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7장 14절-24절 새번역
1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로는 고집이 세서, 백성들을 내보내기를 거절하였다.
15 그러니 너는 아침에 바로에게로 가거라. 그가 물가로 갈 것이니, 강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만나거라. 너는 뱀으로 변했던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서,
16 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나를 임금님께 보내어 이르시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어 그들이 광야에서 나에게 예배하게 하라, 하셨는데도, 임금님은 아직까지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17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주님께서 친히 주님임을 임금님께 기어이 알리고야 말겠다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쥐고 있는 이 지팡이로 강물을 치면, 이 강물이 피로 변할 것입니다.
18 강에 있는 물고기는 죽고, 강물에서는 냄새가 나서, 이집트 사람이 그 강물을 마시지 못할 것입니다.'"
1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아론에게 이르기를, 지팡이를 잡고 이집트의 모든 물 곧 강과 운하와 늪과 그 밖에 물이 고인 모든 곳에 손을 내밀라고 하여라. 그러면 그 모든 물이 피가 될 것이며, 이집트 땅 모든 곳에 피가 괼 것이다. 나무 그릇이나 돌 그릇에까지도 피가 괼 것이다."
20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다. 그가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지팡이를 들어 강물을 치니, 강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하였다.
21 그러자 강에 있는 물고기가 죽고, 강물에서 악취가 나서, 이집트 사람들이 그 강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이집트 땅의 모든 곳에 피가 괴었다.
22 그런데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그와 똑같이 하니,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면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23 이번에도 바로는 이 일에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발길을 돌려서 궁궐로 들어갔다.
24 이렇게 하여서 강물을 마실 수 없게 되니, 모든 이집트 사람은 마실 물을 찾아서 강 주변에 우물을 팠다.
25 주님께서 강을 치신 지 이레가 지났다.
자기 백성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
출애굽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이스라엘 백성의 노예 해방과 자유의 과정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구속사적 모형으로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건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유념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존귀하게 되길 원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먼저 모세가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시선으로 출애굽 과정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끊임없이 설득하십니다. 물론 모세가 거부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또 다른 이를 세우셔서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행하셨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일에 하나님은 열심을 다하십니다. 하나님은 열심을 다해 설득하셔서 하나님은 모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가지도록 하십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접점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지만, 그 은혜를 받는 통로는 믿음입니다.
재앙도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다
출애굽 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았던 재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의 열재앙은 교만하고 완고한 바로를 꺾으시기 위함도 있지만,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뜻밖에 마주치는 재앙을 바라보며, 이것이 왜 생겼을까 살펴보면 우선 나의 잘못으로 인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나와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죄악으로 인한 고난일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도대체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섭리로 바라본다면, 이 모든 일은 결국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재앙을 겪어내면서 점차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고 구원에 이르는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난을 분석하고 피하기보다는 이 고난을 믿음으로 어떻게 견디고 이겨낼 것인지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나를 임금님께 보내어 이르시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어 그들이 광야에서 나에게 예배하게 하라, 하셨는데도, 임금님은 아직까지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출애굽의 이유로 언급되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하는 일은 그저 핑계나 의미 없는 명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를 섬기는 백성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바꾸시기 위함입니다. 단순히 섬김의 대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예배하는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작업입니다. '섬기다'라는 단어는 '일하다', '예배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일과 삶과 예배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예배가 아니라,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한 형태입니다.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하신다
재앙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건들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겪는 고난은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변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꾸려고 하면,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른 채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우상숭배는 결국 내 뜻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숭배하는 것은 결국 내가 변하기 싫어서입니다. 내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 돈만 벌 수 있다면 윤리도 필요 없다는 사고방식이 우상숭배의 근본입니다. 돈이 근본이 된 오늘날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우상 더미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질서로부터 구원하길 원하십니다. 참된 부유함과 행복, 생명과 번영의 근원이 결국 하나님임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구원입니다.
열 가지 재앙은 애굽 사람들이 신처럼 떠받들던 것들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열 재앙의 대상은 나일강,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태양, 애굽 왕 바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치심으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고, 온 세상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신임을 나타내셨습니다. 결국, 애굽 사람들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이 가장 위대한 신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 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것들로 심판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들은 결국 우리의 재앙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과 재물을 사랑하는 자는 그것들로 인해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온 천하 만물을 다스리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참된 하나님이십니다.
