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출애굽기 7장 1절-13절 네가 바로에게 하나님처럼 되게 하겠다

알렉스강 2024. 8. 1. 20:41

출애굽기 7장 1절-13절 새번역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나는, 네가 바로에게 하나님처럼 되게 하고, 너의 형 아론이 너의 대언자가 되게 하겠다.

2 너는, 내가 너에게 명한 것을 너의 형 아론에게 말하여 주고, 아론은 그것을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 달라고 하여라.

3 그러나 나는, 바로가 고집을 부리게 하여 놓고서, 이집트 땅에서 표징과 이적을 많이 행하겠다.

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 나는 손을 들어 큰 재앙으로 이집트를 치고, 나의 군대요 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겠다.

5 내가 손을 들어 이집트를 치고, 그들 가운데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 낼 때에, 이집트 사람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6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7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의 나이는 여든 살이고, 아론의 나이는 여든세 살이었다.

8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9 "바로가 너희에게 이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지라고 하여라. 그러면 지팡이가 뱀이 될 것이다."

10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갔다. 그들은 주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하였다.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 자기의 지팡이를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다.

11 이에 바로도 현인들과 요술가들을 불렀는데,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그와 똑같이 하였다.

12 그들이 각자 자기의 지팡이를 던지니, 그것들이 모두 뱀이 되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켰다.

13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본격적인 하나님의 이적과 재앙이 시작되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바로에게 전염병과 칼로 치신다고 말씀으로 위협만 하셨지 실제로 치시지는 않았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항하며 분노합니다. 그리고 더 가혹하게 노동 강도를 올리고 채찍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에게 곧장 칼을 대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하나님을 얕잡아 보고 계속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하나님이 급히 서두르지 않은 것은 모세와 아론을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 잃지 않고 하나님을 붙잡는지를 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도록 열심으로 설득하셨습니다.

 

이렇게 충분한 훈련이 되었다고 판단되자, 하나님은 본격적으로 바로에게 이적을 보이시고 회개하지 않기에 재앙을 일으키기 시작하십니다.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영적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영적 전쟁의 핵심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지켜보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나는, 네가 바로에게 하나님처럼 되게 하고, 너의 형 아론이 너의 대언자가 되게 하겠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바로에게 신같이 여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애굽에서는 바로가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신적 권위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왕과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가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모세는 혈기가 많아서 사람을 죽인 살인자입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입이 뻣뻣하여 바로 앞에 나아가 말할 수 없다던 사람입니다. 나중에는 이방 구스 여인을 첩으로 얻었습니다. 이런 흠이 많은 모세가 어떻게 하나님과 같이 될까요? 단 한 가지 이유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여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1절에 대언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대언자는 말씀을 그대로 대신 전하는 것입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내가 너에게 명한 것을 너의 형 아론에게 말하여 주고, 아론은 그것을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 달라고 하여라.”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론에게 전합니다. 그러면  아론은 모세의 말을 대언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에게 하나님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6절 말씀에서도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라고 말씀은 전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여러모로 부족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자기 실력과 능력으로 사용받는 게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그대로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전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대로 말씀을 가감해서는 안됩니다. 말씀 그대로 순종하여 내가 말씀을 있는 그 자체로 믿고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하나님이 원수들 앞에서 기름을 부으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과 같이 높여주십니다.

 

출애굽의 세 단계

하나님은 모세에게 앞으로 어떻게 출애굽 역사가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세 단계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를 이루십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내보내 예배드리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에게 전하는데, 바로가 마음이 완악하여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3절과 4절입니다. “그러나 나는, 바로가 고집을 부리게 하여 놓고서, 이집트 땅에서 표징과 이적을 많이 행하겠다.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 나는 손을 들어 큰 재앙으로 이집트를 치고, 나의 군대요 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겠다.” 둘째, 하나님은 많은 표징과 이적을 바로에게 행하시지만 바로는 듣지 않습니다. 점점 강도를 강하게 하여 아홉 가지 재앙을 바로에게 내리시지만 그래도 바로가 고집을 부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마음을 돌리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입입니다. “내가 손을 들어 이집트를 치고, 그들 가운데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 낼 때에, 이집트 사람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손을 펴서 큰 심판을 내리자 바로는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 알고 이스라엘을 보냅니다. 손은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펴다는 말은 천막을 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사람에게 천막을 치듯이 손을 펴셔서 애굽의 모든 장자를 다 죽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가장 큰 심판인 유월절 장자의 죽음을 내리신 사건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십니다. 그때서야 애굽 사람들은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가 생명의 주관자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바로는 아홉 번이나 얻어맞고 열 번째는 죽음을 당하고 나서야 이스라엘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다

8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로가 너희에게 이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지라고 하여라. 그러면 지팡이가 뱀이 될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갔다. 그들은 주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하였다.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 자기의 지팡이를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다.” 하나님은 먼저 이적을 일으키십니다. 모세와 아론을 보내신 분이 이 세상 자연의 법칙 아래에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넘어서 다스리는 분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혹자는 속임수나 사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확인하고자 마음먹습니다. 바로도 그런 생각을 가진 듯해 보입니다.

