밭이었다.
4 그 때에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 성읍에서 왔다. 그는 "주님께서 자네들과 함께 하시기를 비네" 하면서, 곡식을 거두고 있는 일꾼들을 격려하였다. 그들도 보아스에게 "주님께서 주인 어른께 복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하고 인사하였다.
5 보아스가 일꾼들을 감독하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저 젊은 여인은 뉘 집 아낙인가?"
6 일꾼들을 감독하는 젊은이가 대답하였다. "저 젊은 여인은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사람입니다.
7 일꾼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곡식단 사이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더니, 아침부터 와서 지금까지 저렇게 서 있습니다. 아까 여기 밭집에서 잠깐 쉬었을 뿐입니다."
8 보아스가 룻에게 말하였다. "여보시오, 새댁,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이삭을 주우려고 다른 밭으로 가지 마시오. 여기를 떠나지 말고, 우리 밭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바싹 따라다니도록 하시오.
9 우리 일꾼들이 곡식을 거두는 밭에서 눈길을 돌리지 말고, 여자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줍도록 하시오. 젊은 남자 일꾼들에게는 댁을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겠소. 목이 마르거든 주저하지 말고 물단지에 가서, 젊은 남자 일꾼들이 길어다가 둔 물을 마시도록 하시오."
10 그러자 룻은 엎드려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하면서, 보아스에게 말하였다. "저는 한낱 이방 여자일 뿐인데, 어찌하여 저같은 것을 이렇게까지 잘 보살피시고 생각하여 주십니까?"
11 보아스가 룻에게 대답하였다. "남편을 잃은 뒤에 댁이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들어서 다 알고 있소. 댁은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고, 태어난 땅을 떠나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알지 못하던 다른 백성에게로 오지 않았소?
12 댁이 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
13 룻이 대답하였다. "어른께서 이토록 잘 보살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른께서 거느리고 계신 여종들 축에도 끼지 못할 이 종을 이처럼 위로하여 주시니, 보잘것없는 이 몸이 큰 용기를 얻습니다."
14 먹을 때가 되어서, 보아스가 그에게 말하였다. "이리로 오시오. 음식을 듭시다. 빵 조각을 초에 찍어서 드시오." 룻이 일꾼들 옆에 앉으니, 보아스는 그 여인에게 볶은 곡식을 내주었다. 볶은 곡식은 룻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가려고 일어서자, 보아스가 젊은 남자 일꾼들에게 일렀다. "저 여인이 이삭을 주울 때에는 곡식단 사이에서도 줍도록 하게. 자네들은 저 여인을 괴롭히지 말게.
16 그를 나무라지 말고, 오히려 단에서 조금씩 이삭을 뽑아 흘려서, 그 여인이 줍도록 해주게."
17 룻은 저녁때까지 밭에서 이삭을 주웠다. 주운 이삭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선택의 관계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소문처럼 그리 썩 좋지 않았습니다. 냉혹한 현실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겨우 먹고사는 정도였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의지할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의 힘이 있을 때는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힘이 없고, 돈이 없고, 답이 없으며, 병에 걸려 속수무책일 때 비로소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생존의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는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은 마냥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삶에서 선택을 해야 하고,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선택은 매우 중요합니다. 작은 선택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중요한 선택은 인생을 결정합니다. 무슨 일을 할지, 누구와 결혼할지, 어디에서 살지 등의 결정에 따라 삶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선택을 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인간의 의지와 선택, 그에 대한 노력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때로는 거친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정신없이 살다가 자기 의지나 노력에 매몰되다 보면, 가장 중요한 은혜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는 치명적인 영적 타락이자 실패입니다.
만약 모든 것이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 어떤 영원한 가치나 의미도 발견할 수 없는 동물과 같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뿐만 아니라 천하만물 온 우주에는 영원한 가치와 의미가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누구나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대충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러한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앞만 바라보고 달려서 성공한 뒤, 자신을 돌아보게 될 때 이 의미를 찾지 못하면 큰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죽음 앞에 놓이게 되면, 정말 허무함만 남게 됩니다. 이러려고 내가 이렇게 살았는가 하며 자책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의 선택과 노력이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은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짐승과 같은 인생을 살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인 섭리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는 것이 바로 섭리를 믿는 우리 신앙입니다. 이 섭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들어갈 공간이 없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것이 작동할 여지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하기도 합니다. 재수가 좋았다거나 운이 좋았다고 합니다. 이는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연과 필연이 있습니다. 우연과 필연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그러나 우연이 하나님의 섭리를 만나면 필연이 되는 것입니다. 룻이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우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에 룻은 필연적으로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은혜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룻도 분명히 선택을 했습니다. 어찌 보면 암담한 현실을 선택한 것입니다. 남편도 없이 시어머니를 따라간 것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룻은 세상의 현실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룻의 선택은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를 만나게 한 것입니다. 반대로 잘못된 선택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는데 방해가 되고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었지만 약속의 아들을 얻기 위해서 애굽 여인 하갈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마엘이 태어났지만, 그로 인해 가정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떠나야 했으며, 약속의 아들 이삭도 고통받았습니다. 잘못된 선택은 하나님의 섭리를 막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그 선택에 대한 분명한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성실과 겸손이라는 은혜를 담는 그릇
