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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사사기 7장 1절-14절 보리빵 한 덩어리가 기드온의 칼이다

by 알렉스강 2024. 6. 13.

사사기 7장 1절-14절 새번역

 

1 여룹바알이라고도 하는 기드온과 그가 거느리는 모든 군대가 일찍 일어나, 하롯이라는 샘 곁에 진을 쳤는데, 미디안의 진은 거기에서 북쪽 골짜기에 있는 모레 언덕에 있었다.

2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내가 미디안 사람들을 네가 거느린 군대의 손에 넘겨 주지 않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제쳐놓고서, 제가 힘이 세어서 이긴 줄 알고 스스로 자랑할까 염려된다.

3 그러니 너는 이제라도 그들에게 말하여, 두려워서 떨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길르앗 산을 떠나서 돌아가게 하여라." 기드온이 두려워서 떠는 자를 돌아가게 하니, 그들 가운데서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다.

4 주님께서 또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군인이 아직도 많다.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거라. 내가 너를 도와 거기에서 그들을 시험하여 보겠다. 내가 너에게 '이 사람이 너와 함께 나갈 사람'이라 일러주면, 너는 그 사람을 데리고 가거라. 내가 또 너에게 '이 사람은 너와 함께 나가지 못할 사람'이라 일러주면, 너는 그 사람은 데리고 가지 말아라."

5 기드온이 군대를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니,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개가 핥는 것처럼 혀로 물을 핥는 사람과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을 모두 구별하여 세워라."

6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사람의 수가 삼백 명이었고, 그 밖의 백성들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7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겠다. 미디안 사람들을 너의 손에 넘겨주겠다. 나머지 군인은 모두 온 곳으로 돌려보내라."

8 그래서 기드온은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만 남겨 두고 나머지 이스라엘 군대는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남은 삼백 명은 돌아가는 군인들에게서 식량과 나팔을 넘겨받았다. 미디안의 진은 그 아래 골짜기에 있었다.

9 그 날 밤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일어나서 적진으로 쳐내려가거라. 내가 그들을 너의 손에 넘겨 주겠다.

10 네가 쳐내려가기가 두려우면, 너의 부하 부라와 함께 먼저 적진으로 내려가 보아라.

11 그리고 적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면, 네가 적진으로 쳐내려갈 용기를 얻을 것이다." 그는 자기의 부하 부라와 함께 적진의 끝으로 내려갔다.

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사막 부족들이 메뚜기 떼처럼 그 골짜기에 수없이 널려 있었으며, 그들의 낙타도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르렀을 때에, 마침 한 병사가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고 있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보리빵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 장막에 이르러서 그 장막을 쳐서 뒤엎으니, 그만 막이 쓰러지고 말았다네" 하고 말하니까,

14 꿈 이야기를 들은 그 친구가 말하였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인 기드온의 칼이 틀림없네.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을 그의 손에 넘기신다는 것일세."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기 위해 나팔을 불어 군사를 모았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모인 병사의 수는 3만 2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맞서 싸워야 할 미디안의 군사는 적어도 13만 5천 명에 이릅니다. 거의 네 배가 넘는 수입니다. 모여든 군사를 보고 기드온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사기와 단결과 같은 정신력으로 무장하면 싸울 만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받았기에 용기를 내어 싸움에 나섰습니다.

 

