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장 1-10절 새번역
1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예레미야가 한 말이다. 그는 베냐민 땅 아나돗 마을의 제사장 출신인 힐기야의 아들이다.
2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유다 왕이 되어 다스린 지 십삼 년이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3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유다 왕으로 있을 때에도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 뒤에도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 제 십일년까지 주님께서 그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다. 시드기야 왕 십일년, 그 해 다섯째 달에 예루살렘 주민이 포로로 잡혀 갔다.
4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5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6 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7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8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9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10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재위 13년, 기원전 627년 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해, 시드기야 왕 재위 11년,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약 40년 동안 사역했습니다. 꽤 긴 시간 유다 마지막 시기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당시 국제 정세는 앗시리아 제국이 몰락하고 바벨론 제국이 패권을 장악하던 격변의 시대였습니다. 바벨론의 강력한 팽창 정책으로 인해 남유다는 멸망당할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예레미야서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해서 주목하게 되는데, 이것이 단지 당시 시대 상황이나 분위기만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기록될 때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이유로 성경이 기록되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레미야서 뿐만이 아니라 성경이 기록될 때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성경 인물이 처한 상황이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경우 성경 기록에 따르면 하나님 부르심 따라 가나안으로 향했다고 하지만, 시대적 상황을 볼 때에는 당시 힛타이트 민족의 남하로 인해 하란 땅에서 쫓겨나서 가나안으로 떠난 전쟁 난민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 경우는 애굽이라는 거대 제국에 노예 생활을 하는 비참한 처지에 놓인 소수 민족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사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운 12부족 연맹체의 국가는 주변 민족과 나라들에 의해서 늘 침략당하고 고통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 이후로 왕정 국가를 세웠지만, 이제 국력이 쇠태 하여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당하기 직전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불확정적인 시대를 살아갈 때, 사람들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힘 있는 자든 연약한 자든 상관없이 모두 다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힘과 실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인간 실존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불안에 노출 된 상황입니다. 보통 사람이 불안한 이유는 일단 자기 개인의 문제에서 시작됩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가정이 흔들리면 삶이 불안해집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이 문제가 해결되고 자리 잡히면 불안이 사라지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과 가정이 안정되어도 사회가 불안하면 그 불안감이 가시지 않습니다. 국내 정세는 그렇다 해도 국제 정세가 어려우면 감당이 안됩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안정적인 상황을 만들고자 노력을 해도 감당 못할 강력한 외부적인 공격을 받으면 그냥 나가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불안해지면 나타나는 특징이 있는데 사회가 극단적으로 양분된다는 것입니다. 한쪽은 극단적으로 포플리즘적이고, 한쪽으로는 기득권을 위한 수구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게 우리 같으면 한편으로는 친중종북 좌파세력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친일친미 극우세력이다라고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시 남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벨론 패권 앞에서 한편에서는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바벨론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무모한 도전을 피하고 바벨론과 친화적인 관계를 맺은 뒤 두 나라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주 긴급한 위기 상황에서 여론은 대개 강경한 입장으로 기울어질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남유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집트와의 군사동맹을 통해 바벨론을 격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남유다 사람들이 강경한 주장을 따른 이유는 두 가지로 보입니다. 우선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바벨론의 공격에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이런 나라에 굴복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차라리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이게 유대인 역사에서 줄기차게 보이는 모습입니다. 이후 로마 제국 통치 하에 항전했을 때에도 끝까지 저항하며 죽음을 선택했던 마사다가 바로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단지 이상적인 논리만이 있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당시 바벨론과 견줄 수 있었던 유일한 강대국인 이집트가 도울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실제로 이집트는 유다를 지원 하며 바벨론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도 이집트가 가깝고 오랜 시간 친화적으로 지내왔기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유다 왕 시드기야는 이집트를 선택하고 바벨론에게 저항하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런 혼란에서 예레미야는 다수 세력과 그 지도자들의 입장과는 다른 목소리를 낸 것입니다.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쳤습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기 위해 선택한 도구이며, 저항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맞서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왕과 지도자들은 한목소리로 반대했습니다. 