오늘 본문을 보면 룻은 나오미를 따라간 선택도 좋았지만, 그 이후의 선택도 매우 훌륭했습니다. 나오미의 고향 베들레헴에 도착한 후, 룻이 먼저 한 일은 이삭을 줍는 일이었습니다. 시어머니 고향 집에 돌아왔지만 먹을 것이 없었기에, 룻은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와 생계를 이어가고자 했습니다. 자기 부모도 공양하기 어려워 내다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룻은 시어머니를 극진히 효심으로 모십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도 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당시 이삭을 줍는 것은 당시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율법에서도 적극적으로 장려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추수할 때 가난한 사람이나 짐승이 이삭을 주워 먹도록 배려하셨습니다. 마치 과일을 딸 때 일부러 까치밥을 남겨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방 여인이 타향에서 이삭을 줍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삭을 주우려면, 텃세도 심하고 환영받을 가능성도 적습니다. 멸시당하거나 성희롱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주인의 허락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룻은 담대하게 선택하고 용기 있게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룻이 처음으로 이삭을 주우러 간 곳이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단 한 차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간 것입니다. 룻이 하나님을 향해 최선의 선택을 하자, 하나님의 섭리가 더욱 분명하고 강하게 작동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은혜를 담을 그릇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축복해주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룻은 단순히 예뻐서 관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축복하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을 보시면 보아스는 룻을 새 댁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의역한 것으로 개역개정에서는 원어에 가깝게 내 딸로 번역했습니다. 보아스와 룻이 나이 차이가 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상대를 사랑스럽게 부르는 표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성품과 행실에 성실과 겸손을 갖추어야 합니다. 만약 룻이 게을렀다면 결코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을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은혜는 이삭처럼 떨어져 있습니다. 그럼 주워담아야 합니다. 가만히 쳐다본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라고 했습니다. 또한, 젊은 남자들로부터 보호하고,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도록 배려했습니다. 룻은 자신이 이방 여인으로서 은혜 받을 자격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보아스의 배려에 룻은 겸손히 엎드려 감사해했습니다. 이처럼 룻은 성실과 겸손이라는 은혜의 그릇을 준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것끼리 당기는 영적인 원리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룻이 하나님을 향해 결단하는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보아스를 만난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겸손한 믿음의 말입니다. 보아스는 그의 삶이 항상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습관으로 자리 잡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같은 사람들끼리 만납니다. 그런데 반드시 교회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우선시하는 사람끼리 만나지는 않습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함께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다른 극끼리 잡아 당기는 자석과는 달리 같은 것끼리 당기는 것이 영적 세계의 원리입니다. 플러스는 플러스를 마이너스는 마이너스를 만납니다.
은혜의 도구로 사용된 보아스
보아스는 하나님이 룻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섭리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합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척으로, 룻의 인생에 은혜가 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보아스를 '유력한 자'라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재력이 있는 부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사와 같이 전쟁의 선두에 서서 민족을 구하는 용사를 뜻하기도 합니다. 보아스는 부와 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패역한 사사 시대에 보기 드문 영적이고 도덕적이며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것을 칭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어떻게 대하는지 자세히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보아스는 룻의 믿음을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독수리 날개로 업혀 광야에서 훈련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와 하나님 백성이 된 것에 비교합니다. 룻이 세상적인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있는 기대 하나로 왔으며, 그 믿음의 결단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기를 바란다고 한 것입니다. 이미 보아스의 눈에는 룻이 이방 여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국 룻의 선택에 따른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단지 덕담만 전한 것이 아닙니다. 룻의 믿음의 선택에 대한 은혜의 통로로 자신이 사용되길 마음속으로 믿음으로 다짐했을 것입니다.
은혜가 역사하려면 통로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 믿음은 단순히 '믿습니다'라는 생각이나 관념이 아닙니다. 보아스의 믿음은 삶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적극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룻에게 세 가지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첫째,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라고 했습니다. 둘째, 희롱을 당할 수 있으니 동네 소년들로부터 보호해 주라고 했습니다. 셋째,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도록 했습니다. 이게 바로 은혜의 통로가 되는 믿음입니다. 믿음을 절대 신념이나 자기 생각 정도로 격하시키지 마십시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는 성육신적인 에너지 활동입니다. 그래서 믿음도 역시 성령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섭리의 작동 방식인 환대와 은밀함
보아스의 호의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환대를 통해서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보아스는 룻을 불러 음식을 나누며, 빵 조각을 초에 찍어 먹게 했습니다. 초는 무더위에 탈수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고된 노동을 이해하고 배려한 것입니다. 또한, 보아스는 룻에게 볶은 곡식을 충분히 주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환대가 필요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마므레 상수리나무들 사이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보고, 달려가 영접하며 땅에 엎드려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극진하게 대접한 이들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을 환대한 것입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과 사라는 일 년 내에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고, 그 약속은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사라가 90세 되던 해에 자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하나님의 섭리가 은밀하게 작동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룻이 이삭을 주울 때, 일꾼들에게 이삭이 많이 떨어진 곡식단 사이에서 주울 수 있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단에서 이삭을 뽑아 흘려, 룻이 많은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룻이 주운 이삭의 양은 보리 한 에바였다고 합니다. 한 에바는 십분의 일 호멜로 대략 22리터에 해당하는데, 이는 하루 동안 한 여인이 주울 수 있는 이삭의 양을 훨씬 초과하는 양입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루에 주울 수 있었던 만나의 양은 한 오멜이었습니다. 한 오멜은 에바의 십분의 일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룻은 10배 가까운 양의 이삭을 주운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룻은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낯선 타향에서 처음으로 해본 이삭 줍기라 다들 이렇게 하는가 보다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집에 돌아갔을 때, 나오미는 이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룻이 보아스로부터 은혜를 받았음을 직감하게 된 것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아스는 실천한 것입니다.
섭리에 따라 은혜와 선택이 만나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선택이 만나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영적으로 어둡던 사사기 시대에 이런 아름다운 일이 있었는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론 룻이 되기도 하고 보아스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상황이나 위치에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반드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참된 행복과 영원한 가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인정하고 의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길 기쁨으로 구하는 모두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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