기드온의 모든 군대는 일찍 일어나 하롯이라는 샘 곁에 진을 쳤습니다. 막상 전쟁에 나서니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습니다. 하롯이란 지명은 떨림, 두려움, 공포를 의미합니다. 기드온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인지, 기드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전쟁에 임합니다. 기드온은 원래 신중하고 꾀가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군대가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것은 군기가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쟁터에서 물을 먼저 확보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전쟁에서 물자 보급은 매우 중요하므로, 물을 확보함으로써 장기전까지 염두에 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실 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새로운 능력을 주실뿐 아니라, 그 사람이 이미 가진 타고난 기질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타고난 기질만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려 한다면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 전쟁은 이길 수 있어도, 하나님의 시키시는 영적 전쟁은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쟁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드온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문제 삼으십니다.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2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내가 미디안 사람들을 네가 거느린 군대의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제쳐놓고서, 자신들의 힘으로 이겼다고 자랑할까 염려된다." 이미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병력이었는데, 하나님은 숫자가 많다고 하십니다. 1대 4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 수가 많다고 지적하며, 두려워 떠는 자는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2만 2천 명이 떠나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에는 사람이 많은 것이 더 문제입니다. 애매한 사람들이 오히려 방해를 합니다. 두려워하는 자가 발목을 잡아해야 할 일을 신속하게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무엘상 14장 6절에서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함께 블레셋과의 전투에 나가서 말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구원을 위한 전쟁은 칼이나 숫자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칼과 창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에서는 내가 약할수록 강해진다

나 자신을 위한 전쟁이라면 내가 강해야 이기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전쟁이라면 내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약해져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야기할 때, 이것을 구원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무력하고 연약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전쟁은 내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가 강해지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내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인데, 그 능력이 마치 자기 것이라 착각합니다. 이것이 기복신앙이자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섬기는 데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신 것입니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갈 때 다르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가 힘이 세어서 이긴 줄 알고 자랑할까 염려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9절과 10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먼저 우리 입으로 고백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이자 군사로 준비된 것입니다.

 

두려워서 떨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돌아가게 하여라

그래서 하나님은 숫자를 줄이십니다. 3만 2천 명이 많다고 하시면서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달려있음을 알도록 기드온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을 더 빼버려 약하게 만드십니다.  3절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너는 이제라도 그들에게 말하여, 두려워서 떨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길르앗 산을 떠나서 돌아가게 하여라." 기드온이 두려워서 떠는 자를 돌아가게 하니, 그들 가운데서 2만 2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

 

여기서 길르앗 산은 요단강 동편 므낫세 땅입니다. 당시 길르앗 사람들이 용맹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길르앗 산을 떠나라는 말은 추측건대 사람 힘 빠지게 하지 말고 겁쟁이는 떠나라는 당시 속담과 같은 말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신명기 20장 8절에서도 "전쟁이 두려워서 겁이 나면, 누구든지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런 사람이 있으면 다른 형제의 사기만 떨어진다."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율법에서도 겁쟁이들은 전쟁터에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의 전쟁만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에서도 두려움이 가장 큰 적입니다. 믿음의 가장 큰 적이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을 버리고 배신하게 만듭니다. 두려움은 한순간에 허물어지게 만듭니다.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싸우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싸울 마음이 있었던 사람이 4분의 1 정도 되었던 것입니다.

 

군인이 아직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이 정도로도 부족했습니다. 싸우려는 마음이 강하다면, 나중에 반대로 승리한 후 자신의 의를 내세우기 좋습니다. 그래서 4절에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한번 더 말씀하십니다. "군인이 아직도 많다.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거라. 내가 너를 도와 거기에서 그들을 시험하여 보겠다. 내가 너에게 이 사람이 너와 함께 나갈 사람이라 일러주면, 너는 그 사람을 데리고 가거라. 내가 또 너에게 이 사람은 너와 함께 나가지 못할 사람이라 일러주면, 너는 그 사람은 데리고 가지 말아라." 하나님은 만명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사람을 선발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과 남은 군사를 물가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물을 먹는 것을 관찰하게 하셨습니다. 무릎을 꿇고 허겁지겁 마시는 사람이 구천 명 넘었고, 무릎을 꿇지 않고 서서 손으로 받아서 마시는 사람이 삼백 명이 되었습니다. 전자와 달리 후자가 용의주도하고 신중하다는 것일까요? 그러나 당장 모든 이들이 사주경계를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신중한 것으로 뽑았다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하나님이 무릎 꿇는 것을 문제 삼았다고 봅니다. 하나님에게만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평상시에 무릎을 잘 꿇는다는 것은 쉽게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서 우상에게도 무릎을 꿇는 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맥락을 보면, 결국 기드온과 이스라엘의 힘을 빼시고자 숫자를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만 명도 많다는 것입니다. 결국 삼백 명만 남게 됩니다. 이제 불러온 군사의 100분의 1만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적군과 비교할 때 4대 1 정도 되었는데, 이제는 대략 450대 1이 된 것입니다. 4대 1도 쉽지 않은 싸움인데, 이제는 아예 불가능한 싸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떠난 자들은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을 포기했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남은 자들도 이제는 죽는 것만 남았구나 하며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신중하고 소심한 기드온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자포자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포자기가 아니라, 내가 가진 인간적인 모든 힘을 다 내려놓은 것입니다. 단 한 가지 힘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것만 하는 힘입니다.

