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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4장 18절-31절 당신은 나에게 피남편입니다

by 알렉스강 2024. 7. 24.

출애굽기 4장 18절-31절 새번역

 

18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이제 떠나야겠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친족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도 살아 있는지를 알아 보아야겠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편안히 가라고 하면서 작별을 하였다.

19 주님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집트로 돌아가거라. 너의 목숨을 노리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20 그래서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 등에 태우고 이집트 땅으로 돌아갔다. 그 때에 모세는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2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이적을 행할 능력을 주었으니, 너는 이집트로 돌아가거든, 바로의 앞에서 그 모든 이적을 나타내 보여라. 그러나 나는 그가 고집을 부리게 하여 내 백성을 놓아 보내지 않게 하겠다.

22 너는 바로에게 말하여라.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23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놓아 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하였건만, 너는 그를 놓아 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게 하겠다.'"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어떤 숙소에 머물러 있을 때에, 주님께서 찾아 오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

25 십보라가 부싯돌 칼을 가지고 제 아들의 포피를 잘라서 모세의 발에 대고, "당신은, 나에게 피 남편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26 그래서 주님께서 그를 놓아 주셨는데,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할례 때문이다.

27 주님께서 아론에게, 광야로 가서 모세를 만나라고 말씀하시니, 그가 하나님의 산에 가서 모세를 만나서 입을 맞추어 문안하였다.

28 모세는, 주님께서 자기를 보내시면서 하신 모든 말씀과, 자기에게 명하신 이적들에 관한 모든 것을, 아론에게 말하여 주었다.

29 모세와 아론은 이집트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았다.

30 아론이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일러주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31 백성이 그들을 믿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굽어살피시고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셨다는 말을 듣고,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만남이 아름다우면 헤어짐도 아름답다

모세는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와 장인 이드로에게 자신의 특별한 경험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자신의 형제들이 살아 있는지 살펴보러 가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거짓말을 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특별한 체험을 장인에게 말해도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둘러서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4장 28절을 보면, 형 아론을 만났을 때는 모든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자기를 보내시면서 하신 모든 말씀과, 자기에게 명하신 이적들에 관한 모든 것을 아론에게 말하여 주었다." 이 점이 하나님 백성과 이방인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끼리 공유하는 특별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아론이 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속마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했지만, 광야에서 만난 은인으로서 끝까지 배려해 주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요청하자 이드로는 두말하지 않고 보내줍니다. 모세는 빈손으로 왔지만, 장인 이드로의 도움으로 삶을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생색내거나 은혜를 갚으라 할 수 있는데, 서운함 없이 보내준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라반은 야곱을 끝까지 붙잡았지만, 이드로는 모세를 두말하지 않고 보내주었습니다. 이처럼 사람 사이에 평안한 만남과 헤어짐은 축복입니다. 만남도 중요하지만, 헤어짐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인연이 되어 만났다면, 이제는 각자 소명을 따라 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남이 아름다우면 헤어짐도 아름답습니다.

 

모세는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일이 불안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안해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모세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모두 죽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모세의 아내 이름은 십보라입니다. 첫째 아들은 출애굽기 2장에서 게르솜이라 불렸습니다. 둘째 아들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출애굽기 18장을 보면, 모세의 가족을 이야기할 때 둘째 아들로 엘리에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 아들이 둘만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으니 식구가 적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세의 가족이 누구이며, 애굽으로 돌아올 때 얼마나 많은 재산을 모으고 돌아왔는지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떠났으며, 그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만이 들려 있었다고 말합니다. 오랜 시간 손 때가 묻은 지팡이는 모세의 삶의 흔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목자로서 미디안 광야 40년의 시간을 함께 했던 지팡이입니다. 그 지팡이에는 하나님과의 동행했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좋은 신앙의 기억은 유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념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배도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입니다. 결국 모세의 지팡이는 목동의 지팡이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팡이로 변했습니다. 

