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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18장 1절-12절 주님이 그 어떤 신보다도 위대하시다는 것을 이제 똑똑히 알겠네

by 알렉스강 2024. 8. 21.

출애굽기 18장 1절-12절 새번역

 

1 미디안의 제사장이며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는, 하나님이 모세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주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셨는가 하는 것을 들었다.

2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친정에 돌아와 있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3 십보라의 두 아들을 데리고 나섰다. 한 아들의 이름은 게르솜인데, 이 이름은 "내가 타국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 하면서 모세가 지은 것이고,

4 또 한 아들의 이름은 엘리에셀인데, 이 이름은 그가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셔서, 바로의 칼에서 나를 건져 주셨다"고 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5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의 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모세가 진을 치고 있는 광야로 갔는데, 그 곳은 바로 하나님의 산이 있는 곳이다.

6 그는 거기에서 모세에게 전갈을 보냈다. "자네의 장인인 나 이드로가 자네의 처와 두 아들을 데리고 왔네."

7 모세가 그의 장인을 만나러 나와서, 그에게 절을 하고, 입을 맞추었다. 그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함께 장막으로 들어갔다.

8 모세는 장인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신 일, 곧 바로와 이집트 사람에게 하신 모든 일과, 그들이 오는 도중에 겪은 모든 고난과, 주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건져 주셨는가 하는 것을 자세히 말하였다.

9 그러자 이드로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시려고 베푸신 온갖 고마운 일을 전하여 듣고서, 기뻐하였다.

10 이드로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와 바로의 손아귀에서 자네와 자네의 백성을 건져 주시고, 이 백성을 이집트 사람의 억압으로부터 건져 주셨으니, 주님은 마땅히 찬양을 받으실 분일세.

11 이스라엘에게 그토록 교만히 행한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고 치신 것을 보니, 주님이 그 어떤 신보다도 위대하시다는 것을 이제 나는 똑똑히 알겠네."

12 그리고 나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하나님께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쳤다. 아론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두 와서, 하나님 앞에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제사 음식을 먹었다.

 

 

모세의 특별한 은인 이드로

이드로는 모세의 은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만났습니다. 모세가 광야로 도망 왔을 때 우물에서 이드로의 딸을 도와주다가 인연을 맺은 것입니다.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 보내어진 아브라함의 종도 리브가를 우물에서 만났으며, 야곱도 우물에서 아내 라헬을 만났습니다. 이처럼 모세가 우물에서 이드로의 딸들을 만났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해, 40년 동안 목자로 양 떼를 치며 이드로와 함께 지냈습니다. 40년 동안 장인의 가축을 치며 살았지만, 라반과 야곱과 같은 갈등은 없었습니다. 40년 동안 거둬줬던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도, 이드로는 모세를 평안히 보내 주었습니다. 서로의 관계가 처음부터 끝까지 돈독했음을 말해줍니다. 이제 모세가 자기 동족을 애굽에서 이끌고 자신이 지내던 호렙산 부근으로 온다는 소식들은 이드로가 먼저 맞으러 나간 것입니다.

 

이드로 외에도 여러 장인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삭의 장인 브두엘, 야곱의 장인 라반, 요셉의 장인 온 제사장 보디베라가 있지만, 모세와 이드로 같은 각별한 관계는 없었습니다. 처자식을 상봉하는 자리임에도, 모세는 처자식들보다 장인의 방문이 더 반가웠던 것 같습니다. 7절에서는 이드로를 만나서 극진히 절하며 열렬히 환영합니다. 처자식들에 대한 안부나 이야기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장인의 방문을 먼저 언급할 뿐만 아니라 말끝마다 장인, 장인 합니다. 18장에서 장인이라는 단어를 무려 열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마 모세가 미디안 목자로서 광야 40년을 보낼 때, 이드로는 모세에게 많은 도움과 지혜를 주며 인생의 멘토가 되었을 것이라 보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 듣기를 원한다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었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은 미디안 족속이 섬기는 어떤 신의 제사장을 의미합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이 노년에 첩 그두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중 하나의 이름입니다. 미디안은 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고, 이들 후손들이 민족을 이루어서 팔레스타인 주변 광야에서 유목하며 지냈습니다. 민수기 10장을 보면, 미디안 족속은 광야 사막 사람이라 말합니다. 광야 길을 잘 알았기에, 이스라엘의 백성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모세는 자신의 처남인 호밥에게 요청합니다. 미디안 족속은 여호와가 아닌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당시의 고대 중동 지역은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론적 사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바알, 아스다롯, 그모스, 몰록 등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드로는 그러한 신들 중 미디안 족속이 섬기던 신의 제사장이었을 것입니다. 미디안 족속이 어떤 특정한 신을 섬겼는지는 기록하지 않지만, 후일에 미디안 장로들이 모압 장로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바알브올 숭배에 빠지도록 한 것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 것은 아닙니다.

 

이드로가 모세를 만나러 온 것은 모세의 처자식을 보살피고 있다가, 때가 되어 데려다주러 온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자식들도 나이가 꽤 되었을 터인데, 충분히 혼자서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온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바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미디안의 제사장이며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는, 하나님이 모세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주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셨는가 하는 것을 들었다.” 당시에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없었지만 세계 최대의 강대국인 애굽의 군대를 물리치고 히브리 노예들이 탈출했다는 이 엄청난 소식은 금방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드로가 바로 이 소식을 듣고서 모세를 찾아간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드로가 들은 것이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 존재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드로가 섬긴 이방신이나 여호와 하나님이나 존재 여부에 대해서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그러나 참 하나님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시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한 일도 아니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출애굽은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영웅담이 아니고, 또는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의 역사도 아닙니다. 출애굽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는 사건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

오늘 본문 7절에서, "모세가 그의 장인을 만나러 나가서, 그에게 절을 하고, 입을 맞추었다. 그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함께 장막으로 들어갔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점은 모세가 장인에게 모든 것을 솔직히 이야기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자기 속 마음까지 모든 것을 털어놓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족 사이에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원만한 가족 관계를 위해서는 감출 것 없이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 관계가 어려운 이유도 다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오랜만에 만난 장인 이드로에게 출애굽의 과정을 소상히 이야기했습니다. 상대를 가장 존중하는 태도는 비밀없이 모든 것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는 것입니다.

