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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10장 1절-20절 그렇게 많은 메뚜기 떼는 전에도 본 적이 없고

by 알렉스강 2024. 8. 6.

출애굽기 10장 1절-20절 새번역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바로에게 가거라. 그와 그 신하들이 고집을 부리게 한 것은 나다. 이것은 내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온갖 이적을 보여 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2 그뿐만 아니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을 어떻게 벌하였는지를,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어떤 이적을 보여 주었는지를, 네가 너의 자손에게도 알리게 하려고, 또 내가 주님임을 너희에게 가르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말하였다. "히브리 사람의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언제까지 내 앞에서 교만하게 굴려느냐? 나의 백성을 보내서,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4 네가 나의 백성을 보내기를 거절하면, 나는 내일 너의 영토 안으로 메뚜기 떼가 들어가게 할 것이다.

5 그것들이 땅의 표면을 덮어서, 땅이 보이지 않게 될 것이며, 우박의 피해를 입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을 먹어 치우되, 들에서 자라는 나무들까지 모두 먹어 치울 것이다.

6 너의 궁궐과 너의 모든 신하의 집과 이집트의 모든 사람의 집이 메뚜기로 가득 찰 것이다. 이것은 너의 아버지와 너의 조상이 이 땅 위에 살기 시작한 때부터 오늘까지, 너희가 전혀 못 본 일이다.'" 그리고 나서, 모세는 발길을 돌려 바로에게서 나왔다.

7 바로의 신하들이 바로에게 말하였다. "언제까지 이 사람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함정이 되어야 합니까? 이 사람들을 내보내서 그들의 주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임금님께서는 아직도 이집트가 망한 것을 모르고 계십니까?"

8 모세와 아론이 다시 바로에게 불려 갔다. 바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가서 주 너희의 하나님께 예배하여라. 그런데 갈 사람은 누구 누구냐?"

9 모세가 대답하였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절기를 지켜야 하므로, 어린 아이와 노인들을 비롯하여, 우리의 아들과 딸을 다 데리고 가야 하며, 우리의 양과 소도 몰고 가야 합니다."

10 바로가 그들에게 호통쳤다. "그래, 어디 다 데리고 가 봐라! 너희와 함께 있는 너희의 주가 나를 감동시켜서 너희와 너희 아이들을 함께 보내게 할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너희가 지금 속으로 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음이 분명하다!

11 그렇게는 안 된다! 가려면 너희 장정들이나 가서, 너희의 주에게 예배를 드려라. 너희가 처음부터 바란 것이 그것이 아니더냐?" 이렇게 해서, 그들은 바로 앞에서 쫓겨났다.

12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팔을 이집트 땅 위로 내밀어라. 그러면 메뚜기 떼가 이집트 땅으로 몰려와서, 우박의 피해를 입지 않고 땅에 그대로 남아 있는 푸성귀를 모두 먹어 치울 것이다."

13 모세가 지팡이를 이집트 땅 위로 내미니, 주님께서 그 날 온종일, 그리고 밤이 새도록, 그 땅에 동풍이 불게 하셨다. 그 동풍은 아침녘에 메뚜기 떼를 몰고 왔다.

14 메뚜기 떼가 이집트 온 땅 위로 몰려와서, 곳곳마다 내려 앉았다. 그렇게 많은 메뚜기 떼는 전에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결코 볼 수 없을 만한 것이었다.

15 그것들이 땅의 표면을 다 덮어서, 땅이 새까맣게 되었다. 그것들이, 우박의 피해를 입지 않고 남아 있는 나무의 열매와 땅의 푸성귀를 모두 먹어 치워서, 이집트 온 땅에 있는 들의 나무와 푸른 푸성귀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16 그러므로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들여서 말하였다. "내가 너희와 주 너희의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17 부디 이번만은 나의 죄를 용서하고, 주 너희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 엄청난 재앙이 나에게서 떠나게 하여라."

18 모세가 바로에게서 물러나와 주님께 기도를 드리니,

19 주님께서 바람을 가장 센 서풍으로 바꾸셔서, 메뚜기 떼를 홍해에 몰아 넣으시고, 이집트 온 땅에 메뚜기 한 마리도 남겨 두지 않으셨다.

20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로가 여전히 고집을 부리게 하셨으며, 바로는 여전히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않았다.