그들이 보았을 때,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이롭게 하는 반역자이자 일종의 매국노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정치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예레미야의 주장은 매우 극단적인 주장으로, 어쩌면 극우적인 자유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극좌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와 같은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시 예레미야를 가장 앞장서 반대한 인물은 선지자 하나냐였습니다. 하나냐는 성전에 예레미야를 불러서 공개 논쟁을 벌였습니다. 하나냐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굴복시키고, 포로로 잡아간 유다 백성과 성전 기물을 2년 안에 돌려보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냐는 하나님께 직접 들은 말씀이라 했고, 이에 유다 백성들은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이와 달리 예레미야는 전혀 다른 예언을 전했습니다. 유다는 곧 포로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오랜 고통 끝에야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벨론의 힘은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강해질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하나냐의 예언은 민족주의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성격이 있기에, 백성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예레미야의 예언은 대중들이 듣기에는 패배주의적이고 힘 빠지는 소리인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거짓 사기꾼 예언자이자 유다의 사기를 떨어뜨려 망하게 하는 간첩으로 몰려 여러 차례 죽을 위기를 겪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예레미야가 참선지자고 하나냐가 거짓선지자라 단정할 수 있지만, 당시 그들이 당면했던 시대는 달랐습니다. 우선 예레미야와 하나냐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진심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하나냐를 단순히 거짓 선지자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확신에 따라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선지자라 해서 미래를 손바닥 보듯 꿰뚫어 보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 말씀과 역사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갈등은 오늘날에도 반복됩니다.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세상과 성경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옳은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결국 역사가 흐르면서 판단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설교를 하는 입장에서 제 신앙과 신학이 전적으로 옳다고 확신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도 양심에 따라 알고 믿고 경험한 바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전하며, 역사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각자 신앙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후 유다 역사에서 예레미야의 예언이 옳았다고 보아 예레미야를 기록에 남겨서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럼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진실되게 대변할 수 있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가 태어나기 전부터 선택하셔서 예언자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즉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예레미야는 구약의 선지자들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 강렬했던 인물입니다. 눈물과 연민이 많았고, 두려움도 컸습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 말씀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도 있었고, 자신의 소명이 확실한 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았을 때에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6절입니다. “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자신을 아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8절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보호해줄 테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삶을 돌아보면, 예레미야는 늘 눈물과 고통, 그리고 걱정과 불안 가운데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인 소명을 받는 장면에서 조차 자신이 아이라 두려움이 많다고 한 것을 보면, 소명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 중에서도 예레미야는 평생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온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늘 담대하고 자신감 넘치며 평안했을 것이라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조차도 곤혹스러워하신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며 절규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럼 이 두려움과 불안을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요? 핵심은 하나님 말씀에 있습니다.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내미셔서 예레미야 입에 대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아이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먹는 음식 대신 말씀을 먹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번째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의지와 관계없이 말씀을 먹이셨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 이유식을 먹일 때를 생각해 보면, 처음에 밥 먹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음식을 잘게 갈아서 잘 익혀합니다. 그리고 일단 잘 안 먹습니다. 재미있게 해 주면서 한 숟가락씩 조금씩 먹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차차 강한 음식도 먹게 되고 혼자서도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인간의 본성상 우리 스스로 먹는 게 아닙니다. 말씀을 읽도록 환경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그 강도를 높여가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밥 먹이는 것을 부모가 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말씀으로 키워나가시는 것도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이 모든 것을 이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결국 소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예레미야가 말씀을 듣고 읽은 게 아니라 먹었다는 것입니다. 