 

애굽은 당시 가장 문명이 발달한 곳입니다. 바로는 마술사를 부릅니다. 당시 마술사들은 오늘날로 치면 과학자들입니다. 마술은 당시 시대의 지식을 총망라하여 만들어 낸 속임수와 같은 것입니다. 유대 전승과 디모데후서 3장 8절에 따르면, 이 마술사의 이름이 얀네와 얌브레입니다. 얀네는 ‘조롱’이란 뜻을, 얌브레는 ‘지혜로운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늘 조롱거리가 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죄로 인해 타락하고 유한한 인간의 지혜는 분명한 한계를 가진 매우 미약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애굽의 마법사들도 신비로운 일을 일으킵니다. 이집트 마술 중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진짜 지팡이를 쥐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최면을 건 뱀이 뻣뻣하게 굳어 있게 해서, 마치 지팡이처럼 손에 쥐고 있다가 최면이 풀릴 때 땅에 던진다는 것입니다. 자신들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나님의 이적을 겉으로 흉내 낸 것입니다. 인간의 술수가 하나님의 이적과 견줄 수 없습니다. 결국 이 뱀들은 아론의 지팡이가 변한 뱀에게 삼켜지게 됩니다.

 

믿음을 위해 때로는 이적이 필요하다

하나님도 세상도 이적을 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팡이는 세상의 지팡이를 삼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는 부활과 생명의 지팡이입니다. 죽은 지팡이를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바로도 죽은 지팡이를 움직이게 하는 이적을 행합니다. 그곳에도 생명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이 바로의 생명보다 더 큽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세상의 생명을 삼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능력은 죽음입니다. 사단의 가장 큰 무기는 죽이는 것입니다. 사단은 사람을 죽이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은 세상의 죽음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믿고 나아갈 때, 그 어떤 두려움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음성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론 우리의 믿음을 위해 하나님의 이적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이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이적은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다메섹에 그리스도인을 죽이러 가는 길에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의 광채로 비추어 말에서 떨어져 꼬꾸라 뜨려 집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듣지 못했는데, 바울만 이 소리를 듣습니다. 이 경험은 바울 혼자만의 환청이나 환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메색 도상 체험이 바울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바울은 이 일을 거듭 간증하며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신의 삶을 완전히 헌신하여 순교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 완전히 순복 하게 되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일생에 한 두 차례 결정적인 하나님의 은혜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 사건이 내게 있다면 값진 영적 자산으로 여기며 소중히 간직하십시오. 물론 말씀으로도 순종한다면 이 역시 더 큰 복입니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치유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내 삶에 나타나기를 구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과학이라는 세상의 이적에 흔들리지 말라

그리고 주의할 것은 세상도 이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설령 속임수와 같은 마술일지라도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에게 노예가 된 사람을 하나님께 쉽게 내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인간이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환청이나 환상이라 말하고,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해서 낫게 되었을 때 면역이 좋아져서 우연한 일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찬양으로 인한 감동을 열광적 분위기가 낳은 자아도취라 말합니다. 지팡이를 던져서 뱀으로 바뀐 사건을 따라 하기라는 형식으로 세상적인 학문이나 상식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능력이나 사유가 커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인간 자신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만듭니다. 인간이 점점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불치의 병이 걸렸을 때, 우리 인생이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사실을 알고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겸손히 최후를 맞이했을 텐데, 지금은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서 의료 기술과 의사를 의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모든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문화와 과학을 발달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분수를 모르고 교만하게 한다면 결코 옳은 방향이 아닙니다. 아들이 장성하여 아버지보다 키가 크고 돈도 많이 벌고 여러모로 능가했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고 아들과 아버지의 역할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은 아들로서 아버지는 아버지로 그 본분이 있습니다. 각자 본분을 넘어서는 것이 교만입니다. 본분을 잊어버리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맞서게 된다면 결국 그 관계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분명한 선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적은 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는 것도 결국에는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줄 애굽의 바로와 온 세상이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출애굽 사건만이 아닙니다. 이 원대한 의도가 하나님의 모든 활동과 역사 가운데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 물론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긴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까닭은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되게 함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일하심의 목적입니다. 바로 이 일 때문에 온 세상을 지으시고 우리를 만드신 것입니다. 창조의 목적도 그렇고 구원도 그렇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성취하고자 함도 이와 같습니다. 온 천하 만물 온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올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음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