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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9장 13절-26절 이번에는 온 세상에 나와 같은 신이 없다는 것을 너에게 알리겠다

by 알렉스강 2024. 8. 2.

출애굽기 9장 13절-26절 새번역

 

13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바로 앞에 나서서 이렇게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백성을 보내어라. 그들이 나에게 예배드리게 하여라.

14 이번에는 내가 나의 온갖 재앙을 너와 너의 신하들과 백성에게 내려서, 온 세상에 나와 같은 신이 없다는 것을 너에게 알리겠다.

15 내가 팔을 뻗어서 무서운 질병으로 너와 너의 백성을 쳤다면, 너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16 너에게 나의 능력을 보여 주어, 온 세상에 나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고, 내가 너를 남겨 두었다.

17 그런데 너는 아직도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나의 백성을 내보내지 않는다.

18 그러므로 내일 이맘때에 내가 매우 큰 우박을 퍼부을 것이니, 그처럼 큰 우박은 이집트에 나라가 생긴 때로부터 이제까지 한 번도 내린 적이 없다.

19 그러니 이제 너는 사람을 보내어, 너의 집짐승과 들에 있는 모든 것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라.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들에 남아 있는 사람이나 짐승은, 모두 쏟아지는 우박에 맞아 죽을 것이다.'"

20 바로의 신하들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자기의 종들과 집짐승들을 집 안으로 피하게 하였다.

21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종과 집짐승을 들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22 그 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늘로 팔을 내밀면, 우박이 온 이집트 땅에, 그리고 이집트 땅에 있는 사람과 짐승과 들의 모든 풀 위에 쏟아질 것이다."

23 모세가 하늘로 그의 지팡이를 내미니, 주님께서 천둥소리를 나게 하시고 우박을 내리셨다. 벼락이 땅에 떨어졌다. 주님께서 이집트 땅 위에 우박을 퍼부으신 것이다.

24 우박이 쏟아져 내리면서, 번갯불도 함께 번쩍거렸다. 이와 같은 큰 우박은 이집트에 나라가 선 뒤로부터 이집트 온 땅에 한 번도 내린 적이 없다.

25 이집트 온 땅에서 우박이, 사람이나 짐승이나 할 것 없이, 들에 있는 모든 것을 쳤다. 우박이 들의 모든 풀을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부러뜨렸다.

26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았다.

 

 

너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바로 앞에 나서라

오늘 본문은 애굽에 내린 일곱 번째 재앙입니다. 13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모세를 아침 일찍 바로에게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합니다. 바로가 아침 일찍 나일강으로 나간 것은 나일강의 신인 크눔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일강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국가의례로 애굽 왕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일이긴 하지만, 바로가 재앙이 계속되는 위기 상황에서 이 일에 마음을 다한 것은 나일강의 신들의 힘을 빌려서 하나님이 내린 재앙을 물리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바로 역시 여섯 번째 재앙인 종기가 나는 피부병에 걸려서 나일강에 몸을 씻으면 낳을 것이라 기대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새벽이란 시간은 인간의 노력과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했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삶의 끝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반대의 의미도 있습니다. 새벽은 여명의 빛을 받아 어둠을 끝내며 새롭게 낮을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새벽을 여는 것은 내게 주신 하루를 나의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작임을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아직도 자신이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합니다. 거듭되는 재앙을 통해 바로 자신과 애굽의 우상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야 하는데,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사람이 어리석은 것이 안되는 걸 알면서도 기존의 방식을 계속 고수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방법이 통했다고 지금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한번 안된다는 것을 확인하면 바꾸어야 하는데,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럼 무조건 실패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나와 같은 신이 없다는 것을 너에게 알리겠다