 

이드로는 모세를 통해 출애굽의 전 과정을 구체적으로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시고, 출애굽의 대역사를 이루신 일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일들,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의 군대를 수장시키신 일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일들을 들었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기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들을 때 믿음이 자라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만이 들을 귀가 열립니다. 당시에도 이드로뿐만 아니라 많은 미디안 사람들, 아말렉 사람들, 그리고 가나안의 원주민들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들었지만, 반응은 달랐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가나안 족속들은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했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하나님의 일을 듣고도 서로 다른 반응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믿음을 가지지만, 일부는 마음이 완악해져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마땅히 찬양을 받으실 분일세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신 것을 듣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자신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기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자신과 상관없는 분이라면 이드로가 기뻐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이야기를 듣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10절입니다. “이드로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와 바로의 손아귀에서 자네와 자네의 백성을 건져 주시고, 이 백성을 이집트 사람의 억압으로부터 건져 주셨으니, 주님은 마땅히 찬양을 받으실 분일세.” 이드로의 고백은 모세가 이드로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드로는 여호와가 하나님의 이름이며, 자기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찬송한 것입니다.

 

11절에서 이드로는 “이스라엘에게 그토록 교만하게 행한 자들에게 벌을 내리신 것을 보니, 주님이 그 어떤 신보다도 위대하시다는 것을 이제 나는 똑똑히 알겠네”라고 말했습니다. 이드로는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듣고,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달았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가 알고 있던 모든 신들보다 더 위대하신 분임을, 여호와만이 참된 능력을 가진 신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걸어오면서 이드로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넜을 때는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그 이후에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도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나 감격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갇힌 분이 아닌 천지의 주재이시다.

이와 달리 이드로는 본인이 겪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듣고 깊이 감동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12절에서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드로는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아론과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떡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화목제를 드린 것이며, 이드로는 모세뿐만 아니라 아론과 장로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상기시키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갈망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표들이 모두 이드로의 제사에 참석했다는 것은 그의 제사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인정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의 멜기세덱이 그 한 예입니다. 멜기세덱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던 인물로 출신이나 정체는 불분명합니다. 창세기 14장 19절에서 “그는 아브람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천지의 주재, 가장 높으신 하나님, 아브람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라며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빌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해석하지만, 여전히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도 유사한 존재입니다. 헬라어로 ‘마기’라 불리는데, 당시 마법사로 여겨진 점성술사나 신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것은 분명 놀라운 사건입니다. 사도행전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등장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경건하고 진리에 대해 열려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였던 고넬료를 보며,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도행전 10장 34절부터 35절입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이스라엘이나 교회 안에만 갇힌 분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시며 어디에나 계신 분이십니다. 세상 속에서도 어렴풋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거나 행동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교회의 특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도 진리를 찾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도 모세를 통해 참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고, 그들이 말씀 가운데 참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더욱 돕는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인 가족이라는 십자가

마지막으로 모세의 아내 십보라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는 처자식보다 장인을 더 반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모세와 십보라의 관계가 참 독특한 것이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4장 20절에 따르면, 모세는 장인의 집에서 40년을 보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으로 갈 때 아내와 자녀들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하지만 십보라가 모세를 ‘피남편’이라 부르는 사건 이후 다시 장인 이드로에게 돌려보냅니다. 십보라에게 이 사건은 꽤 큰 충격이었다고 봅니다. 모세와 함께 애굽으로 향하던 중,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아마도 모세만이 아니라 그 아들들도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일은 아들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이비다. 급박한 상황에서 십보라는 돌칼로 아들에게 급히 할례를 행했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십보라는 모세를 피남편이라 불렀는데, 남편  모세로 인해 피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십보라의 반응은 갑작스러운 위기에서 받은 공포와 충격을 나타냅니다.

 

피남편이라는 말에서 십보라와 모세의 부부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모세는 가족과 떨어진 시간이 많았습니다. 출애굽 과정에서도 사역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야 했습니다. 미디안 광야 시절에도 홀로 목자로서 시간을 오랫동안 보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일을 맡은 모세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십보라와의 결혼 생활은 모세에게 십자가와 같았습니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의 타락으로, 사무엘은 아들의 타락으로, 다윗은 자식들의 반역으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 사례들은 신앙을 지키는 과정에서 가족이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자손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했지만, 결국 그의 통치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분열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가장 경건한 왕으로 꼽히지만, 아들 므낫세는 가장 불경건한 왕이 되었습니다. 경건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반드시 신앙을 계승하지는 않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많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신앙인들이 비슷한 상황을 겪습니다. 믿지 않는 배우자나 자녀와의 관계에서 고통을 경험하는 것은 자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위안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키시고 우리의 영혼을 깨어있게 하십니다. 모세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들이나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적인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겪는 고통은 우리 신앙을 강화하고 더 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신앙 여정에서 믿지 않는 가족으로 인한 갈등은 해결되기가 쉽지 않은 고난이지만, 이럴수록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주어진 십자가를 달게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각자 허락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