 

지팡이는 지팡이일 뿐 지팡이 너머에 하나님을 보라

우리의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 특별히 다른 무엇인가를 통해서 보다는 우리의 일상적인 도구들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됩니다. 우리의 지식, 재능, 심지어 일상적인 물건들까지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게 됩니다. 골리앗을 쓰러 뜨린 다윗의 물맷돌이 그렇게 쓰임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그 도구를 절대화해서는 안됩니다. 지팡이를 우상화해서는 안됩니다. 지팡이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팡이는 오래된 나무 작대기일 뿐입니다. 지팡이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팡이가 가리키는 하나님을 봐야지, 지팡이를 붙들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적이 전달하는 바 진리가 중요합니다. 기적을 경험하면, 그 기적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은사를 통해 교회에 덕을 끼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사를 절대시 하고 우상화하면 교회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망치게 됩니다. 인간은 연약하여 무엇이든 고착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고정하고 절대화하려는 경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신앙의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여 예전 방식대로만 하려 한다면, 올바른 신앙 전통이 아니라 잘못된 신앙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길 필요가 있습니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조건 배척하고 차별하려고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옛 방식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동시대에 하나님의 필요를 알고 그에 맞게 행하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피남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모세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계획을 알려주십니다. 출애굽기 4장 21절부터 2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이적을 행할 능력을 주었으니, 너는 이집트로 돌아가거든, 바로의 앞에서 그 모든 이적을 나타내 보여라. 그러나 나는 그가 고집을 부리게 하여 내 백성을 놓아 보내지 않게 하겠다. 너는 바로에게 말하여라.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놓아 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하였건만, 너는 그를 놓아 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게 하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에 가서 바로에게 그의 맏아들을 죽이겠다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장자를 내어주지 않으면 애굽의 장자를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애굽의 종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애굽은 태양신을 섬기며, 바로를 태양신의 장자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애굽의 바로는 자신의 장자를 죽이겠다는 말에 심각한 협박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출애굽기 4장 24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길을 가다가 어떤 숙소에 머물러 있을 때에,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 십보라가 부싯돌 칼을 가지고 아들의 포피를 잘라서 모세의 발에 대고, '당신은 나에게 피 남편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를 놓아주셨는데, 그때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할례 때문이다.” 하나님은 바로의 장자나 바로 본인을 죽이겠다고 하셨지만, 도리어 모세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할례 언약

이 부분은 성경에서 난해한 구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표현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할례입니다. 결국 이 두 가지를 종합해 볼 때, 모세가 죽음의 위기를 맞은 것은 할례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이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남자아이 성기의 표피를 자르는 것입니다. 할례는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표징이었습니다. 할례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서자인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볼 수 있는 아랍 사람들도 행합니다. 이스마엘은 성인이 될 무렵 할례를 받았기에, 아랍 사람들은 13살쯤 성인식처럼 할례를 행합니다.

 

남자가 남자 되게 하는 것은 성기에 있습니다. 생명도 성기에서 나옵니다. 성기에 칼을 대는 것은 목을 베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포피의 일부만 자르는 것 같지만, 성기를 다 잘라버리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에 내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의미를 뜻하는 것입니다. 결국 내 인생이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것이 바로 할례인 것입니다. 약속을 하면서 그 증표로 머리카락의 일부를 자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르는 것은 머리카락입니다. 하지만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 생명을 걸겠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내 몸에 죽음이라는 흔적을 남기면서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의식 중 할례와 관련된 것이 세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그 의미를 가르치며 간소화된 의식으로 머리에 세 번 물을 뿌리지만, 그 원래의 뜻대로 행한다면 침례로 몸 전체를 물에 담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내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났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는 할례와 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 하듯이, 모세나 모세의 아들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할례를 해야 했습니다.

 

할례와 관련해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순이 있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할례 언약을 하실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이미 아흔아홉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크게 번성케 하여 여러 민족이 나오고 왕들이 나올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생명을 상징하는 성기의 표피에 칼을 대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생명을 많이 줄 것이라 약속하시면서, 반대로 생명을 제하는 행동을 하신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자식을 가지길 포기한 상태인데, 거기다가 자녀를 가지게 만드는 성기에 다 칼을 댄다니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여기에 우리 기독교의 본질과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의 역설입니다. 예수님이 높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면, 세상 많은 사람들이 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진리, 죽을 때에야 진정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얻는 생명이 바로 복음의 역설입니다.

