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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17장 8절-16절 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곳 이름을 여호와닛시라 하고

by 알렉스강 2024. 8. 20.

출애굽기 17장 8절-16절 새번역

 

8 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몰려와서, 르비딤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을 공격하였다.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장정들을 뽑아서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시오.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산꼭대기에 서 있겠소."

10 여호수아는 모세가 그에게 말한 대로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11 모세가 그의 팔을 들면 이스라엘이 더욱 우세하고, 그가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더욱 우세하였다.

12 모세가 피곤하여 팔을 들고 있을 수 없게 되니,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 와서 모세를 앉게 하고, 그들이 각각 그 양쪽에 서서 그의 팔을 붙들어 올렸다. 해가 질 때까지 그가 팔을 내리지 않았다.

13 이렇게 해서,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그 백성을 칼로 무찔렀다.

14 그 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오늘의 승리를 책에 기록하여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하고, 여호수아에게는, '내가 아말렉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서 아무도 아말렉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한 나의 결심을 일러주어라."

15 모세는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곳 이름을 '여호와닛시'라 하고,

16 "주님의 깃발을 높이 들어라. 주님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실 것이다" 하고 외쳤다.

 

 

 

르비딤 광야에서의 위기

신앙의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삶이 순탄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거역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했는데도 힘든 일이 다가오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그와 같았습니다.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 광야로 간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르비딤에는 마실 물이 많아야 상식에 맞는 것인데, 오히려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노하여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로 호렙산 어느 한 바위를 치게 하셨고, 거기서 물이 나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위기가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상처는 깊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확신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모세와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모세는 많은 심적 타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분열시켰습니다. 팀워크가 깨졌고, 모세의 리더십도 무너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모세는 이들을 이끌 의욕을 잃었을 것입니다.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과연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 왜 내게 이런 힘든 사명을 맡겼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왜 광야에서도 힘든 곳만 골라서 데리고 가시는 것일까요? 물이 없는 곳으로 이끄신 것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적인 자기 주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목말라 죽도록 내버려 두실 리가 없었습니다. 목말라 죽게 하려고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백성이 불평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그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따라서 물이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 두실 리가 없어, 하나님은 우리를 엄청난 능력으로 구원하신 분이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자, 결국 하나님이 모두 해결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가라는 곳으로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믿고 따라간 것이 아닙니다. 긴가민가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간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밑바닥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하는 마음을 드러내시고자, 의도적으로 힘든 곳만 골라 가신 것입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큰일이 닥쳤습니다. 흔히 엎친 데 덮친다고 말하지요.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있는 이스라엘에게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온 것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 족속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창세기 36장 12절에 따르면,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와 그의 첩 딤나 사이에서 아들 아말렉이 태어났다.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가 낳은 자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입니다. 아말렉의 후손들은 광야에서 약탈을 하며 살아가는 한 족속을 이룬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쌍둥이 형으로 이삭의 장자였지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넘겼습니다. 그만큼 영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었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핏줄일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까지도 물려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말렉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괴롭혔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신명기 25장 17절과 18절은 아말렉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공격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당신들이 이집트에서 나오던 길에, 아말렉 사람이 당신들에게 한 일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당신들이 피곤하고 지쳤을 때에, 길에서 당신들을 만나, 당신들 뒤에 처진 사람들을 모조리 쳐 죽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를 지나면서 피곤하여 뒤에 처진 사람들을 선택적으로 공격했던 것입니다. 뒤처진 자들, 즉 약하고 병든 자들, 피곤한 사람들이 아말렉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행렬에서 뒤처진 자들을 기다렸다가 공격하여 죽였습니다. 본성이 야비하고 악한 세력인 것입니다. 심지어 바벨론 포로기 시절 유대민족을 몰살시키려 했던 하만이 아말렉 후손이라 전해집니다. 

 

여전히 신앙 여정에 일어나는 영적 전쟁

악한 마귀도 아말렉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합니다. 그렇다면 마귀의 주요 공격 대상은 누구일까요? 아말렉은 행렬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악한 마귀는 믿음의 행렬에서 뒤처진 사람들,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믿음의 확신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사단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갈 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멀찍이'라는 표현은 애매모호한 태도, 회색적인 자세를 나타냅니다. 이처럼 멀찍이 따라가던 베드로는 시험에 빠져,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실패를 말해주는 중요한 표현은 '멀찍이'라는 단어입니다. 멀찍이 따르면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아말렉 족속처럼 사단이 뒤에 처지는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고 털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웠듯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도 영적 싸움을 겪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에 와서 마귀나 귀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영적 전쟁은 다름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 의지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게 만드는 것이 영적인 공격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사단에게 당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악한 마귀가 하는 일이란 사람들을 복음의 빛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영적으로 공격하는 방식

따라서 우리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성령이 함께 하는 삶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마귀와 악한 영의 존재와 그들이 혼미케 하고 유혹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악한 영의 존재와 영적 공격에 대해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정생활, 직장생활, 건강, 사업, 인간관계 등 눈에 보이는 영역은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기도와 예배는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 중요합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언제 공격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몰려와서, 르비딤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을 공격하였다" 여기서 "그때에"라는 시점은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비딤에 물이 없어서 좌절하고 모세에게 대든 후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내부적으로 갈등한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악한 사단은 이때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말렉과 싸울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무기도 없었습니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애굽에서 노예였습니다. 전쟁 경험이 전무합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이민족과 처음으로 맞서는 전쟁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속이 편할 수도 있었습니다. 좀 약탈하고 가져가겠지 하며 무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해변 길로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광야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르비딤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이 아말렉과의 전쟁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울 때가 아니라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다르게 생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의 삶을 시작할 때는 전쟁이 없었지만, 이제는 믿음이 자라 아말렉과의 전쟁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침체될수록 쉬지 않고 나가 싸워야 한다