 

 

내가 주님임을 너희에게 가르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1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바로에게 가거라. 그와 그 신하들이 고집을 부리게 한 것은 나다. 이것은 내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온갖 이적을 보여 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출애굽기는 모든 재앙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주도 하에 모든 것이 일어났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바로가 교만하여 완고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은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죄악에 굳어지도록 내버려 두셨고, 그 결과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재앙을 피하고 출애굽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연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님임을 너희에게 가르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가르쳐 알게 하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적인 이해를 넘어, 깊은 경험을 통한 친밀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애굽인들의 멸망을 보며 하나님의 공의를 깨달았고, 자신들이 부당한 고통 속에서도 구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신앙은 반드시 교육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통해서 신앙을 가리키십니다. 따라서 신앙 교육은 단순한 학습 보조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근본이며, 영원한 행복을 위한 필수적인 길입니다.

 

하나님은 바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도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깊이 새겨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마치 돌판에 글을 새기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신앙 교육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경험은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설령 세상에서 방황하더라도 어릴 적 기억으로 인해서 결국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네가 언제까지 내 앞에서 교만하게 굴려느냐?

모세와 아론은 여덟 번째 재앙을 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바로 앞에 섰습니다. 3절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말하였다. 히브리 사람의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언제까지 내 앞에서 교만하게 굴려느냐? 나의 백성을 보내서,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하나님은 바로의 교만을 책망하셨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하나님의 연이은 재앙에도 불구하고 끝내 겸손하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셨지만, 바로는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마치 자신을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모든 것을 소유한 주인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완악함을 통해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셨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급급하며, 쉽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결국 바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교만한 것입니다. 이러한 교만은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게 만들었고,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스스로를 높이려 합니다. 교만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인생의 많은 어려움을 초래합니다. 결국 문제는 우리 자신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너무 높이 평가하고,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합니다. 마치 바로가 스스로를 모든 것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존재라고 착각했던 것처럼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환경을 탓하지만, 문제의 근원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변화하지 않는 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 메뚜기 재앙

모세는 바로의 교만을 향해 메뚜기 재앙을 예고합니다. 5절과 6절입니다. “그것들이 땅의 표면을 덮어서, 땅이 보이지 않게 될 것이며, 우박의 피해를 입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을 먹어 치우되, 들에서 자라는 나무들까지 모두 먹어 치울 것이다. 너의 궁궐과 너의 모든 신하의 집과 이집트의 모든 사람의 집이 메뚜기로 가득 찰 것이다. 이것은 너의 아버지와 너의 조상이 이 땅 위에 살기 시작한 때부터 오늘까지, 너희가 전혀 못 본 일이다.'" 그러고 나서, 모세는 발길을 돌려 바로에게서 나왔다.” 메뚜기가 날아와서 땅이 안 보이고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애굽 전 지역을 덮이게 된 것입니다. 메뚜기가 지나가면 그냥 전멸입니다. 앞서 우박 재앙에서 삼과 보리는 피해를 입었으나 밀과 쌀보리는 이삭이 팰 때가 아니라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박 재앙으로 쓸고 지나갔지만 마지막 남은 밀과 쌀보리 이삭마저도 다 휩쓸고 간 것입니다. 이제 당장 먹을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의 생활의 직접적인 피해로 본다면 최악의 재앙이 임한 것입니다.

 

재앙이 너무나 끔찍하고 피해가 컸기에 이번에는 바로의 신하들이 나섭니다. 7절입니다. “바로의 신하들이 바로에게 말하였다. 언제까지 이 사람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함정이 되어야 합니까? 이 사람들을 내보내서 그들의 주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임금님께서는 아직도 이집트가 망한 것을 모르고 계십니까?” 일곱 번의 재앙을 겪으며 바로의 신하들은 더 이상 왕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직언을 감행했습니다. 바로가 두렵긴 하지만, 재앙으로 인한 피해로 본인들이 죽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지만,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진정한 회개는 없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단지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도구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나 회개보다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을 이용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이 최우선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협상하려는 바로의 어리석음

바로는 신하들의 요구에 응하여 모세와 아론을 다시 데리고 옵니다. 8절 말씀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다시 바로에게 불려 갔다. 바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가서 주 너희의 하나님께 예배하여라. 그런데 갈 사람은 누구 누구냐?" 그런데 그냥 모두 가라고 하지 않고 누가 갈 것인지 결정해서 알려달라고 합니다. 모세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 모두 다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조건을 달고 협상을 하는 것입니다. 협상은 내 입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 현상유지를 하려는 것입니다. 소수의 몇 사람 정도만 예배드리러 내보낸 뒤에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가 착각하는 것은 모세와 협상하면 문제를 타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 명령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유한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협상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계속 반복하는 말이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해야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구원이란 현상 유지가 아닙니다. 현상 타파가 구원의 목적입니다. 생각과 행동과 현실을 바꾸는 것입니다.