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주님께서 친히 주님임을 임금님께 기어이 알리고야 말겠다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쥐고 있는 이 지팡이로 강물을 치면, 이 강물이 피로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라고 하셨지만, 바로는 이를 거부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길래 내 것을 내놓으라고 하냐?"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 "이제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잘 살 때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지만, 병에 걸리거나 죽음이 임박할 때야 비로소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부와 권력을 가진 바로는 아직 기세 등등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시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기를 거절하자, 하나님은 첫 번째 재앙으로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셨습니다. 나일강은 애굽의 젖줄로, 이집트 문명의 발달과 애굽의 번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을 신처럼 떠받들었고, 그 물로 생활의 많은 부분을 해결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경고를 무시합니다. 듣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했습니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팡이를 들어 나일강을 치자 강물이 붉은 피로 변했습니다. 물고기들이 죽고, 강에서 악취가 나며, 애굽 온 땅이 피로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은 그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나일강은 애굽의 생명의 젖줄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 덕분에 먹고 산다 생각하여 나일강을 신으로 모신 것입니다. 바로는 정해진 날마다 나일강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들의 절기와 달력에 맞추어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적절하게 물을 공급해달라는 국가 의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의 풍요를 가져다 주는 우상인 나일강을 치십니다. 나일강의 물이 피로 변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애굽 사람들은 더이상 그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듣기를 거부한 바로를 치셨고, 그로 인해 애굽 전역에 큰 고통이 온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집트의 고문서에도 기록된 사실입니다. 이 사건이 적조현상이라며 과학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설령 적조현상이라 하더라도 성경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애굽을 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의 교만과 완고함을 꺾으신 사건입니다.
세상의 악함을 보복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나일강이 피로 변한 사건은 바로가 히브리인의 아기들을 나일강에 던져 죽였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 일이 악함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갚으십니다. 이사야서 35장 3절과 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맥 풀린 손이 힘을 쓰게 하여라.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여라.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 하고 말하여라.” 하나님께서 약한 손을 강하게 하시고,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굳세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보복하시며 갚아주시는 분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은 내게 달린 것이라고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원수에 대해 분노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만 하면 됩니다. 원수를 보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십니다.
사단도 하나님을 따라 한다
22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그와 똑같이 하니,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면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애굽의 마술사들도 자신들의 술법으로 나일강 물을 피로 바꾸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로는 더욱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적이 일어난다고 해서 모두 선한 영이 역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사람이 가르치는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하는지,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의 행동이 진리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내면 하나님의 능력과 비슷한 능력을 악한 영적 존재들도 흉내를 냅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따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따라 해도 목적이 다릅니다. 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영적인 능력을 비슷하게 사용합니다.
악한 자들도 사단이 하는 일을 배우고 따라 합니다. 잘못된 것은 더 잘 배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한 자의 방식으로 대항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합니다. 악한 자에게 원한을 갚고 멸하는 일을 우리 손으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원한을 갚을 때 악한 기운을 쓰기 때문에, 결국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움으로써 악한 에너지에 대한 유혹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것을 끊어내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악순환이 계속되어 스스로 파멸할 위험이 있습니다. 사단이 이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바로의 고집으로 인해 애굽의 모든 사람이 고통받다
23절과 24절 말씀입니다. “이번에도 바로는 이 일에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발길을 돌려서 궁궐로 들어갔다. 이렇게 하여서 강물을 마실 수 없게 되니, 모든 이집트 사람은 마실 물을 찾아서 강 주변에 우물을 팠다.” 바로는 나일강의 재앙을 보고도 관심을 두지 않고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모든 일이 누구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까? 한 지도자의 고집 때문에 애굽 백성 전체가 고통 속에 빠진 것입니다. 한 사람의 고집이 이렇게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내 고집 때문에 가족 전체가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사장 한 명의 고집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져 전 직원이 고생하기도 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고집만 부리면 모든 국민이 고통을 받습니다. 리더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고집을 버리는 것입니다. 고집은 결국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이고 자기 중심성이라는 악함에서 나오는 기질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바로의 고집으로 애굽 주민들은 나일강 주변을 파서 물을 찾아야 했습니다. 한 사람의 어리석은 고집으로 다수가 고생하는 일은 지금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 고집과 자기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이 감당하는 영적인 훈련의 핵심도 결국 내 고집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신을 쳐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주님의 뜻에 복종하기로 결단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내가 변할 길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결국 내가 변화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열 재앙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 백성이 믿음을 가지게 함입니다. 믿음을 가지는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내 고집을 내려놓고 생각을 바꾸어 내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바르게 알고 제대로 믿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고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바르게 알고 제대로 믿지 못해서 결국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반면교사입니다. 열 재앙을 통해서 변화되는 것은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큰 복임을 이스라엘 백성은 옆에서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재앙과 환란들을 보면서,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섭리임을 깨닫길 바랍니다. 급변하는 세상의 환경에 영향받지 말고 늘 마음과 중심을 지키길 바랍니다. 날마다 주신 은혜에 만족하며 늘 감사와 찬양으로 담대하게 살아가는 모두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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