 

모세는 과연 할례를 받았을까?

다시 모세의 경우로 돌아가서 할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아들의 경우는 할례를 받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모세는 본인이 할례를 받았을지 여부가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석 달을 숨겨 키웠기에 부모가 할례를 행했을 것이고, 그리고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발견했을 때 히브리 아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을 보아 모세가 할례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할례를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문제는 모세나 모세 아들 중 하나라도 할례를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확한지는 알 수 없으나, 유대 전승에 따르면 모세는 히브리 전통에 따라 첫째 아들 게르솜이 태어났을 때에는 할례를 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십보라가 어린아이에 행하는 할례를 목격하고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둘째 아들인 엘리에셋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애굽으로 향하는 길에 모세가 죽을병에 걸립니다. 응급 상황에서 십보라가 대처를 잘합니다. 곧장 둘째 아들 엘리에셋의 포피를 베어다가 모세의 발아래에 갖다 댑니다. 발 아래 놓았다는 것은 정확하게는 모세의 성기에 갖다 댄 것입니다. 그리고 십보라는 모세에게 나의 피남편이라 말합니다. 이 말로 상황을 그려보면, 십보라가 급히 아들의 성기에서 포피를 잘라서 남편인 모세의 성기에 갖다 대어서 하체가 피로 물들었을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면, 이때 모세 역시 할례를 행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할례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다행히 십보라가 빨리 해결해 주어 할례 언약의 의무를 이행하게 됨으로 위기 상황을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여성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 사람입니다. 요게벳의 도움을 얻고, 누이인 미리암의 도움을 얻고, 바로의 공주에게도 도움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아내 십보라의 지혜로운 판단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이 사건은 나중에 출애굽 할 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에서 구원받는 사건을 예표한다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돌칼로 베어낸 포피의 붉은 피가 묻어지자 죽음을 피해 갈 수 있었듯이,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는 어린양의 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바로 그 피를 보고 지나간 것입니다. 모세를 살린 피,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서로를 피로 맺어진 형제자매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 예수 보혈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이 사건 후 모세는 두 아들과 아내 십보라를 장인 이드로에게 돌려보냅니다. 혼자 애굽으로 향하고, 출애굽 이후 시내산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전에 마지막 준비 과정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지어주신 소명의 지팡이를 쥐고 가더라도, 하나님과의 언약에 있어서 우리가 정결한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소명을 받았음에도,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지기 전에 거쳐야 할 거룩한 성별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성별의 과정이란 할례가 말하는 바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에 칼을 댄다는 것으로 생명을 다하도록 주님과의 언약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으로서 생명을 낳게 하시는 역설의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제 모세는 죽음조차도 기꺼이 하나님께 다 내어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순수한 믿음의 중요성

모세는 위기를 넘어서 소명을 따라 애굽으로 향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론에게 가셔서 광야로 나가 모세를 맞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론은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입을 맞추었습니다. 입을 맞춘다는 것은 아무런 편견이나 저항 없이 모세를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이에 화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분부하신 모든 말씀과 명령하신 이적을 아론에게 알렸습니다. 모세가 걱정할 겨를 없이,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 계획을 주도적으로 해나가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았고, 아론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자신들의 고난을 살피셨다는 것을 듣고 믿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도 믿음이고, 리더로서 사람들을 이끄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과거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였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세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믿음을 주셨고, 모세가 받은 믿음을 아론과 함께 공유하자, 그 믿음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가게 된 것입니다. 믿음이 믿음을 낳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출애굽은 믿음의 역사입니다. 믿음은 순수할수록 더욱 강력합니다. 모세가 죽을 뻔했던 할례 문제도 결국 모세의 믿음의 정결함을 더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앞에 생명을 걸고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지를 보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전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