체화되고 성육화되었다, 즉 말씀 그대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레미야는 소명을 받는 순간조차도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후 예레미야의 인생은 매 순간이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소명에 대해서 얼마나 의구심이 들고 포기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레미야가 두려워하고 불안은 했지만, 이것이 자기에게 주신 소명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이 나에게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노력해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먹음으로 그것이 나의 살이 되고 뼈가 되어서 나와 같아졌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어도,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윤동주의 시 서시의 한 대목처럼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대면하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담대하고, 능력이 있고, 돈이 있는 사람도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인 차원, 실존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들이 닥쳐온다면 그 누구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의 근원적 불안에 대해서 묵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라 불리는 세계 제1차 대전에서 독일군과 연합군이 서로 대치하며 벌인 참호전입니다. 솜전투라 불리는 경우 영국군은 하루에 5만 명이나 죽었다고 하지요. 영화로도 재현된 당시 비극적 상황을 보셨을 것입니다. 몇 백 미터를 전진하고자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호각소리를 불면 참호에서 뛰쳐나와서 무작정 뛰어가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기관총이 날아오고 있고, 전진하라는 명령을 어기면 뒤에서 장교가 사살해 버립니다. 그냥 죽으라는 것입니다. 이 순간 인간으로서 주어진 존엄성이란 게 있겠습니까? 마주하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 얼마나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자신의 삶 앞에 펼쳐진 잔혹한 현실과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그 순간을 겪었던 어린 병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당시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모두 기독교 국가이기에,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이런 상황에 놓이게 한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향해 욕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개죽음과 같은 상황, 정말 어처구니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저는 두 가지를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그 순간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려고 하는 연약한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한 목숨 구하고자 얼마나 비굴해졌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예레미야 17장 9절 말씀이 떠오르는 것이지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 인간이란 게 연약해서 티끌과 먼지와도 같을뿐더러 심지어 그 마음조차도 올바르지 못한 것이 우리 자신의 정직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전투에 임하기 전 국가나 군대, 그리고 나 자신 조차도 전쟁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온갖 과장된 언어로 선동하고 미화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대의를 위한 것이라면서 동료들의 죽음, 나 자신의 죽음조차도 합리화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서 예레미야도 동일한 말씀을 한 것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7장 4절입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예레미야도 바벨론과 항전을 벌이고자 무의미한 희생을 정당화했던 당시 유다 왕정과 제사장들의 거짓 선동을 믿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의 모습이 저뿐만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극한의 두려움 앞에 마주한 인간이 보이는 나약한 모습일 것입니다. 어쩌면 두려움을 항상 마주했던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저는 아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7절 8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떤 위로로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니깐 이 땅에서 보호받고 잘 될 것이라 생각하고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게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현실이 개죽음과 같은 막장과 같은 끝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야 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떻고,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고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나의 신앙 양심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후 예레미야가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 성경은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성경 기록과 후대 전승을 통해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망한 뒤 제사장과 왕족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예레미야가 화친하자는 주장을 한 것을 알고 있었던터라, 바벨론은 예레미야에게 함께 바벨론으로 가서 특별하게 대우해 주겠다는 제의를 하지만, 거절하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남게 됩니다. 하지만 바벨론이 세운 총독인 그달리야가 암살당하고, 그달리야를 유다의 총독으로 세웠습니다.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했던 유대 지도자들은 예레미야를 강제로 끌고 가서 이집트 성읍 다바네스로 도망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거기에 가더라도 바벨론에 의해 심판받을 것이라 경고했지만,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쓴소리만 하는 예레미야가 소용이 없다 여겨지자 돌로 쳐 죽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마지막까지도 멸망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여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끊임없는 고난과 외면의 연속이었고, 결국 죽음마저 비참하게 맞이한 것입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예레미야가 사람들에게 바른 말을 하는 순간에도, 한편으로는 하나님 저는 아이라 말할 줄 모릅니다, 저는 여전히 두렵고 불안합니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자신이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있으며,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거부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양심에 따라 그대로 전한 것입니다. 우리 각자 어떤 인생을 살아가며, 그 과정과 끝이 어떨지 알 수도 없고, 또한 다 각자 다르기에 같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처럼 두렵더라도 주어진 소명을 양심을 따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전하길 바랍니다. 이것이 비록 세상이 환호하고 조명해 주는 길이 아닐지라도, 진리와 생명으로 향하는 뒤안길임을 명심하고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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