인생에서 한 가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때 다른 문제까지 덮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이 가라앉고 영적으로 침체되어 기도조차 잘 나오지 않을 때, 낙심되어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순간에 주저앉고, 포기하며, 의욕을 잃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망가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침체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때 가장 좌절한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모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때 하나님께 순종하여 가만히 있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일어나 싸웠습니다. 모세는 싸우지 않으면 야금야금 빼앗기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9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장정들을 뽑아서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시오.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산꼭대기에 서 있겠소.” 모세는 산에 올라가 기도했고, 백성들은 나가 싸웠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일어나서 싸우는 것이 극심한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친 우리에게 "얼마나 힘드냐, 좀 쉬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어나라, 나가 싸워라.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힘든 일을 만났을 때 포기하지 마십시오. 침체되어 있을수록 더 저돌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침체되면 교인들은 의욕을 잃고, 이렇게 어려운데 뭘 하겠냐고 말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침체의 늪에 더 깊이 빠져들 뿐입니다. 그러나 침체를 극복하려면 힘들수록 일어나 싸우고 더 큰 일에 도전하고 새로운 일을 해나갈 때 없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맞서 싸워라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조차 침체되고 탈진하여 로뎀 나무 아래 누워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그 아내 이세벨에 맞서 싸웠습니다. 갈멜산에서는 목숨을 걸고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맞섰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신 중 누가 참으로 살아 계신 분인지 내기를 했고,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심으로 엘리야는 승리했습니다. 이 일로 분노한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려 했고 생명의 위협을 받아 도망치는 길에 탈진했습니다. 엘리야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가, 악한 자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쳤다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친 엘리야에게 쉬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시며, 전쟁터로 다시 내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호렙산 동굴로 보내셨고, 거기에서 체력과 마음을 회복한 다음에 새로운 사명을 부과하셨습니다. 엘리야에게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며,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를 대신하는 선지자가 되게 하라는 세 가지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힘들수록 몸을 움직이고 사명을 다해야 했습니다. 엘리야는 일어나서 엘리사, 예후, 하사엘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후로 엘리야는 더 이상 탈진하지 않았으며, 결국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침체된 상황이었지만, 아말렉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싸웠고, 그 결과 승리를 얻었습니다. 아말렉 승리는 단순한 전쟁의 승리만이 아니었습니다. 화합과 단결을 얻었고, 모세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었으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침체를 극복하는 길은 싸움에 나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사명으로 나아가야  힘들수록 일어나서 싸우십시오. 그때, 승리와 회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말렉과의 싸움은 영적 전쟁이기도 합니다. 영적 전쟁과 악한 영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귀의 존재를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지만, 동시에 과도하게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마귀는 비교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마귀는 그저 피조물일 뿐입니다. 마귀는 전능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무력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마귀와 싸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임을 알고 믿음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중보 기도의 중요성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들과 아말렉 사이의 전쟁이 두 곳에서 벌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수아가 군대를 이끌고 싸운 산 아래의 전쟁터이고, 다른 하나는 모세가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기도한 산꼭대기입니다. 산 아래에서 벌어진 전투는 일상적인 삶의 영역을 상징합니다. 여호수아가 싸웠던 전쟁터처럼, 우리의 가정, 일터,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 일상적인 전쟁터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전쟁터는 산꼭대기, 즉 신앙의 영역입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했을 때 이스라엘이 승리했고, 손이 내려오면 이스라엘이 패했습니다. 영적 전쟁의 승패는 모세의 기도에 달려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무리 능한 장군이라도, 싸움만으로는 아말렉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 것은 모세의 기도였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인생의 승패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즉 신앙적인 영역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모세처럼 산꼭대기에 올라가 하나님께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이 승리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승리의 열쇠입니다. 기도는 혼자 할 수도 있습니다만, 함께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 그의 곁에서 그를 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론과 훌이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고, 훌은 매형이었습니다. 모세가 산 위에서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오랜 시간 들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곧 지쳐서 팔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돌 위에 앉히고, 팔을 붙들어 주었습니다. 팀을 이루어 함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혼자 기도하면 쉽게 지칠 수 있지만, 함께 기도하는 팀이 있으면 서로 돕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힘들고 지쳐 더 이상 기도할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이 기도의 팔을 붙들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적 순종은 승리의 길이다

그리고 모세가 두 손을 들었다는 것은 전적인 순종의 상태를 말합니다. 모세 혼자만이 아니라 아론과 훌이 함께 모세의 두 손을 들게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적으로 순종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앞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들 것을 알고도 물이 없는 광야로 이끌고 가신 것은 전적 순종을 원하시기 때문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아말렉이 쳐들어와 생명이 위급한 극한의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이것이 전적 순종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싸움이 승리로 끝나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이 전쟁이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음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임했고,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기도했지만, 궁극적으로 이 싸움은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14절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오늘의 승리를 책에 기록하여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하고, 여호수아에게는, '내가 아말렉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서 아무도 아말렉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한 나의 결심을 일러주어라." 하나님은 이 사건을 책에 기록해 기념하게 하셨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영적 싸움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들어가면서도 이 싸움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기억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침체가 오고 좌절이 오고 기력이 없는 상태라도, 우리의 조건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영적인 전쟁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은 승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기도하면 반드시 승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을 일으킨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내가 새벽에 2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루터의 기도는 전적 순종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 이루어 달라는 그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을 처서 복종시킬 때 하나님은 역사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