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장 12절-28절 새번역
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절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우리 사이에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나의 영토를 침범하십니까?"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절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 강에서부터 얍복 강과 요단 강에 이르는 나의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말썽을 일으키지 말고 그 땅을 내놓으시기 바랍니다."
14 입다는 다시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절을 보냈다.
15 사절이 그에게 말을 전하였다. "나 입다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이스라엘이 모압 땅이나 암몬 자손의 땅을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16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고 홍해를 건너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에,
17 이스라엘이 에돔 왕에게 사절을 보내어 에돔 왕의 영토를 지나가게 허락하여 달라고 부탁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돔의 왕은 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압 왕에게도 사절을 보내었으나, 그도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데스에 머물러 있다가,
18 광야를 지나 에돔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 동쪽으로 가서, 아르논 강 건너에 진을 쳤으며, 모압 땅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르논 강이 모압 땅의 국경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9 이스라엘은 또 헤스본에서 통치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에게도 사절을 보내어, 우리가 갈 곳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토를 지나가게 허락하여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였습니다.
20 그런데 시혼은 이스라엘이 자기의 영토를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야하스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에게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21 그래서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시혼과 그의 온 군대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이기고, 아모리 사람의 모든 땅 곧 그들이 사는 그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22 이렇게 하여서 이스라엘은 아르논 강에서 얍복 강까지와 또 광야에서 요단 강까지 이르는 아모리 사람의 온 영토를 차지하였습니다.
23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이렇게 아모리 사람을 몰아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당신이 이 땅을 차지하겠다는 것입니까?
24 당신은 당신이 섬기는 신 그모스가 당신의 몫으로 준 땅을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이 우리 앞에서 원수를 몰아내고 주신 모든 땅을 차지한 것입니다.
25 이제 당신이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까? 그가 감히 이스라엘과 다투거나 싸웠습니까?
26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주변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주변 마을들과, 아르논 강변의 모든 성읍에 삼백 년 동안이나 살았는데, 왜 당신은 그 동안에 이 지역들을 되찾지 않았습니까?
27 나로서는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전혀 없는데도 당신이 나를 해치려고 쳐들어왔으니, 심판자이신 주님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를 판가름해 주실 것입니다."
28 그러나 암몬 자손의 왕은 입다가 자기에게 전하여 준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협상의 대가, 입다
좋은 외교적 협상은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매우 유익합니다. 서희 장군은 거란의 대군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전쟁 대신 협상을 선택하여 거란과의 평화 조약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를 통해 고려는 큰 희생 없이 국토를 지키고 안정된 정국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협상을 통해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불필요한 희생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 살펴본 길르앗 장로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입다는 매우 뛰어난 협상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암몬과의 전투를 앞두고 입다를 지휘관으로 초빙하려 하였으나, 그는 처음에 이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간 자신을 쫓아내었던 그들의 잘못했던 과거를 거론하면서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역으로 제안하면서 하나님을 협상에 끌어드립니다. 그러자 칼자루를 처음에는 길르앗 장로들이 쥐고 있었지만, 입다는 이제는 칼자루를 자신이 잡게 되었습니다. 결국 길르앗 장로들은 전쟁 이후에 입다가 길르앗 전체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어달라는 더 큰 제안을 받게 되고 이를 수락합니다.
이후에도 입다는 이 사실을 자신과 장로들만 알고 있지 않고, 백성들 앞에서 공포하면서 지휘관이자 통치자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렇게 수완을 발휘하여 계약을 치밀하게 이행하며 자신의 입지를 확보한 것입니다. 이러한 협상력은 타고난 것이기도 하지만, 실전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입다는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삶을 통해 협상력을 키운 것입니다.
암몬과의 외교 전
이러한 협상력은 이후 암몬과의 전쟁에서도 발휘됩니다.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후,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즉시 결전을 벌이기보다는 외교적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먼저 사자를 보내어 암몬이 전쟁을 일으킨 명분을 물었습니다. 암몬 왕은 이스라엘이 300년 전 출애굽 당시 아르논에서 얍복과 요단까지 자신의 영토를 점령했으니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입다는 과거 이스라엘이 암몬과 모압 땅을 점령한 적이 없으며, 아모리 왕과의 전쟁을 통해 차지한 땅이 바로 길르앗 땅임을 밝혔습니다. 입다는 상대의 거짓 주장을 반박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종종 힘을 가진 자들이 탐욕을 위해 거짓 명분을 만들어내며, 이는 국가 간 전쟁에서도, 개인 간의 싸움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거짓을 진리로 포장하거나 가공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입다는 암몬 왕의 거짓 주장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반박했습니다. 힘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사회는 정의가 무너진 것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이 땅을 요구할 수 있느냐?