바로가 왜 고집을 꺾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누구신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다는 것을 결국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자신의 권력과 부로서 히브리의 민족 신에 불가한 하나님과 협상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자기가 섬기는 우상보다 아래에 있는 신들 중 하나 정도로 생각한 것입니다. 마치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고, 잘 달래거나 적당히 타협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치 않는 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바꾸어야 할 것은 바로입니다. 이 점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달아야 합니다. 내 뜻으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하나님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변화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기에, 결국 우리 자신의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14절입니다. “이번에는 내가 나의 온갖 재앙을 너와 너의 신하들과 백성에게 내려서, 온 세상에 나와 같은 신이 없다는 것을 너에게 알리겠다.”  성경은 '이번에는' 표현을 사용하여 앞으로 내려질 재앙이 특별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전 재앙들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재앙임을 나타냅니다. 재앙은 갈수록 심화되고 더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처음의 재앙들은 단순한 생활의 불편함에서 시작하여 점점 재산의 손실로 이어졌고, 이제는 생명의 위협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우박 재앙에 이르러서는 애굽 전역에 무차별적으로 미사일을 폭격하듯이 자칫 잘못하면 사람이건 짐승이건 어떤 생물이든 상관없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에게 내려진 재앙을 단순한 고통 이상의 의미로 설명합니다. '너와'로 번역된 히브리어 '베카בְּךָ'는 문자 그대로 '너 안에'입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완악한 마음에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거듭된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마음이 변하지 않자,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심어 평안을 빼앗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15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팔을 뻗어서 무서운 질병으로 너와 너의 백성을 쳤다면, 너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지금까지는 손으로만 했지만, 팔까지 사용했다면 바로는 이미 죽었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바로가 얼마나 두려웠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마음의 평안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불안에 놓인 상황에서는 그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온 세상에 나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고 내가 너를 남겨 두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협박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바로에게 자신이 온 천하에 유일한 신임을 알리려 하셨습니다. 재앙을 통해 단순히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리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나의 능력을 보여 주어, 온 세상에 나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고, 내가 너를 남겨 두었다.” 앞서 13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히브리 사람의 주 하나님이라고 소개했지만, 그 하나님이 단순한 민족 신이 아니라 온 우주에 유일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애굽인들은 하나님을 히브리인들의 신 정도로 여겼지만,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유일한 존재이십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것들을 신으로 섬기지만, 진정한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며 누리는 평안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나일강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온갖 역병을 내리셨지만, 하나님은 바로를 즉시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온 세상에 드러내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건강을 염려하고 질병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건강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병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모습은 사소한 일에도 크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애쓰며 불안해합니다. 이는 바로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신처럼 숭배했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자연을 보며 감탄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내 힘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내게 주신 모든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더 이상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묻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완고하여 회개할 마음이 없으니 진노를 스스로 쌓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바로는 여섯 번의 재앙을 겪고도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2장 5절에서 바울은 “그대는 완고하여 회개할 마음이 없으니,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나타날 진노의 날에 자기가 받을 진노를 스스로 쌓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날인 심판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그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있습니다. 18절에서 “그러므로 내일 이맘때에 내가 매우 큰 우박을 퍼부을 것이니, 그처럼 큰 우박은 이집트에 나라가 생긴 때로부터 이제까지 한 번도 내린 적이 없다.”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내일 이맘때, 확실하게 정해진 시간에 재앙이 벌어질 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는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19절에서도 “그러니 이제 너는 사람을 보내어, 너의 집짐승과 들에 있는 모든 것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라.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들에 남아 있는 사람이나 짐승은, 모두 쏟아지는 우박에 맞아 죽을 것이다”라고 피할 방법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시간과 대피할 방법을 알려주신 것은 이전의 재앙보다 그 수위가 한층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경고와 피할 길을 제공하여, 사람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무서운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담겨 있음을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두 가지 부류

20절과 21절 말씀입니다. “바로의 신하들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자기의 종들과 집짐승들을 집 안으로 피하게 하였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종과 집짐승을 들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바로 옆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신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재앙을 직접 목격하며 하나님의 권능을 깨달았고, 말씀에 따라 종들과 가축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비로 자신의 가축과 종들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두 번째 부류는 바로처럼 완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종들과 가축을 위험에 노출시켰습니다. 결국, 바로와 같은 완악함과 교만으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잃게 만든 것입니다.

 

애굽의 신하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재앙을 피하고 생명을 보존했지만, 불순종한 사람들은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미리 예고하시고 피할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른 사람들은 안전을 얻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나침반과 같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행복과 평안으로 이어지지만, 불순종은 파멸로 이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센 땅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았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우박 재앙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모세의 손을 통해 내려진 이 우박은 사람과 짐승을 해치고 농작물을 파괴할 만큼 강력했습니다. 애굽 땅에 내린 우박의 크기와 무게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성경는 애굽 역사 이래 그와 같은 일이 없다고 표현함으로써 그 우박의 크기와 무게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우박은 바로의 교만을 상징합니다. 우박은 강한 상승 기류를 타고 위아래로 이동하면서 그 크기가 커지다가 결국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지상으로 떨어집니다. 바로의 교만도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계속해서 커지려고만 하다가 결국 땅으로 떨어져서 박살나는 것입니다. 그 교만으로 인해서 본인만이 아니라 땅에서 잘 살고 있는 식물이나 동물, 사람까지도 생명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고센 땅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고센 땅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피난처이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영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애굽 전역에 재앙이 닥쳤을 때, 고센 땅은 마치 하나님의 손길이 뻗어 있는 안전지대와 같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지에 대한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고센 땅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상징합니다. 시편 46편 1절에서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힘이 되십니다. 특히 어려움과 환난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더욱 강력한 보호를 베푸십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고센 땅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보호받길 축복합니다. 약속의 땅인 고센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가 직면하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