 

9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절기를 지켜야 하므로, 어린아이와 노인들을 비롯하여, 우리의 아들과 딸을 다 데리고 가야 하며, 우리의 양과 소도 몰고 가야 합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분명히 밝힙니다. 남녀노소 가축까지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세에 대답에 바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0절입니다. “바로가 그들에게 호통쳤다. 그래, 어디 다 데리고 가 봐라! 너희와 함께 있는 너희의 주가 나를 감동시켜서 너희와 너희 아이들을 함께 보내게 할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너희가 지금 속으로 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음이 분명하다!” 바로의 말인즉 어린아이들까지 보내면 이들이 안 돌아올 것이 뻔하니까 아이들을 인질로 잡겠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악한 음모라며 하나님의 뜻을 악평하기까지 했습니다. 자신의 왕국을 세워 놓고 그 안에서 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을 벗어나는 그 모든 것을 정죄하기 바쁩니다. 11절 말씀입니다. "그렇게는 안 된다! 가려면 너희 장정들이나 가서, 너희의 주에게 예배를 드려라. 너희가 처음부터 바란 것이 그것이 아니더냐 이렇게 해서, 그들은 바로 앞에서 쫓겨났다." 애써 두려움을 감추던 바로는 체면을 구기며 협상안을 제안했지만 모세가 흔들림 없이 거절하자 분을 터뜨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정만 데리고 가서 예배드리라 말하며 결국에는 모세와 아론을 쫓아내어 버립니다.

 

예상치 못한 재앙의 바람인 동풍이 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예고하신 대로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은 진실되고 반드시 이뤄집니다. 모세가 하나님 명에 따라 지팡이를 들어 내밀자 여덟 번째 재앙이 온 애굽 전역에 내려집니다. 아라비아 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뜨거운 동풍이 일어나 가공할 만한 메뚜기 떼를 불러들이셨습니다. 이제는 애굽의 마술사들도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재앙들이 닥치게 된 것입니다. 메뚜기 재앙은 바로가 믿었던 마지막 한 줌의 인간적인 힘마저 박살냅니다. 여기서 동풍은 예상치 못한 재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은 맞지만, 반대로 피할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어 나를 섬기게 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는 자신의 자존심, 체면, 왕권에 대한 욕망으로 애굽 모두를 죽음의 길에 서도록 자초한 것입니다.

 

메뚜기 떼가 애굽 땅을 덮자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습니다. 메뚜기 떼가 지나가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탐욕도 이와 같습니다. 탐욕이 마음을 뒤덮으면 내면은 짙은 어둠에 싸입니다. 탐욕의 결과는 인격의 황폐화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으며, 그 결과는 죽음과 같은 어둠입니다. 우리 주변에 탐욕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탐욕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도 황폐하게 만듭니다. 16절과 1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들여서 말하였다. 내가 너희와 주 너희의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부디 이번만은 나의 죄를 용서하고, 주 너희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 엄청난 재앙이 나에게서 떠나게 하여라.” 바로는 이번만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지만, 목적은 눈앞의 죽음을 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을 만났을 때 보이는 전형적인 비겁하고 유약한 모습입니다. 결국 자기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에 탐욕만 남아서 바뀌는 것은 없고 자기 처지만 한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성령의 바람으로 메뚜기 떼를 쫓아내시듯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바람 서풍이 불다

모세는 바로에게서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바람을 가장 센 서풍으로 바꾸셔서 메뚜기 떼를 홍해로 몰아넣으셨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탐욕으로 죽어가는 세상을 향한 중보의 기도였습니다. 모세는 메뚜기 재앙이 끝나도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에게 속을 줄 알면서도 기도했습니다. 재앙이 닥쳤기 때문에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온 세상이 죽음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애통하는 마음을 품으면 서풍이 불어옵니다. 서풍이 불면 죽음의 땅에도 생명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생명이 솟아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어리석게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지 마시고, 당장 내가 해야 선택해야 할 작은 일이라도 생명의 선택을 하시길 축복합니다.  

 

마지막 20절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로가 여전히 고집을 부리게 하셨으며, 바로는 여전히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내버려 두셨다고 말합니다. 내버려 둠이 하나님의 심판 방식입니다. 결국 자기 고집대로 완악한 결정을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이제 자기 고집밖에 없습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고 백성에게 등지고 신하들도 떠났습니다. 고집이 결국 자신과 모두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제 이 고집을 꺾을 일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남은 계획을 진행하십니다. 아홉 번째 재앙과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남았습니다. 이 진노의 잔은 피했으면 하지만, 결국 바로의 고집은 이 재앙을 피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안타깝지만 악한 자의 말로가 바로의 모습이라는 사실이 경종을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