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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12장 21절-36절 이것은 주님께 드리는 유월절 제사다

by 알렉스강 2024. 8. 12.

출애굽기 12장 21절-36절 새번역

 

21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를 모두 불러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족들과 함께 먹을 양이나 염소를 준비하여, 유월절 제물로 잡으십시오.

22 우슬초 묶음을 구하여다가 그릇에 받아 놓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리십시오. 여러분은 아침까지 아무도 자기 집 문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23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치려고 지나가시다가,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른 피를 보시고, 그 문 앞을 그냥 지나가실 것이며, 파괴자가 여러분의 집을 치러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24 여러분은 이 일을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이 지킬 규례로 삼아, 영원히 지키게 하십시오.

25 여러분은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거든, 이 예식을 지키십시오.

26 여러분의 아들딸이 여러분에게 '이 예식이 무엇을 뜻합니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27 그러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이것은 주님께 드리는 유월절 제사다.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을 치실 때에, 이집트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의 집만은 그냥 지나가셔서, 우리의 집들을 구하여 주셨다' 하고 이르십시오." 백성은 이 말을 듣고서, 엎드려 주님께 경배를 드렸다.

28 이스라엘 자손은 돌아가서,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29 한밤중에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들을 모두 치셨다. 임금 자리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두 치시니,

30 바로와 그의 신하와 백성이 그 날 한밤중에 모두 깨어 일어났다. 이집트에 큰 통곡소리가 났는데, 초상을 당하지 않은 집이 한 집도 없었다.

31 바로는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서 말하였다. "너희와 너희 이스라엘 자손은 어서 일어나서, 내 백성에게서 떠나가거라. 그리고 너희의 요구대로, 너희는 가서 너희의 주를 섬겨라.

32 너희는 너희가 요구한 대로, 너희의 양과 소도 몰고 가거라. 그리고 내가 복을 받게 빌어라."

33 이집트 사람은 '우리 모두 다 죽게 되었다'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서 이 땅에서 떠나라'고 재촉하였다.

34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빵 반죽이 부풀지도 않았는데, 그 반죽을 그릇째 옷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나섰다.

35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의 말대로 이집트 사람에게 은붙이와 금붙이와 의복을 요구하였고,

36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사람에게 환심을 사도록 하셨으므로,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요구대로 다 내어 주었다. 이렇게 하여서, 그들은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물건을 빼앗아 가지고 떠나갔다.

 

 

구원 사건의 대표적 모형인 출애굽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예는 단연코 출애굽 사건입니다. 복음은 구원의 사건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현실의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이 자유를 얻고 모든 압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이루어진 방식은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혁명이나 무력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세상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움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출애굽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독립을 넘어서, 영적인 해방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 국한된 구원이 아니라, 더 큰 구원을 기대하게 만드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출애굽은 신약에서 우리가 누릴 궁극적 구원에 대한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구원의 예표이자 표식입니다. 출애굽의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의 기적이 말해주는 바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도록,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세상의 부와 권세가 결국은 별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구원의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은혜를 끝까지 붙잡고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것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유월절을 가르쳐 지키게 하다

출애굽이 하나님의 구원 사건임을 대표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유월절입니다. 열 번째 재앙이 닥칠 때, 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시고 그 집을 넘어가셨습니다. 반면, 피가 발라지지 않은 집에서는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넘어가셨다는 의미인 유월을 말 그대로 사용해서 유월절, 즉 영어로는 Passover라고 부릅니다. 21절과 22절 말씀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두 불러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가족들과 함께 먹을 양이나 염소를 준비하여, 유월절 제물로 잡으십시오.우슬초 묶음을 구하여다가 그릇에 받아 놓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리십시오. 여러분은 아침까지 아무도 자기 집 문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마치 전시에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처럼 긴급히 이스라엘 장로들을 소집해, 유월절 규례를 하나하나 전달했습니다. 제물로 잡은 양이나 염소의 피를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리고, 절대로 아침까지 문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였습니다. 

 

군대에서 복명복창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엇인가를 명령하면, 명령한 바를 그대로 따라 말하게 합니다. 하나도 가감없이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장로들은 모세에게 받은 규례를 각자의 지파 사람들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했습니다. 자칫 잘못하여 이를 정확하게 행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장자의 생명이 날아가는 것입니다. 목숨이 달린 일이기에 내용이 하나라도 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들은 대로 전하고, 들은 대로 행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떤 태도로 말씀을 듣느냐가 우리 신앙을 결정합니다. 같은 말씀을 듣고도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얻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말씀을 어떤 태도로 듣고, 말씀을 행하느냐의 여부가 신앙을 결정짓습니다.

 

양의 피를 뿌리는데 우슬초를 사용하다

22절과 23절 말씀입니다. “우슬초 묶음을 구하여다가 그릇에 받아 놓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리십시오. 여러분은 아침까지 아무도 자기 집 문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치려고 지나가시다가,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른 피를 보시고, 그 문 앞을 그냥 지나가실 것이며, 파괴자가 여러분의 집을 치러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양의 피를 문 인방과 문설주에 뿌릴 때 우슬초 묶음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우슬초는 척박한 땅이나 돌 틈 사이에서 자라는 작고 부드러운 허브과의 흔한 식물입니다. 우슬초는 작은 풀에 불과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습니다.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우슬초의 키는 60~70㎝정도까지 크고, 잎의 뒷면과 줄기의 잔털이 어린양의 피를 흡수해서 뿌리기에 적합했습니다.