 

내가 그들을 너의 손에 넘겨주겠다

9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날 밤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일어나서 적진으로 쳐내려 가거라. 내가 그들을 너의 손에 넘겨주겠다.'" 이미 하나님은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승리를 약속하시기 전에 기드온이 인간적인 모든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신뢰했을 때, 하나님이 승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기드온처럼 내가 가진 것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 참된 용기를 가지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개인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기를 원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내리십니다. 바로 세상을 이길 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강함이 나타나기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숫자를 보지 말고, 숫자의 기세에 눌리지 말고 담대히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이면 족합니다. 그 한 분이신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기드온도 자기 의를 주장할 수 없을 만큼 약해졌고, 하나님도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내려가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가지 더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기드온에게 여전히 작은 두려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기드온에게 부하 장수 부라와 함께 미디안의 진영으로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내려가서 적군의 이야기를 듣고 싸울지 말지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보리빵 한 덩어리가 기드온의 칼이 틀림없다

하나님 말씀대로 기드온이 내려가 보니, 미디안 연합군은 메뚜기 떼처럼 바글바글했고, 그 수는 바닷가의 모래 같았습니다. 기드온 안에 남아있던 작은 두려움이 다시 커지면서 자신을 점점 조여 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을 안고 기드온은 조심스럽게 적군 진영 근처로 갔습니다. 마침 그때, 한 병사가 자기가 지난밤 꾸었던 꿈 이야기를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사기 7장 13절과 14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보리빵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 장막에 이르러서 그 장막을 쳐서 뒤엎으니, 그만 막이 쓰러지고 말았다네 하고 말하니까, 꿈 이야기를 들은 그 친구가 말하였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인 기드온의 칼이 틀림없네.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을 그의 손에 넘기신다는 것일세.”

 

보리떡 하나가 장막을 치니 장막이 쓰러졌다는 꿈 이야기였습니다. 듣고 있던 병사는 이를 기드온의 칼로 해석했습니다. 사실 보리떡 같이 보잘것없는 것이 어떻게 용맹한 장수의 칼로 보일 수 있겠습니까? 이게 말이 안 되지요. 기드온이 적군 진영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병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 남은 기드온의 두려움조차 제하시고자 모든 것을 세심하게 준비하신 것입니다.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서, 여러 가지 기적을 경험하고, 그리고 기드온이 말씀에 순종하면서 나아온 과정을 보면 참으로 놀랍고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기드온이 그래도 뭔가 믿음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준비하셔서 이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이 우리의 의지적 결단이 있는 부분이라, 많은 경우 내가 믿는 것을 선택해서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내가 결심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의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세상에 주는 두려움을 완전히 이길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믿었다는 생각조차도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약하게 하시고 낮추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교만이 완전히 깨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빈틈없이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 정도까지 경험해야지 우리의 의를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리떡 같은 인생을 들어서 하늘의 생명 떡으로 바꾸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진실로 고백하게 됩니다.

 

기드온을 보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숫자와 상황에 눌려 두려워합니다. 이것을 떨쳐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아시고 하나하나 차근차근하게 이끌어 가시며 예비하신 모든 것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보리떡 같은 비루한 인생이라도, 천하에 비길 바 없는 명검이 되어 세상에 그 어떤 자도 쓰러뜨리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가진 믿음조차도 하나님이 주신다는 사실을 내 인생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온전히 깨닫게 되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