입다는 신학적으로도 논쟁을 펼칩니다. 2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섬기는 신 그모스가 당신의 몫으로 준 땅을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이 우리 앞에서 원수를 몰아내고 주신 모든 땅을 차지한 것입니다.” 입다는 암몬의 신을 그모스라고 했지만, 실제로 암몬의 신은 밀곰이고 모압의 신이 그모스입니다. 암몬과 모압은 루스의 두 딸과 동침하여 난 아들로 형제와도 같습니다. 물론 입다가 헷갈린 것도 있지만, 암몬이나 모압이 각자 주신은 다르지만, 밀곰과 그모스를 모두 섬긴 것입니다. 입다의 핵심적인 주장은, 그모스가 너희들의 땅을 주었고 지금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땅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는 것입니다. 입다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신 땅을 어떻게 너희 땅이라고 주장하느냐"라고 암몬을 책망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입다는 법적인 근거를 밝혔습니다. 길르앗 땅은 이스라엘이 300년간 실효적으로 점령해 왔습니다. 중간에 돌려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이는 마치 오랜 기간 한국 땅이었던 독도를 갑자기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300년 전 모압의 건국의 아비와 같은 이가 십볼의 아들 발락이었는데, 발락조차도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고 이 땅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입다는 어떻게 너희가 이제야 이 땅을 요구할 수 있느냐고 반박한 것입니다.
리더의 자질
입다는 문무를 겸비한 리더로서 전쟁에 능할 뿐만 아니라 탁월한 설득력과 지략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지도력은 단순히 군사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이는 현대 지도자들에게도 필요한 덕목입니다. 강한 힘과 더불어 대화, 소통, 협상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입다는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입다는 역사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외교적 협상력은 바른 역사 이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결국 암몬과의 외교에서 입다는 전쟁에 대한 분명한 명분을 얻을 수 있었고, 길르앗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입다와의 외교에서 드러난 것은, 암몬 왕이 군사적 우위를 이용해 거짓 명분을 내세웠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역사적, 신학적, 법적으로 이야기해도 듣지 않으며, 결국 무력으로 땅을 차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싸우고자 하는 자는 결코 설득당하지 않고 힘으로 싸우려 합니다. 지식과 논리로 이야기해도 결국 전쟁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상대할 때에는 세상에서 대응하는 방식을 갖추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악한 마음으로 오직 싸우고자 덤비는 자들에게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결국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정의로운 편에게 승리를 주셔야 합니다.
명분의 중요성
암몬 왕이 땅을 돌려달라는 것은 전쟁을 하기 위한 자기 명분일 뿐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지 명분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행하는 동기가 정당한지, 아니면 나의 이익만을 위한 일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사람들이 결코 호응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모두를 위한다 말하며 결국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것은 들통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명분이 바로 서게 되면 공격이나 논쟁에 있어서 힘을 얻습니다. 정의와 진리를 올바르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전쟁을 치르기 위한 명분이 되며, 명분이 서면 군대의 사기가 오르기에 전쟁을 유리하게 치를 수 있습니다. 명분이 승리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
결국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 앞서 외교적 협상을 한 것은 명분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입다는 국민들의 호응과 주변 국가들의 이해를 얻기 위해 합법적인 전쟁의 명분을 만들었습니다. 암몬 왕이 평화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결속이 강화되었습니다. 당시 길르앗 내에서 입다를 지지하는 세력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전히 창녀의 자식이라는 선입견으로 입다를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암몬이 명분 없이 무턱대고 호전적으로 나오자, 길르앗 사람들은 입다를 중심으로 조국을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명분이 선 전쟁이었고, 백성들이 하나로 뭉쳤기 때문에 그 전쟁은 이미 승리한 싸움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처럼 명분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명분 없이 싸우면, 설령 전쟁에서는 승리하더라도 결국에는 목표를 이루지 못합니다. 명분이 올바르면 결국에는 이기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결국 무엇보다 입다는 명분이 선 정의로운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나로서는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전혀 없는데도 당신이 나를 해치려고 쳐들어왔으니, 심판자이신 주님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를 판가름해 주실 것입니다.” 입다는 거짓 명분으로 공격하는 암몬은 결코 승리할 수 없고 끝내 심판받을 것이며, 바른 명분으로 나아가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의 승리할 것을 굳건히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서 하나님이 정의롭게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길르앗 사람들이 암몬과 치를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모든 이들이 확인하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입다는 암몬과의 외교적 협상을 통해서 이를 확인했습니다. 길르앗 사람들에게 역사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친 것입니다. 인간은 역사를 좌지우지할 수 없으며,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갑니다. 바로 이 사실을 입다는 여호와의 전쟁의 명분으로 삼고 나아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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