 

우슬초는 구약의 정결 의식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처럼 피를 바르는 일에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병에서 나은 사람을 위한 정결 의식이나 시체와 접촉하여 부정해진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절차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때 제사장은 백향목 가지와 우슬초 묶음으로 새의 피를 찍어 병에서 정결함을 받은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라고 선포해야 한다. 그래야 회중 안에 들어와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음을 입었으니 교만함을 버리고 우슬초처럼 겸손하게 살라는 의미가 내포됐다. 비록 우슬초는 볼품없고 쓸모없어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우슬초를 사용하여 재앙을 피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진정 중요한 것은 우슬초 자체가 아니라, 어린 양의 피가 발라졌는지 여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사함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어린 양의 피가 닿게 되면, 우슬초처럼 세상에서 볼품없고 천한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변함없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말씀

29절과 30절을 살펴보겠습니다. “한밤중에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들을 모두 치셨다. 임금 자리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두 치시니, 바로와 그의 신하와 백성이 그날 한밤중에 모두 깨어 일어났다. 이집트에 큰 통곡소리가 났는데, 초상을 당하지 않은 집이 한 집도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김없이 성취됩니다. 바로의 장자부터 옥에 갇힌 사람까지 누구도 따지지 않고 초태생은 다 죽임을 당합니다. 아홉 번의 재앙이 그대로 일어난 것처럼 열 번째 재앙 역시 말씀 그대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따라 하시는 바는 결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섭리를 깨달아 아는 것이 중요한 것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더디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대를 잘 보고 있다가, 때가 되면 반드시 정신 바싹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것은 열 번째 재앙이 밤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밤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넘어 심판과 구원이 갈리는 경계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별한 때인 유월절의 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사를 가르는 기로였습니다. 이때 깨어 있어 말씀에 따라서 그대로 행한 자들은 죽음의 강을 넘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밤이라는 시간이 하나님의 백성과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는 심판의 시간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어둠이 깊었다는 것은 곧 새벽이 온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시대가 악할수록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반드시 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 비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신랑이 오는 시간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지혜로운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했지만, 어리석은 처녀는 준비가 없어 혼인 잔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아무 일도 아닌 듯 하지만, 생사를 가르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것 다 잘해도 이것 하나 놓쳐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 땅을 축복하는 자이다

31절과 32절입니다. “바로는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서 말하였다. "너희와 너희 이스라엘 자손은 어서 일어나서, 내 백성에게서 떠나가거라. 그리고 너희의 요구대로, 너희는 가서 너희의 주를 섬겨라. 너희는 너희가 요구한 대로, 너희의 양과 소도 몰고 가거라. 그리고 내가 복을 받게 빌어라.” 바로는 결국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즉시 떠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자기를 축복하고 떠나라고 합니다. 애굽 땅에 처음 들어온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축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야곱이 바로를 처음 만났을 때, 바로를 위해 축복하는 기도를 합니다. 축복하면서 왔던 것처럼, 떠날 때도 축복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열방의 아비로 모든 민족을 축복하는 복의 통로가 된 것처럼, 그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도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비록 이 세상을 심판할지라도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 세상을 축복하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고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지 우리의 권한이 아닙니다. 절대적 악의 축이자 세상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던 바로조차도 나를 축복하며 떠나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 가진 바로가 축복해 달라고 합니다. 세상이 축복해 주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세상의 권세자나 부자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축복하는 자로 살아가도록 명 받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나보다 힘이 있고 돈이 있고 높은 위치에 있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축복하는 자입니다. 내가 돈이 있고 없고, 힘이 있고 없고 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더라도 뭘 바라는 마음으로 만나지 말고, 오히려 내가 뭘 더 도와줄 게 없나 이런 마음으로 만나길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당당함입니다.

떠날 때 즉각 떠나야 한다

장자의 죽음으로  인해 큰 충격에 휩싸인 애굽 사람들은 우리 모두 다 죽게 되었다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서 빨리 이 땅에서 떠나라고 재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빵 반죽이 부풀지 않았는데도 반죽을 그릇째 둘러메고 나왔다고 합니다. 빵 구워서 들고 갈 시간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떠나가라고 할 때 미련 없이 떠나야 합니다. 능기적 거리고 있으면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안됩니다. 때가 되었다면 정시에 떠나야 합니다. 세상은 변덕스럽습니다. 상황이 좀 나아지면 또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떠나라 할 때 바로 출발하기 위해서 이미 하나님은 모든 준비할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부해 놓았습니다. 열 번째 재앙을 일으키기 전 지켜야 할 유월절 규례와 그리고 광야로 나아가서 지내야 할 칠일 간의 무교절 규례를 상세하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빨리 떠난다고 해도 빈 손으로 떠나지 않습니다.  은붙이와 금붙이와 의복을 가지고 광야를 향해 떠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용을 전혀 받지 않고 보상 없이 노예 생활을 한 것 같지만 거기에 대한 대가를 다 받고 이제는 주인처럼 당당하게 애굽을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출애굽 구원이 그리는 역설적인 대반전의 역사인 것입니다. 비록 노예로 살았지만 떠날 때는 나그네를 충분히 대접해 보내듯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겁니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는 이렇게 잘 대접해서 보내는 겁니다. 물건을 빼앗아 떠났다고 하는데, 이것은 도둑처럼 강탈한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에 승리한 전리품을 취하는 모습입니다. 도망치듯 쫓기며 떠난 것이 아니라 승리자로 애굽을 떠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취한 은붙이와 금붙이는 해방의 새 삶을 시작하는 하나님의 선물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장차 성막을 건축하고 제사를 지낼 때 쓰일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즉각 순종하며 살아가며 경험하게 되는 모든 사건에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성취하심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섭리를 날마다 누리며 살아가는 모두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